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적 스토리텔링의 모든 것
회고록을 쓰는 일은 어렵다. 얼마나 어려운가 하면, 기억의 바닷속을 깊이 헤치고 들어간 사람은 누구나 물을 먹고 허우적댄다.
프랭크 콘로이는 《스톱타임》의 한 장을 다 쓰고 다음 장으로 넘어가기 전에 몇 주씩 술에 취해 지냈다.
캐럴린 시는 《꿈꾸기 Dreaming》 초고를 완성하고 두 시간 뒤 바이러스성 수막염에 걸려 물체 하나가 두 개로 보이는 증상이 생겼다. 그 일을 두고 시는 말했다. “‘넌 보지 말아야 할 걸 봤어’라고 뇌가 경고한 것이었어요.”
소설가 마틴 에이미스는 아버지에 관한 회고록 《경험 Experience》을 쓰면서 숨을 쉬기 어려울 정도로 쇠약해졌다. 소설을 쓸 때는 아무리 고되더라도 일과가 끝날 즈음에 약간의 쾌활함이 남아 있었던 반면, 회고록을 쓸 때는 진이 다 빠졌다고 했다.
소설가이자 시나리오 작가인 제리 슈탈은 회고록 《영원한 자정 Permanent Midnight》에 자신의 헤로인 중독에 대해 쓰다가 중독 증상이 재발하기까지 했다.
나는 원고를 쓰다가 오후쯤 되면 장거리 화물차 운전사처럼 노곤해져 서재 바닥에 드러눕곤 했다. 그러고는 안간힘을 다해 잠에서 빠져나와야 했다. 한번은 정신과 주치의에게 상담을 받다가 내가 기억을 억누르고 있어서 그렇게 잠이 오는 것이냐고 물었다. 그러자 “아뇨, 그냥 무척 피곤하신 겁니다”라는 답이 돌아왔다.
언젠가는 편집자와 함께 원고를 들여다보다가 마지막 쪽을 넘긴 순간, 얼굴에 열이 확 오른 적도 있었다. 그때 체온은 섭씨 39.4도로 난생처음으로 폐렴에 걸린 날이었다.
지금부터 회고록을 쓰지 말아야 하는 이유들을 줄줄이 이야기할 것이다. 그러고 나서 쓸 준비가 얼마나 되었는지 스스로 가늠할 수 있는 과제를 하나 일러주겠다.
○ 회고록을 쓰겠다니 잘못 생각해도 한참 잘못 생각했다고 조잘대는 참견꾼들의 목소리 때문에 괴롭다면, 마음의 평화를 되찾을 때까지 얼마간 글을 쓰지 말고 기다려라. 지나치게 휘둘리지만 않는다면 남의 의견에 신경을 쓰는 건 당연한 일이다.
○ 기억력이 나쁘다면 포기해라. 옛날 일을 어떻게 기억해내느냐고 묻는 사람들에게 나는 이렇게 대답한다. “기억하지 못하는 게 도리어 행운입니다. 어서 번듯한 직장에 취직하세요.”
○ 서술하고자 하는 사건들이 7~8년 이내에 경험한 일이라면 생각보다 힘겨울 수 있다. 세월이 흐를수록 점차 예전의 허영심에서 벗어나 과거를 더 깊이 들여다볼 여유가 생기는 법이다.
○ 젊을 때는 조금 기다리는 것이 낫다. 대부분 서른다섯 살까지는 점토처럼 말랑말랑하니까. 데이브 에거스는 큰 성공을 거둔 《비틀거리는 천재의 가슴 아픈 이야기 A Heartbreaking Work of Staggering Genius》를 고작 서른 살에 출간했지만, 이는 예외적인 경우로 본다.
○ 마음의 상처를 치료하고 싶어서 회고록을 쓸 생각을 했다면 그러지 말고 이야기를 들어줄 전문 상담사를 찾아라. 두말할 나위 없이 문학적 성과보다 정신 건강이 훨씬 더 중요하다.
○ 복수를 원한다면 변호사를 고용해라. 아니면 차라리 복수를 위한 글쓰기를 즐겨라. 내가 아는 한 친구는 자신의 책을 혹평한 사람의 책에 대해 서평을 써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우편으로 그 책이 도착했다. 그가 어떻게 반응했을까? “책을 들고 집 뒤쪽 베란다로 가서 총으로 쐈지.” 그리고 총 맞은 책을 출판사로 돌려보냈다.
