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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은 숨어 있다가 뒤통수를 친다

자전적 스토리텔링의 모든 것

by 도서출판 다른
회고록 독자로서 내 생각은 단호하다. 나는 거짓말쟁이들이 무엇을 바꿔놓았는지 알 수 없기에 신경이 쓰여 죽을 지경이다.



비비언 고닉 Vivian Gornick은 문예지 《빌리버 The Believer》에 실린 인터뷰에서 논픽션을 쓸 때조차 사실대로 쓰지 않는다고 털어놓았다.

늘 이야기를 윤색하죠. 있는 그대로의 진실을 말할 때도요. 실제로 벌어진 일은 이야기로써 완성도가 떨어지거든요. 그러니 이야기를 직접 만들어야 해요. 거짓말을 할 수밖에요. 결국에 남들이 보기엔 거짓말일 뿐이죠. 하지만 이야기하려는 욕구를 참을 수가 없어요. 전 누구에게도 사실 그대로 이야기해야 할 의무가 없어요. 사실 그대로라는 게 대체 뭐죠? 누가 그런 데다 신경을 쓰나요?

글쎄, 돈을 내고 책을 산 나로서는 그런 데다 신경을 쓴다. 고닉이 사실대로 털어놓은 건 잘한 일이지만, 사후 고백 특히 이렇게 모호하게 자신을 합리화하는 고백만으로는 믿음이 안 간다. 마치 점심을 먹은 뒤에 종업원이 “손님이 드신 샌드위치에 고양이 똥을 찻숟가락만큼 넣었는데 전혀 모르시더군요”라며 이죽대는 거나 마찬가지다. 내 입장에서 고양이 똥을 눈곱만큼 넣은 샌드위치는 고양이 똥 샌드위치와 다를 게 없다. 고양이 똥이 어디에 있는지 알아내 그 부분을 떼어버리고 먹을 수 없다면.


진실은 뿌옇고 어렴풋한 저승처럼 까마득한 영역일지 모른다. 그러나 거짓은 간단하게 정의할 수 있다. 독자를 속이려고 없었던 일을 지어내는 게 거짓말이다. 우리는 흐릿한 기억과 뚜렷한 기억을 구분할 줄 알고, 흐릿한 기억은 무시해도 된다거나 미심쩍다라는 딱지를 붙여놓는다.

어차피 뚜렷한 기억이 더 중요하다. 그거야말로 우리가 내내 가슴에 아로새기고, 속을 태우고, 조목조목 따지고, 궁금해하던 것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회고록 작가가 추구하는 건 어느 쪽으로 치우치지 않은 역사가 아니다. 기억의 진실, 즉 자신이 어떤 사람이고 무얼 기억하고 있는지다.


내용을 가짜로 지어내면 독자와의 약속(계약)이 깨진다. 그뿐만 아니라 원고를 다섯 번이나 열 번, 스무 번씩 고치고 나야지만 겨우 드러나는 심오한 진실에 다다르지도 못한다. 작가는 얼마든지 잘못 해석할 여지가 있다. 제프리 울프 Geoffrey Wolff는 “진실은 숨어 있다가 뒤통수를 친다”고 했다.

하지만 작가가 실제로 겪은 경험을 똑바로 바라보지 않는다면 꼭꼭 숨어 있는 의미들은 끝내 빛을 보지 못할 것이다. 편리한 해석을 뒤집어버리는 심오한 진실도 결코 밝혀낼 수 없을 것이다. 마음에 드는 논리를 뒷받침하려고, 혹은 독자들 앞에서 우쭐대려고 내용을 꾸며내는 작가는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영영 깨닫지 못한다. 삶을 돌이켜보면서 느낄 수 있는 해방감을 누리지 못하고 만다.


