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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서출판 다른 Jan 25. 2019

몸은 기억한다

자전적 스토리텔링의 모든 것

글쓰기 교사가 지겹도록 되풀이하는, ‘말하지 말고 보여주라’라는 원칙의 뿌리에는 ‘육체성 carnal’이 있다. 육체적으로 보여주는 글은 설득력이 강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육체성이란 ‘다섯 가지 감각으로 파악할 수 있는 성질’이라는 뜻이다.



  독자는 글을 읽으면서 영상과 소리뿐만아니라 냄새와 맛, 촉감도 즐길 수 있어야 한다. 이때 작가의 타고난 성향에 따라 오감 중에서 특히 한 가지 감각이 두드러지게 나타날 수 있다. 대식가는 검은 호밀 빵에 훈제 소고기 햄을 얹어 한입 가득 깨물 때의 짭짤한 맛을, 섹스 중독자는 상대방의 부드러운 살결을, 화가의 눈을 지닌 작가는 시각적 아름다움을 그려낼 것이다.
  회고록에는 마늘이 잔뜩 들어간 수프 냄새, 동물 털을 만지작거릴 때 손에 느껴지는 감촉, 해수면 아래에서 형광 초록빛으로 빛나는 바다 생물의 모습 등 과거에 체험한 물리적 경험이 가득 담겨 있어야 한다. 육체성은 회고록의 필수 요소이자, 가장 기본적이며 가장 익히기 쉽다.

  글을 쓸 때 육체성을 세련되게 이용하려면 독자에게 미치는 심리적인 효과를 고려해 세부 사항들을 전달할 감각 자료(사물, 냄새, 소리)를 까다롭게 골라야 한다. 오감을 잘 활용한 세부 사항은 진실하고 특별하게 느껴지며, 그로 인해 독자는 이를 쉽게 받아들이곤 한다. 거기에 시적 의미까지 들어가면 더할 나위 없이 좋다.


  단 하나의 특별한 세부사항이 장면 전체를 불러올 때가 있다. 훌륭한 작가는 글에 넣을 성스러운 상징물을 찾아 온 세상을 뒤지고 다닌다. 물리적 상징물은 회고록은 물론이고 모든 장르의 글쓰기에서 매우 중요한 요소다.
  극작가이자 천재 단편소설 작가인 안톤 체호프는 인물의 핵심을 단번에 드러낼 정도로 상징성이 뛰어나고 의미심장한 사물을 작품에 자연스럽게 집어넣는 능력이 있다. 체호프의 유명한 단편 〈개를 데리고 다니는 여인 The Lady with the Dog〉은 어느 난봉꾼이 여름 휴양지에서 신앙심 깊은 젊은 부인을 몇 주 동안 유혹하는 이야기다.
  난봉꾼은 부인이 침대에서 우는 동안 수박을 잘랐다. 잘린 수박은 타락한 부인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부인이 우는 사이에도 태연하기만 한 난봉꾼의 식욕을 보여주는 장치다.


  독자는 신기하게도 물리적으로 명확하게 묘사한 내용을 ‘믿는다’. 한번은 내 책을 읽은 독자가 이렇게 말했다. “배보 세척제 깡통이 나온 부분을 읽고 책 내용이 전부 사실이란 걸 알았어요.” 또 다른 예로 중학교 때 나랑 키스 게임을 했던 남학생은 30년 전 그날 그가 작은 해마를 가슴팍에 수놓은 셔츠를 입고 있었다는 나의 말에 아연실색했다. “그걸 기억한다고? 무슨 마녀도 아니고!”
  한껏 예민해진 상태에서는 좁은 영역에 집중하기 마련이다. 그럴 때 얻은 감각 기억은 다른 기억보다 선명하게 남을 수 있다. 스트레스에 왕창 시달린 사람은 그때의 감각적 인상을 평소보다 더욱 강렬하게 간직한다.
  앞서 말한 키스 게임을 예로 들면, 나는 오랫동안 짝사랑했던 남자애의 품 안에 들어가 있던 느낌을 지금도 생생하게 떠올릴 수 있다. 거의 40년이 지났지만 그가 풍기던 쥬시 프루트 껌 냄새도 맡을 수 있다. 너무 가까이 붙지 않으려고 팔을 살짝 들면 손가락 끝에 해마 무늬가 찍혔다.
  물리적인 세부 사항은 설득력이 매우 좋지만 그렇다고 해서 진실성을 입증해주지는 않는다. 잘못된 기억이 한두 가지가 아닐 거다. 내가 키스한 남자애는 다른 껌을 씹고 있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경우에는 틀린 기억을 옮겨 적어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독자들도 기억의 불완전함을 이해하고 너그러이 봐주기 때문이다.




  육체적 감각이 발달하지 않은 작가가 기억에 남는 묘사를 하려면 고된 노력이 필요하다. 작가들은 누구나 초고를 쓸 때에는 인물을 가볍게 스케치한다. 머리카락 색깔, 눈동자 색깔, 몸무게 정도만 나열하는 것이다.
  생각이 짧은 작가는 그 정도면 충분하다는 듯 내버려 두는 바람에 인물의 존재감을 글 속에 뚜렷하게 새기는 데 실패하고 만다(어렸을 때 나는 늘 신경을 곤두세워 불안해하고 지나치게 주변을 경계하는 아이였다. 그래서 사람들을 돋보기로 들여다보듯이 뚫어져라 관찰하곤 했다. 남들은 잘 알아차리지도 못하는 자극이 내게는 크고도 요란하게 다가왔다).
  훌륭한 회고록을 다 읽고 책장을 덮으면 어떤 장소가 눈앞에 아른거리는 법이다. 그리고 마치 다른 세계로 가는 문을 여는 기분으로 책을 다시 펼치게 된다. 기억력이 좋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열심히 연습해서 그런 작품을 써낼 수 있다.
  나 역시 아주 뚜렷한 기억을 떠올리면 수십 년 전에 사라진 풍경을 과거의 눈으로 바라보는 듯한 으스스한 기분이 들 때가 있다. 예전의 나, 예전의 얼굴이 돌아온다. 내 안에서 그런 변화가 일어날 때면, 눈앞에 보이는 것을 그대로 적기만 해도 된다.


