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 재판이혼-기다림과 버팀의 시간

양재 가정법원까지, 끝없이 파도를 타던 날들

by 다루오

두 번의 결심


나는 처음부터 혼자 싸울 생각은 아니었다.

첫 재판을 준비할 때는 변호사를 선임했다.

전문가의 손을 빌려야 이 고비를 넘길 수 있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시기, 뜻밖에도 셋째를 임신했다.

사실상 아이 아빠에게 마지막 기회를 준 셈이었다.

“이번엔 달라지겠지.”

그렇게 믿고 싶었다.


그러나 같은 실수는 너무나 쉽게 반복됐다.

결국 변호사 수임을 포기하고,

나홀로 소송을 다시 준비하는

어이없는 상황에 놓였다.

함께 싸워야 할 문제를

오히려 혼자서 짊어지게 된 것이다.




막내의 수술과 코로나 시절


셋째는 구순열로 태어났다.

그 사실을 받아들이기도 전에

수술 준비와 병원 케어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재판, 병원, 육아, 직장이

한꺼번에 나를 향해 덮쳐왔다.

특히 코로나 시기라

누구의 도움도 쉽게 받을 수 없었다.

병원 출입 제한, 마스크 너머로 아이를 안고

대기실을 오가던 공기마저 무겁게 느껴졌다.


그 시절의 나는 매일 같은 질문을 했다.

“이 시간을 어떻게 버틸 수 있을까?”

그리고 매번 같은 답을 내렸다.

“오늘 하루를 버티는 것, 그것밖에 없다.”




하루의 타임라인


담임 업무를 맡은 해였다.

아이들 출석을 확인하고,

수업준비를 하고

생활기록부를 작성하는 틈틈이

법원 제출 서류를 챙겼다.


오전 8:00 – 교무실 도착.

동료 교사들에게 환하게 웃으며 인사한다.

속으로는 “오늘은 재판 날”이라고 중얼거리면서도,

표정 하나 흐트러지면 안 됐다.


오전 10:30 – 3, 4교시 수업을 마치고

교무실 책상 서랍 속 봉투를 꺼낸다.

안에는 변론 준비서면과 아이들 사진 사본이 있다.

서류를 품에 안고 교무실 문을 나선다.


오전 11:00 – 택시를 타고 양재 가정법원으로 향한다.

창밖 풍경이 스쳐 지나가지만,

머릿속은 수백 번 시뮬레이션한 답변으로 가득하다.


오전 11:50 – 법원 앞에 도착.

시계를 보며 잠깐 숨을 고른다.

점심도 못 먹었지만 배고픔을 느낄 겨를이 없다.


오후 12:00 – 재판 시작.

차가운 법정 의자에 앉아 사건번호가 호명되길 기다린다.

변호사 없이 홀로 앉아 있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이 싸움이 얼마나 외로운지 실감한다.


오후 1:30 – 재판 종료.

판사의 중립적인 표정과

상대방의 느릿한 태도가

묘하게 대비된다.

속이 답답하지만, 밖으로 드러내지 않는다.


오후 2:00 – 다시 택시를 타고 학교로 복귀.

복도 끝에서 학생들이 뛰어오는 소리가 들린다.

교무실 문 앞에서 숨을 고르고,

다시 ‘선생님’ 모드로 돌아간다.






지연되는 시간, 견뎌야 하는 이유


상대방은 여전히 출석을 미루고,

가사조사에도 불성실했다.

그 ‘버티기 전략’ 속에서

나는 법정의 차가운 공기와

끝없는 대기 시간을 견뎌야 했다.


그러나 포기할 수 없었다.

법적으로 한부모 지위를 얻어야만

아이들을 위한 최소한의 안전망이라도

마련할 수 있었으니까.





원망 대신 남은 것


그 시절은 힘들었고, 원망스러웠다.

재판이 길어지는 동안

몸과 마음이 닳아갔고

미래에 대한 확신은 희미해졌다.


그런데 시간이 흘러 지금 돌아보면,

그를 향한 미움은 이상하리만큼 사라졌다.

대신 남은 건,

그 시절을 견뎌낸 나와

끝까지 내 옆을 지켜준 세 아이에 대한

애틋함과 고마움이었다.


우리는 그 시간을 함께 버텼고,

그 과정에서 서로를 단단히 묶는

보이지 않는 끈이 생겼다.

그 끈은 지금의 우리 가족 울타리를

더 깊고 넓게 만들어주었다.




나는 그 시절을 원망하지 않는다.
버텨낸 우리 넷이,
나의 가장 큰 자부심이기 때문이다.

판사님께 사정을 호소하다


어느 날, 나는 결국 판사님께 말했다.


“판결까지 기다릴 수 없습니다.

조정이라도, 어떻게든 빨리 종결해 주십시오.”


그건 내 자존심을 내려놓는 순간이었다.

유책이 명백함에도, 나는 ‘빨리 끝내는 것’을 선택했다.

아이들 양육권을 지키고,

법적으로 한부모 지위를 인정받아

경제적으로 최소한의 안전망이라도 갖추기 위해서였다.





몸과 마음이 무너진 시간


재판이 길어지는 동안

나는 우울증과 공황장애를 얻었다.

병원 대기실에서, 정신과 진료 차트를 들고 앉아 있으면

한때 강단에 서서 아이들을 가르치던 내 모습이

아주 먼 과거처럼 느껴졌다.


그 시절, 나는 하루하루를 ‘견디는 것’만으로도 벅찼다.

수업 준비와 아이 셋의 육아,

재판 준비와 병원 치료가

서로 얽혀 나를 끌어내렸다.





그래도 버텼다


그 시간 동안 내가 배운 건,

‘완벽히 이기는 것’보다 ‘무너지지 않고 남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사실이었다.


재판이 끝났을 때, 나는 승리감보다

지독한 피로감과 안도감을 동시에 느꼈다.

그리고 다짐했다.

앞으로 어떤 싸움이 오더라도

나와 아이들의 시간을 이렇게 길게 빼앗기게 두지 않겠다고.




나는 지는 싸움도, 이기는 싸움도 했다.
하지만 끝까지 버틴 싸움이 결국 나를 지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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