해방감이라니? 누군가는 되물을지도 모른다. 마음에 드는 버전을 만들어놓고 그것만 꾸준히 내세워도 되지 않느냐며. 물론 가짜 인물을 빚어 대중에게 팔아먹을 생각이라면, 자신을 되돌아보지 않아도 괜찮을 것이다.
그렇지만 회고록을 쓰든 쓰지 않든, 과거를 외면한 사람은 정신적 대가를 치러야 하는 법이다. 과거는 우리가 알아채지 못하는 동안에도 우리를 끈질기게 끌어당긴다. 마음이 딱딱하게 굳은 반사회적 인격 장애자가 아니라면, 과거를 거짓말로 채울수록 자신의 참모습과 가면 사이에서 외로움을 느낀다.

게다가 노련한 거짓말쟁이는 자신처럼 누구나 겉과 속이 다르며 남을 약삭빠르게 조종하려 든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세상살이 자체가 한시도 마음을 놓을 수 없는 조마조마한 살얼음판일 수밖에 없다.


작가가 잘 생각나지 않는 장면을 빼거나 “이 부분은 확실하지 않다”라고 적어 넣는다고 해서 독자의 신뢰를 잃는 건 아니다. 실력 있는 글쓰기 교사들이 ‘어쩌면’과 ‘아마도’의 영역에서 글을 쓰라고 가르치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

위대한 회고록 작가는 어렴풋한 기억을 역시 어렴풋하게 그려낸다. 바로 그 점 때문에 독자는 작가를 신뢰할 수 있다. 독자가 회고록을 좋아하는 건 사실 관계의 오류가 없어서가 아니다. 훌륭한 회고록은 그러한 오류의 본질까지 솔직하게 털어놓기 때문이다.


빼어난 회고록 작가는 기억을 조각조각 이어 지극히 개인적인 내적 공간을 창조한다. 따라서 독자는 회고록의 내용이 본래 불확실하다는 사실을 줄곧 의식하며 작품을 읽는다.

맥신 홍 킹스턴과 마이클 허 같은 회고록 작가는 권위 있는 3인칭 전지적 작가 시점을 쓰지 않았다. 그들의 작품은 진실의 가면 뒤에 숨지 않았다. 작가의 편견이 기억을 어떻게 걸러내는지, 그 과정을 독자에게 그대로 드러냈다. 자신의 정신과 그 한계까지 고스란히 글로 옮겨, 독자가 읽고 있는 내용이 디지털 자료처럼 완벽하게 객관적인 사건이 아님을 끊임없이 알렸다. 그건 화자만의 진실일 뿐이라고.




기록을 남기는 차원에서, 내가 회고록을 쓰면서 진실에서 살짝 벗어났던 경우를 나열해보겠다. 모두 오늘날 흔히 쓰이는 방법들이다.

하나 대화를 재창조했다. “다음과 같은 대화가 이어졌다”라고 자주 적기도 했지만, 그렇지 않아도 어차피 대부분 독자가 그렇게 이해한다. 또한 최근 작품들에서는 큰따옴표를 사용하지 않음으로써 독자가 내 경험 속으로 더 깊이 ‘들어올’ 수 있기를 바랐다. 주관적 성격을 띠면 객관적 역사의 잣대를 피해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아무 잘못 없이 책에 등장한 사람들을 보호하기 위해 가명을 사용했다. 나는 거의 모든 친구에게 가명을 직접 고르게 했다.


지역명을 바꾸었다. 비중이 매우 낮은 보안관이나 교장 선생님 같은 등장인물까지 추적해 연락하지는 않았다. 그들은 이미 세상을 떠났을 수도 있고, 만약 살아 있더라도 그들을 잘못 기억했다는 책임을 지고 싶지 않았다.


개인 사생활을 보호하기 위해 인물의 외모를 모호하게 서술했다. 시장처럼 비중이 낮은 인물들의 경우에 꽤 자주 그렇게 했다. 그러나 《거짓말쟁이들의 클럽》에 등장한 동네 강간범의 경우 고향 사람들이 비행 청소년들 중 특정인으로 오해하지 않기를 바랐다. 그래서 동네 사람들 중 아무도 끼지 않았던 치아 교정기를 착용한 것으로 설정했고 몇 가지 사실도 다르게 바꾸었다. 한편 《리트》를 쓸 때는 전남편이 원고를 샅샅이 검토해주기를 바랐지만 그는 모호한 인물로 남기를 원했다.