  다음 두 문단에 나타난 육체성을 비교해보자. 각각 훌륭한 작가가 쓴 것이다. 먼저 로버트 그레이브스의 《모든 것과의 이별》에 나오는 문단이다. 이 글은 빼어난 산문이기는 하지만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작가의 심리 상태를 보여주기보다는 그대로 말해준다.

  나는 여전히 전쟁을 치르고 있었다. 밤에 낸시와 한 침대에 누워 있는데도 포탄이 터졌고, 낮에 마주치는 낯선 사람들의 얼굴에서 죽은 친구들이 보였다. (……) 전화를 걸 수 없었고, 기차를 탈 때마다 멀미가 심했으며, 하루에 새로운 사람을 두 명 이상 만나면 잠을 이룰 수 없었다.

  그레이브스는 10년 넘게 전쟁에 대한 기억이 환각처럼 눈앞에 나타났다고 하는데, 전부 프랑스에서 보낸 처음 넉 달 동안 경험한 일이었다고 한다. 그는 이렇게 썼다. “로스를 떠나고 나서는 감정을 기록하는 장치가 고장 났던 모양이다.” 기억 저장소의 용량이 다 차버려서 눈앞에 보이는 걸 더는 저장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레이브스는 사실 육체성을 활용할 줄 아는 작가다. 그가 그려낸 참호 속 전투 장면을 읽다 보면 속이 다 울렁거린다. 하지만 위에 인용한 문단은 ‘사건 기억(마치 그 순간으로 돌아간 것처럼 생생하게 되살아나는 기억)’보다는 ‘의미 기억(의미가 정리되어 말로만 떠오르는 기억)’에 가깝다.
  그래서 장면다운 장면이 하나도 없고, 여러 장면이 몇 개의 구절로 압축되어 있을 뿐이다. 그는 자신이 아프다고 하지만 아픈 몸에 진짜 들어가 있는 상태는 아니다. 유일한 감각 기억은 침대에서 터지는 포탄에 관한 것인데, 비중 있는 기억이지만 자세히 다루지 않고 넘어가 버린다.
  죽은 친구는 복수(‘들’)로 뭉뚱그려 나오기 때문에 독자에게 덜 생생하게 다가온다(물론 그는 수많은 친구의 얼굴을 각각 보았을 것이다. 이 인용문만 놓고 분석하자면 그렇다는 말이다).


  위 글을 마이클 허의 《디스패치》에 나오는 “불현듯 떠오른 나쁜 기억”의 물리적 세부 사항과 비교해보자. 허는 나쁜 기억이 환각처럼 생생하게 떠오르는 것을 마약 체험에 비유한다.

  로큰롤 음악에 섞여 연달아 총소리가 터지고 사람들의 비명이 울리곤 했다. 한번은 사이공에서 스테이크 요리를 앞에 두고 지난겨울 후에에서 본, 썩고 불타던 살점들을 떠올리고 말았다. 가장 끔찍한 것은 치료소나 헬리콥터에서 죽어나간 걸 내 눈으로 본 사람들이 주위에 버젓이 걸어 다니는 모습이었다. 콘티넨털 호텔 테라스의 식탁에 혼자 앉은, 울대뼈가 크고 금속 테 안경을 쓴 청년은 2주 전 죽은 해병이었을 때가 더 차분해 보였다.

  허는 처음에 기절할 뻔했다가 다시 청년을 바라보고는 그가 유령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스테이크를 보고 “썩고 불타던 살점들을” 떠올린 것으로 미루어 보아 냄새 때문에 예전 기억이 돌아온 것이다.
  그레이브스가 전쟁에서 잃은 친구를 복수로 뭉뚱그려 통칭하고 넘어간 것과 달리 허는 “울대뼈가 크고 금속 테 안경을 쓴” 한 해병의 유령을 보았다고 한다. 그리고 이어서 자신의 신체적 반응을 독자가 공감할 수 있게 서술한다. “숨이 차올라 목이 막혔고 얼굴이 차가워지며 하얗게 질려, 떨고 떨고 또 떨었다.”(여기서 “떨고 떨고 또 떨었다”는 로큰롤 언어를 차용한 것이다. 허는 로큰롤 리듬을 이용해 《디스패치》의 목소리에 힘을 불어넣고 노랫말 같은 표현과 블랙 유머로 독자를 연민 속에서 끌어냈다).




  육체적 기억이 반드시 상처 입은 기억일 필요는 없다. 단순한 일도 되풀이되면 기억에 남는다. 내 친구는 딸이 어렸을 때 토요일마다 호박 머핀을 먹으러 한 식당에 데려갔는데, 그 식당이 다른 이름으로 문을 열었을 때 대학생이 된 딸을 데려갔다. 그러고는 아무런 설명 없이 호박 머핀을 시켜 딸에게 한 조각을 먹어보라고 주었다. 한입 베어 물자마자 딸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기억이 난 것이었다.
  딸은 어렸을 때 갔던 식당에 대해 떠오르는 사실들을 이야기하고 그 식당에 들렀다가 식물원에 가곤 했던 것도 기억난다고 했다. 그러면서 딸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하지만 같은 머핀일 리가 없어요. 여긴 새로 연 식당이라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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