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 싱글맘의 감정사전 시리즈 - 혼자 육아하며 마주하는 복잡한 감정들
밤 11시, 아이들이 모두 잠든 후에야 비로소 내 마음과 마주한다.
파김치가 되어 기절하듯 잠들 때도 많았지만,
그보다 더 많은 밤들은 3시간 남짓 자고 나서 눈이 떠져버리곤 했다.
그럼 밤이 한없이 길어졌다.
새근새근 자는 아이들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밀려오는 건 복잡한 감정의 쓰나미였다.
참 너무 예쁘고 좋아서
한없이 볼을 부비고 뽀뽀하고 애틋해서 미칠 것 같으면서도,
한편으로는 밀려오는 슬픔이라고 해야 하나, 아련함이라 해야 하나.
그런 부모로서 느끼는 부채감.
양가감정이라고 하지, 이런 걸.
"오늘도 소리 질렀는데..."
"아침에 너무 재촉했는데..."
"따뜻하게 안아주지 못했는데..."
천사 같은 얼굴들 앞에서
나는 괜찮은 엄마였을까, 하는 질문이
가슴을 후벼팠다.
그런 감정들을 동시에 견디는 몇 시간을
뒤척이다가 새벽에 일어나 평소대로 새벽 루틴을 마치고 출근하고.
그런 시간들을 보내야 했다.
밤의 고요함 속에서 내 마음은 쓰레기장 같았다.
뒤죽박죽 뒤섞인 생각들이
정리되지 않은 채로 머릿속을 맴돌았다.
"다른 엄마들은 어떨까?"
"아빠가 있는 집 아이들은 얼마나 행복할까?"
"내가 혼자 키운다고 아이들에게 상처 주는 건 아닐까?"
질문들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고,
답은 어디에도 없었다.
아이들이 커갈수록 육체노동의 강도는 줄어들어갔다.
정말 거짓말처럼 기절하듯 잠드는 그 시간은
점점 나도 내 여유를 찾아가며 나를 돌보며 잠드는
그런 시간으로 바뀌어 갔다.
아주 서서히, 하지만 반드시.
변해갔다.
어느 날 누워서 하루를 돌아보는데,
그냥 감사가 나오는 거였다.
오늘 하루도 무사히 잘 지낸 우리 아이들이 감사하고,
그리고 하루를 잘 마무리한 내 자신에게도 감사하고.
그리고 어김없이 다가올 내일 새벽 미명이 기대되고.
5년.
그 5년간 아이들만 큰 게 아니었다.
나도 많이 성장했다.
내면이 참 질서정연해지고 고요해졌다.
이젠 웬만한 일에 요동하지 않고
작은 일에도 크게 감사하며 만족할 줄 아는 그런 내가 된 거다.
이제 더 이상 잠들기 전 내 마음이
불안하게 요동치거나 희한한 양가감정으로 복잡해지지 않는 이유는
상황이 나아져서가 아니다.
켜켜이 쌓인 세월만큼 내 심장이 훈련된 거다.
내 생각의 회로가 이제 제 길을 갈 줄 알게 된 거다.
어떤 길을 가야 내가 가장 안전한지,
어떤 생각의 경로로 움직여야 우리 아이들이
최적으로 성장하는 방향으로 견인될지를.
그래, 이게 바로 엄마가 가지는 본능.
엄마만이 가지는 유전자라고 나는 확신한다.
밤 11시, 이제는 자문한다.
"괜찮은 엄마였을까?"가 아니라
"내일은 어떤 엄마가 되어줄까?"
질문이 바뀌었다.
과거의 후회에서 미래의 가능성으로.
부족함에 대한 자책에서 성장에 대한 기대로.
밤 11시의 나는 이제 안다.
완벽한 엄마는 없다는 것을.
하지만 계속 성장하는 엄마는 있다는 것을.
아이들이 새근새근 잠든 얼굴을 보며
이제는 이렇게 속삭인다.
"오늘도 최선이었어, 나."
"내일은 더 따뜻한 엄마가 되어줄게."
그리고 고요히 눈을 감는다.
새벽 4시에 일어날 나를 위해서.
내일 또 최선을 다할 나를 위해서.
밤 11시, 괜찮은 엄마였을까 하는 질문은
이제 감사한 하루였다는 고백이 되었다.
5년의 시간이 가르쳐준 가장 소중한 깨달음.
엄마의 마음도 아이들처럼 자란다는 것.
천천히, 하지만 확실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