다섯 적절한 순간에 시간 순서를 바꾸어 예전에 몰랐던 정보를 독자에게 알려주었다. 원래의 서술 시점에서 잠시 벗어나는 것이다(만약 옆집 남자가 악명 높은 연쇄살인마 테드 번디 Ted Bundy였다는 게 나중에 밝혀졌다면 독자가 관심을 가질 만한 정보이므로 괄호 안에 써넣는 것이 좋다). 물론 그럴 때는 다른 시간적 배경에서 알게 된 정보라는 게 뚜렷이 드러나도록 했다.


여섯 시간을 단축했다. 예를 들어 “17년 뒤에 아빠는 뇌졸중으로 쓰러졌고……” 같은 문장을 쓰거나 중학교 1학년 한 해를 대표적인 일화 하나만 언급하고 넘어가는 것이다. 일부 사건이 일정 기간을 통째로 대표했다. 지루한 내용은 생략했다.


일곱 서사를 만들어냈다. 물론 뭔가를 쓰는 순간 누락되는 내용이 생기므로 쓰는 행위 자체가 조작이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작가에게 중요했던 일이 다른 사람에게는 별생각 없이 넘어갔던 일일 수도 있다.


여덟 감정이 격한 장면에서는 중간에 진행을 멈추고 내가 그 순간 의식하지 못한 뭔가에 대해 묘사했다. 그게 아마 내가 하는 가장 심한 거짓말일 것이다. 살아온 세계를 끊임없이 재창조하려다 보니 독자가 그 세계를 체험할 수 있도록 자꾸 꾸며내게 된다. 가톨릭 신자로서 죄책감을 느끼면서도 그렇게 약간의 왜곡을 가할 때가 있다.


아홉 친구의 요청으로 일시적으로 사실 관계를 바꾸어 친구를 보호했다. 내 친구 메러디스는 정신 병원을 제집처럼 드나들었는데, 자신이 학교에서 면도날로 손목을 긋는 장면을 노모가 읽고 괴로워하지 않기를 바랐다. 그래서 나는 그 장면을 다른 친구의 일처럼 묘사하기로 했다. 그래서 초판에서는 자살을 시도하는 친구 이름이 스테이시지만, 2판부터는 메러디스라고 나온다.


옛날에 공상했던 내용을 넣었다. 나의 내면은 외면보다 훨씬 풍부하다. 그리고 과거의 몇몇 공상은 명백한 진실처럼 느껴진다. 물론 그게 사실이 아니라 상상에 불과하다고 밝혔다. 《거짓말쟁이들의 클럽》에서는 의미 없는 허황된 재담 두 개를 완전히 지어냈다.


열하나 직접 본 게 아니라 들은 이야기를 장면으로 그려 넣었다. 물론 직접 보지 못했다는 사실을 밝혔다. 다음은 《리트》의 한 구절이다.


“어머니가 해럴드와 함께 마지막으로 술에 진탕 취한 이야기는 너무도 생생해서(그 기괴한 광경은 무척 회화적이다) 예외적으로 마치 내가 그 자리에 있었던 것처럼 서술하려 한다. 자주 들은 훌륭한 이야기는 때로우리를 가본 적이 없는 공간으로 데려가는 법이다.”


열둘 해석이 필요할 때는 되도록 너그럽고 공정하게 하려 했고, 그럴 수 없을 때는 개인적으로 싫어하는 인물이나 상황이라는 점을 고백했다. 대개 나 자신의 고된 삶에 초점을 맞추고, 다른 사람의 의도를 넘겨짚거나 사건과 인물을 지어내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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