차라리 다트 게임 세트를 사라. 문학은 복수를 위한 수단이 아니라 독자를 위한 것이다.
○ 싫어하는 사람의 이야기는 쓰지 마라(비록 소설가 휴버트 셀비는 크나큰 사랑을 품으면 싫어하는 사람에 대해 써도 된다고 주장했지만). 현재 진행 중인 이혼에 대해서도 쓰지 마라.
○ 글 내용이 특정 계급이나 인종 같은 큰 집단에 영향을 준다면 그들과 사이가 틀어질 각오가 되었는지 확인해라. 맥신 홍 킹스턴은 미국의 중국 이민자들에게, 프랭크 매코트는 아일랜드 출신자들에게 비난받았다.
○ 절대로 남에게 사과할 줄 모르고 절대로 자신의 생각을 바꿀 줄 모르는 고집쟁이는 지혜로운 영혼이 잡아끄는 순간에 깊은 진실을 알아볼 수 없다.
○ 앞의 내용과 통하는 이야기인데, 쓴 글을 고치고 다시 쓸 수 없다면 포기해라. 지난날에 대한 손쉬운 해석을 거듭 따져보고 바로잡아야 한다.
그래도 회고록을 쓰고 싶다면, 앞으로 느끼게 될 모든 감정을 다스릴 수 있다는 확신이 필요하다. 다음 과제를 해낸다면 내가 애지중지하는 볼펜으로 당신의 어깨에 친히 축복을 해주겠다.
당신에게 상당히 끔찍한 일이 일어난 적이 있다고 가정을 해보자. 회고록을 쓰려는 사람이라면 십중팔구 그런 경험이 있을 거다. 아마도 당신은 워밍업을 조금 한 다음에 최악의 장면을 ‘앞으로 언젠가’ 써야지, 하고 생각할 것이다. 그 장면을 향해 써나가다 보면 어떻게 되겠지, 하고 안심한다.
하지만 솔직해지자. 부자들이 세금 정산을, 악마가 예수를 두려워하듯 당신은 그 장면이 죽도록 두렵다. 그 장면은 한시도 뇌리에서 떠나지 않는다. 그러니 그 장면을 지금 당장 쓰자.
내 말을 오해해서는 안 된다. 이 과제의 목표는 그 장면을 얼른 써서 치워버리는 게 아니다. 그와 정반대다. 지금 쓴 초고를 잘 보이는 곳에 보관해야 한다. 최악의 기억과 더불어 방에 홀로 앉아 몇 시간씩 견뎌보기를 권한다.
그전에 먼저 평소보다 진실을 더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는 상태에 이르기 위해 집중하는 연습부터 해야 한다. 창의력을 봇물처럼 흘러나오게 하는 명상 기술을 다룬 참고서는 넘쳐난다. 1부터 10까지 세면서 호흡하기, 호흡 지켜보기, 만트라 암송, 시각화하기, 경전 공부하기 등 다양한 기술이 있다.
깊숙이 숨은 자신의 글쓰기 재능을 발휘하려면 머리를 굴려 연약한 자아를 감싸지 말고 마음을 살짝 열 수 있는 차분하고 평온한 상태에 다다라야 한다. 나는 평소 앞서 가고 싶은 욕심에 나 자신을 다른 사람이나 과거의 나와 비교하면서 달음질치고 조바심내고 계획을 세우며 내가 앞에서 몇 번째인지 마음속으로 끊임없이 확인하곤 한다.
하지만 한 꺼풀 벗겨내면 그 모든 것을 조용히 알아차리는 다른 자아가 있다. 한 친구가 전화해서 자기가 미쳐가고 있다고 했을 때, 나는 “그걸 누가 알아차린 거지?” 하고 물었다. 회고록을 쓰려면 먼저 고요하고 분별 있는 자아를 찾고 그로부터 출발해야 한다.
