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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이 그 사람을 결정한다

by 도서출판 다른
사람의 첫인상은 만난 지 10초 안에 결정되고 이 인상은 놀라울 정도로 오래 지속된다고 사회학자들은 말한다. 소설 속 인물의 첫인상이 결정되는 건 10초보다는 오래 걸리지만(느린 독자와 느린 작가 있으니) 첫인상은 역시나 중요하다.



이름에는 암시가 담겨 있다
인물이 소설에 처음 등장할 때 제시되는 정보를 작가는 신중히 통제해야 한다. 여기서 정보란 인물의 외모, 버릇, 처음 하는 행동, 환경, 암시된 뒷이야기를 말한다. 그중 가장 기본적인 것은 이름이다.

줄리엣은 로미오를 “로미오라 부르지 않았다 해도” 사랑했을 거라고 확신하는데, 어쩌면 그녀가 옳았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고려해봐야 할 점이 있다. 줄리엣이 가면무도회에서 만난 사람이 로미오가 아니라 스컹크워트 몬터규라고 해도 그날 밤 자신의 방 발코니에서 그의 이름을 그렇게 외쳐댔을까?


이름은 사람에 대한 우리의 첫인상에 영향을 미치는데, 소설 속 인물도 예외가 아니다. 인물의 이름으로 독자들의 인상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단순히 이름 하나만으로 독자들이 얼마나 많은 정보를 짐작하는지 알면 놀랄 것이다.
때로는 인물의 가족 사항, 나이, 대인관계, 개인의 성격까지 짚어내곤 한다. 이처럼 독자들이 인물의 이름을 듣고 자동적으로 정보들을 떠올리므로 작가는 이를 통제하는 하는 일을 중요하게 다루어야 한다.


인물의 이름을 정할 때에도 소설 쓰기의 기본 규칙이 적용된다. 즉 독자의 기대에서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작가가 왜 더 많은 설명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만일 민족적 배경이 드러나는 이름을 사용해 독자의 기대를 뒤엎고 싶다면, 어떤 지역에서는 특정한 민족이 지배적이라는 사실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그래야 소설의 개연성을 높일 수 있다. 뉴욕 경찰서는 여전히 아일랜드계, 이탈리아계, 스페인계 백인과 흑인이 다수를 차지한다. 맨해튼 파출소 전체를 러시아계 이름의 경찰관들이 판을 치는 곳으로 그린다면 독자의 신뢰만 떨어뜨릴 뿐이다. 작가가 그 동네를 잘 모르고 썼다고 생각한다.


이름은 민족적 배경뿐 아니라 가족 사항에 대해서도 복선이 된다. 예를 들어 아들의 이름을 존 애덤스 캐링턴 4세라고 지었다면 그 가족은 이렇게 선언하는 셈이다. “우리는 우리 가문이 자랑스럽습니다.”

성별 구분이 확실한 이름 역시 가족 사항의 단서를 제공한다. 미국의 상류층 가문에는 딸들에게 붙여주기 위해 대대로 내려오는 이름이 있다. 그래서 1975년 전에 태어난 여성의 이름이 매켄지 웰스라면 가족의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만약 그녀를 주인공으로 소설을 쓴다면 가족의 기대를 이야기의 일부로 집어넣는 게 적절하다.

또한 이름은 나이를 짐작할 수 있는 명확한 표지는 아니지만 아주 미묘하게 암시를 줄 수는 있다. 예를 들어 글래디스나 머틀은 100여 년 전만 해도 흔한 이름이었지만 요즘 태어난 여자아이에게 붙이는 경우는 드물다. 마찬가지로 재닛은 제2차 세계대전 중에 성년이 된 세대에게, 린다는 그들의 딸들에게, 제니퍼는 그들의 손녀들에게 흔한 이름이다.
남자아이의 이름은 시대가 흘러도 별로 변화가 없다. 그러나 동시대 소설에 등장하는 터시어스(셋째라는 뜻)라는 이름은 아주 나이 든 사람이 아니라면 학교에서 친구들의 끊임없는 질문 공세에 시달릴 것이다.


역사소설에서는 특히 시대에 부합하는 이름이 아주 중요하다. 19세기 초 영국의 섭정시대에 사는 여자아이의 이름은 결코 매디슨이 될 수 없다(매디슨은 원래 이름이 아닌 성이었다). 재닛은 제인의 약칭이었고 온전한 이름이 아니었다. 마찬가지로 낸시는 앤의 약칭일 뿐이었다(하지만 사내아이는 터시어스라고 불러도 괜찮았다).
쓰고 있는 소설의 배경이 되는 시대와 지역에 대해 철저히 조사하자. 거듭 말하지만 목표는 독자의 마음에 인물의 이미지를 심는 것뿐 아니라 작가로서 신뢰를 얻는 것이다.



인물의 성격이 드러나는 이름
이름 짓기에서 가장 빠지기 쉬운 함정은 인물의 성격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것이다. 19세기의 작가들은 그런 이름을 쓰고도 별 탈이 없었다.
찰스 디킨스는 『데이비드 코퍼필드』에서 인물의 이름을 유라이어 힙이라고 지어 끈적끈적한 기분 나쁜 느낌을 줬다(유라이어Uriah는 히브리어로 ‘여호와는 불꽃’이라는 뜻이다. 유라이어 힙은 이 소설에서 비열한 인물로 등장한다).
샬럿 브론테의 『폭풍의 언덕』 속 히스클리프 역시 길들여지지 않은 거친 성격을 암시한다(히스heath는 황야를, 클리프cliff는 바닷가 절벽을 뜻한다). 하지만 요즘 독자들은 이런 상징적인 이름을 들으면 우스꽝스럽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물론 코미디소설이나 아동문학을 쓸 때에는 예외다.
해리 포터 시리즈에는 인물의 성격을 알려주는 이름들이 나온다. 드레이코 말포이는 용dragon과 적대감malevolence이라는 단어를 연상시켜 악인이라는 인상을 준다. 네빌 롱바텀은 이름 때문에 반 아이들의 놀림감이 될 운명이고, 루나 러브굿도 마찬가지다.
만약 웃기는 청소년소설을 쓴다면 인물의 성격을 보여주는 핵심 도구로 이 같은 이름을 쓸 수 있다. 하지만 그런 경우가 아니라면 이 전략은 과거 세대의 유산으로 남겨놓는 게 최선이다.




소설쓰기의 모든 것》 개정판이 출간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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