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 대신 완성을 선택하다
나는 원래 ‘완벽한 하루’를 꿈꾸는 사람이었다.
아침엔 갓 지은 밥에 반찬 다섯 가지 이상, 아이들 머리는 단정하게 빗겨주고, 등교 전엔 간단한 영어 회화 한 줄이라도 외우게 하고.
저녁엔 건강한 집밥과 식탁 위에서 가족 대화를 나누며 하루를 마무리하는 그림.
머릿속에는 늘 그런 이상적인 하루의 시퀀스가 있었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고등학교 교사라는 직업상 아침 출근 시간은 늘 빠듯했고, 아이들과 함께하는 아침 식탁은 대부분 포기해야 했다.
나는 아침 시간을 돌봄 선생님께 온전히 의탁했다.
그분께 믿음을 실어주는 연습을 하면서,
‘내가 할 수 없는 영역, 내가 돌볼 수 없는 영역은 과감히 내어주는 법’을 배웠다.
그래서 나 스스로에게 단 하나의 기준을 세웠다.
아침은 맡기더라도, 저녁만큼은 밀도 높게 보내자.
적어도 하루 한 끼는 엄마가 직접 차린 밥을 먹이며, 식탁 위에서 그날 있었던 일을 나누고 싶었다.
하지만 그마저도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퇴근길의 피로, 학교 업무, 쏟아지는 가정통신문, 집에 오자마자 벌어지는 세 남매의 소란…
그 모든 것을 지나고 나면, 싱크대 앞에 서서 반찬을 꺼낼 힘이 남아 있지 않았다.
그 자리를 치킨, 짜장면, 햄버거, 떡볶이, 밀키트가 채웠다.
아토피로 고생하는 아이들의 피부를 보며, 조금씩 불어 가는 체중을 보며 마음이 무거워졌다.
그래서 주말만큼은, 방학만큼은 기를 쓰고 요리를 했다.
제철 재료로 국을 끓이고, 반찬을 만들고, 아이들이 좋아하는 빵을 굽는 시간.
그건 ‘의무’가 아니라 ‘사랑’이었고, 우리 가족의 작은 완성형이었다.
그리고 또 하나 부끄럽지만 솔직히 고백할 부분이 있다.
가끔 퇴근 후 부엌에 서서 저녁 준비를 하다 보면, 냉장고 속 차가운 맥주 한 캔이 나를 부른다.
아이들이 거실에서 웃고 떠드는 소리를 들으며, 부엌 한쪽에 기대어 그 맥주를 천천히 마시는 시간.
그건 내 하루를 버티게 해주는 ‘작은 의식’이었다.
하지만 나는 이 부분에도 원칙이 있다.
첫째, 가족 외에는 누구와도 술을 마시지 않는다.
둘째, 집 밖에서는 절대 술을 마시지 않는다.
셋째, 한 잔 이상은 마시지 않는다.
아이들에게도 숨기지 않는다.
“이건 엄마의 연약한 부분이야. 줄여나갈 수 있게 기도해 줄래?”
나는 거짓말하지 않고, 감추지 않는다.
그것이 아이들에게도 ‘약함을 인정하는 용기’를 보여주는 방식이라고 믿는다.
주말과 방학에 만든 요리는 꼭 사진으로 남긴다.
잘 차려진 상차림, 아이들이 맛있게 먹는 얼굴, 웃음소리가 가득한 식탁.
그건 ‘완벽’은 아니었지만, 분명 ‘완성’되어 가는 과정이었다.
평일의 배달음식과 주말의 요리, 그리고 때로는 키친드렁커의 저녁이 함께 우리 가족의 이야기를 만들었다.
그 모든 조각이 모여 지금의 우리를 완성해 간다.
나는 여전히 부족하다.
하지만 아이들이 원하는 건 ‘완벽한 하루’가 아니라,
서툴고 힘들어도 함께 웃고, 끝까지 곁에 있는 엄마다.
완벽이 아니라 완성이다.
나는 아이들과 완성해 가는
큰 그림을 보는 연습을
오늘 하루만큼 해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