엉덩이를 의자에 붙이고(어느 현자가 말했듯이 바로 이게 작가가 되기 위한 유일한 조건이다) 15~20분 동안 머릿속에 갇힌 의식을 넓은 가슴속으로 밀어 내리는 연습을 하라. 여기서 목표는 경직된 정신의 긴장을 푸는 것이다. 따라서 처음에는 생각들이 길길이 날뛰어도 판단하려 들지 말고 내버려 두어야 한다. 얼마 안 가 재잘거리는 머리보다 무심하게 지켜보는 자아와 동질감을 느끼게 될 것이다.
진짜 자아가 마음속으로 들어올 수 있게끔 고요한 상태에 이르러야 한다. 다시 말해 과거로 가는 문으로 조심스레 걸어 들어갈 준비가 된 진실한 영혼을 품어 영감을 얻는 것이다. 그리고 여전히 눈을 감은 채 글로 쓰기 두려운 기억에 손을 뻗어보자.
먼저 그 장면을 육체적으로(오감을 사용해) 그려본다. 후각은 가장 오래된 감각으로(단세포 생물조차 냄새를 맡을 줄 안다) 다른 어떤 감각보다 예민하게 감정적 기억을 불러일으킨다. 그 당시 풍겼던 냄새를 떠올릴 수 있다면 이미 절반은 성공한 것이다.
무엇이 보이나? 무엇이 들리나? 무엇을 만지고 무엇을 맛보고 있나? 무엇을 입었나? 천이 까끌까끌한가, 부드러운가? 해변에서는 소금기를 머금은 물살이 튀니까 스웨터를 입었을 것이다. 참호 속에서는 땀이 등줄기를 타고 미끄러졌을 것이다. 입안에서 어떤 맛이 느껴지는가?
글을 쓰기 전의 나는 항상 마치 이른 새벽에 깨어나 순수한 세계로 통하는 웜홀을 찾는 듯한 상태가 된다. 우리에겐 뚜렷한 감각 기억과 애지중지해온 (또는 경멸해온) 대상이 필요하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과거의 몸이 필요하다.
포도 주스가 담긴 병을 감싼 차가운 손이라든지, 등에 달린 스위치를 누르면 심벌즈를 치고 머리를 때리면 소리를 내던 장난감 원숭이처럼 물질적이면서 정신적인 연결 고리를 찾아야 한다. 가장 확실한 기억에서 출발하자. 그러고 난 뒤에는 기억이 저절로 펼쳐지게 내버려 두면 된다. 물론 펼쳐진 기억은 매끄럽게 연결된 동영상이 아니라 순간적인 장면과 파편, 이런저런 인상이나 이미지일 것이다.
이제 눈을 뜬다. 제대로 집중했다면 기억이 더할 나위 없이 생생했을 것이고 어쩌면 약간 끔찍했을 수도 있다. 내가 가르친 학생들은 눈을 떴을 때 눈물이 그렁그렁해지곤 했다.
잠시 가만히 앉아서 전부 다 지나갈 때까지 기다리자. 어딘가 다녀온 기분이 들 것이다. 운이 정말 좋다면 과거의 자신에게로 돌아가는 길을 찾을 수도 있다. 과거의 얼굴로 과거의 조막만 한 손을 바라볼 수 있게 된 거다. 축하한다. 아주 훌륭하다. 대개는 몇 가지 파편적인 기억과 짧디짧은 순간들을 건질 뿐이다.
이제 중요한 과제를 내겠다. 살면서 가장 끔찍했던 기억 속 공간에 무너지지 않고 머무를 수 있겠는가? 얼굴이 콧물로 범벅이 되고 어깨를 떨며 오열하고 있다면 친구에게 전화를 걸고, 마사지를 예약하고, 산책을 가자. 아직은 그 공간에 머물 준비가 되지 않았다.
눈을 감았을 때 별달리 보이거나 느끼는 점이 없다면 역시 준비가 되지 않은 거다. 또는 수단 내전 같은 대규모 참사에 관한 글을 쓰는 것도 아니면서 자신의 생각만이 옳다는 분노, 이 단 한 가지 감정만 느낀다면 회고록은 당신의 장르가 아닌 거다. 그에 반해 생생한 과거에 감정적으로 접속한 느낌을 받은 사람, 어딘가 다녀온 사람, 감정이 북받쳐 올라 눈물을 흘리고 있지만 비탄에 빠지지 않은 사람은 계속 나아가도 된다.
그다음 할 일은 나중에 참고할 글을 몇 쪽 써 내려가는 거다. 아직 글의 목소리나 다른 요소에 대해 확신이 없으므로 연도 같은 배경 정보는 완벽하게 갖춰 넣지 않아도 된다. 그런 것들에 신경을 쓰면 집중력이 분산되고 골치만 아프다. 자잘한 정보들은 독자가 이미 알고 있다는 가정하에 써도 된다. 책에서 이 장면에 이르면 실제로 독자는 여러 가지를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과연 누구를 위해 자신이 글을 쓰려는 건지 의문이 들 수 있다. “나 자신을 위해 씁니다”라고 단호하게 말하는 작가도 많다. 나는 그들만큼 자신만만한 글쟁이가 아니다. 그래서 보통은 존경하는 동료 작가나 옛 스승, 아들, 돌아가신 신부님을 독자로 가정한다. 그러면 정보를 어떤 순서로 배열하는 게 좋은지 가늠하는 데 도움이 된다. 같은 내용을 심리 치료사나 점심을 같이 먹는 친구에게 이야기한다고 상상하면 어느 정보를 언제 이야기해야 하는지 금세 파악할 수 있다. 염두에 둔 독자가 있다면 떠오르는 육체적인 세부 사항을 모조리 그러모아 그 장면을 편지 형식으로 써보는 것도 좋다.
그러면서 동시에 작가의 내면을 묘사해보자. 현재에서 그 장면을 되돌아보는 관점이든, 과거 속에서 그 장면을 겪고 있는 관점이든 모두 좋다. 만약 과거와 현재를 왔다 갔다 하면서 서술한다면 현재에서 과거로 미끄러져 들어가는 느낌에 대해서도 쓰자.
다음 질문들을 지침으로 삼아도 좋다. ‘그때 무엇을 얻으려 했고, 어떻게 얻으려 했던가?’ ‘어느 방법이 효과 있었나?’ ‘어느 방법이 소용없었나?’ 그 기억이 객관적으로 끔찍하다기보다는 작가의 개인적인 성격상 각별히 끔찍했던 거라면, 절대로 실제보다 더 끔찍하게 서술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사람들은 끔찍한 일을 겪을 때 의식이 몸에서 빠져나간 것처럼 현실을 부정하며 자신을 보호하는 경향이 있다. 작가는 독자에게 그런 사실을 일깨워주는 게 좋다. 회고록 작가의 역할은 책 전체를 지독한 불행으로 떡칠하는 게 아니라 보통 사람이 작가의 삶 속으로 들어오게 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독자는 작가를 별난 사람으로 여기거나 불쌍히 여길 뿐이다. 어느 쪽이든 작가로서의 위신을 잃고 만다. 독자의 감정을 별로 고려하지 않고 지나치게 작가의 감정에만 치중한 책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이제 쓴 글을 치워두자. 적어도 일주일은 글 내용에 대해 생각하지 않도록 한다. 디저트용 젤리처럼 굳어서 자리를 잡을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그리고 나중에 글을 다시 읽었을 때 스스로에게 물어보자. ‘내가 쓰지 않은 게 뭐지? 옆에 있던 다른 이는 그 사건을 어떻게 바라보았을까?’
가장 중요한 질문은 바로 이거다. ‘내가 어떻게 보일지 두려운가? 나쁜 사람처럼 보이거나 좋은 사람처럼 보이는 문제를 넘어서서, 빼버리거나 바로잡거나 털어놓거나 활용할 수 있는 가식이나 자의식이 글 속에 들어 있나?’
작가로서의 자신감이 밑바닥까지 떨어졌을 때 나는 《리트》를 과연 완성할 수 있을지 절망에 빠졌다. 미리 받은 계약금을 돌려주려고 아파트를 팔 생각까지 했다. 그때 친분이 있던 예수회 수사가 아주 간단한 질문을 하나 했다. “아무것도 두렵지 않다면 무엇을 쓰겠나?” 처음에는 뭘 쓸지 정말이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하지만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으면 다시 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구나 답을 모를 수 있다. 나도 모를 때가 많다. 매 순간 발버둥쳐야 한다. 하지만 답을 찾으려는 열망이 있다면 이미 준비를 마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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