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1 이혼 후 달라진 친구들 — 소외감과 선별

C. 싱글맘의 관계지도 시리즈 - 변화한 인간관계와 새로운 연결들

by 다루오


내 인생에는 두 번의 지진이 있었다.
한 번은 결혼, 그리고 또 한 번은 이혼.
둘 다 내 옆에 서 있는 사람들의 얼굴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01. 결혼하니까 친구들이 달라지더라


결혼 전에는 내가 원하는 게 모든 선택의 기준이었다.
오늘 저녁은 누구를 만날지, 주말엔 뭘 할지,
급하면 친구에게 전화 걸어서 하소연하고,
새로운 사람 만나고, 관계 넓히는 일에 별다른 제약이 없었다.


그런데 결혼하고 나니까 모든 게 '우리' 중심으로 돌아갔다.
저녁 약속 잡기 전에 "그날 우리 집에 뭔 일정 있지?" 먼저 확인하게 되고,
주말은 당연히 둘이 함께 보내는 시간이 우선이었다.


물리적으로도 멀어졌다


결혼하면서 사는 곳도 바뀌었다.
아침에 타는 지하철역이 달라졌고,
자주 가던 동네 카페는 이제 한 시간 거리였다.
퇴근 후에 가볍게 들르던 친구 회사 앞도
'작정하고' 만나야 하는 거리가 돼버렸다.


관계는 물리적 접점이 있어야 유지된다.
그 접점이 사라지니까 아무리 친해도 서서히 희미해졌다.


대화 주제도 안 맞더라


싱글 때는 연애 얘기로 밤을 샜다.
"결혼하면 어떤 집에 살고 싶어?" "아이 꼭 낳을 거야?" 같은 질문들이
상상과 꿈의 영역에서 오갔다.


근데 결혼 후에는 그 주제들이 현실이 됐고,
가끔은 무겁고 복잡한 문제로 변했다.
나와 싱글 친구들 사이에 보이지 않는 간극이 생겼다.
그 간극이 크면 대화가 더 이상 재미없어진다.


첫 번째 필터링


이때 알게 됐다. 결혊이 첫 번째 인간관계 필터라는 걸.


새로운 가정을 진심으로 축하해주고,
배우자와 함께 만나도 편한 친구,
가정생활 얘기를 자연스럽게 나눌 수 있는 사람들만
결혼 후에도 자연스럽게 남았다.



02. 이혼하니까 또 한 번 정리됐다


이혼은 두 번째 필터였다.
결혼이 '누군가를 내 삶에 들이는' 과정이었다면,
이혼은 '누군가를 내 삶에서 내보내는' 과정이었다.


깊어지는 소외감


정말 외롭고 힘든 싸움을 해야 했던 건 사실이다.


특히 아이를 혼자 기르며,
아이를 기르는 부부들 모임에 내가 혼자 아이를 데리고
낄 수 없었던 경험은 나를 정말 작아지게 했었다.


흔히들 플레이데이트라고 하지.
아이를 데리고 부부들이 만나서 같이 키즈카페도 가고
주말엔 같이 펜션 잡아서 여행도 가고 캠핑도 가고 하잖아...


그런 모임에 내가 더러 초청되기를 기대하지만
아이가 어릴 땐 더욱 힘들었던 게
내가 거기 끼게 되면 우리 아이들이 천덕꾸러기가 되는 거야...


다른 집들은 아이들 엄마아빠 두 부부가
아이 하나 혹은 둘을 집중 케어하는데
나는 내가 애 셋을... 다 케어하는 게 거의 불가능하니까
결국 다른 부부 중 한 사람의 손을 빌리는 꼴이 되니까.


민폐가 되어서...
따라가도 눈치 보이고, 또 끼지 못해도 소외감 때문에 서운하고...


혼자만의 발버둥


그래서 난 어느 순간 내가 혼자 아이들을 데리고
여행을 다니기 시작했었다.


혼자 전국 팔도를 돌아다니며 캠핑도 하고 차박도 하고
게스트하우스에서 자기도 하고...
애 셋을 혼자 데리고 등산도 가고... ㅎㅎ


지금 생각하면 무슨 패기였나 싶지만
그 정도로 난 그 소외감에서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을 쳤던 시간들이 있었다.


사라지는 사람들


배우자 중심으로 연결된 인맥은 가장 먼저 사라졌다.
결혼식 때 축하하러 왔던 사람 중 절반 이상이
내 결혼생활이 끝났다는 걸 알게 된 순간 더 이상 연락이 없었다.


몇몇은 연락을 해도 어색한 위로나 불필요한 호기심으로만 다가왔다.


심지어 결혼 전부터 알던 친구 중에서도
이혼이라는 단어 앞에서 조심스러워진 애들이 있었다.
'이혼녀'라는 꼬리표가 그들의 대화를 제한하고,
만남 빈도를 줄여버렸다.



03. 그래도 남은 사람들이 있었다


진짜 내 사람들


이혼 이후에 진짜 내 사람이라 느낀 건
이것저것 걱정 늘어놓으며 너스레 떠는
피상적 공감을 해주는 친구들이나 지인들(가족 포함)이 아니라
정말 말없이 만나서 밥 한 끼 사주거나
애들 옷 한 벌 사주거나 상품권 보내며
'난 너를 믿는다'는 눈빛을 보내주는 사람들이었다.


낮이고 저녁이고 내가 속 터질 것 같을 때,
미칠 것 같을 때 전화 받아주고
몇 시간씩 내 성토를 들어주던 사람들.


내가 코너에 몰려서 독 안에 든 쥐 꼴일 때
말없이 내 손 잡아주고
그저 같이 눈물 흘려주던 사람들.


그런 사람들이 있었다.
그 사람들이 결국 지금까지 남아서 내 옆을 지켜주고 있다.


진짜 배려를 아는 사람들


그리고 좀 선별이 됐다고 한다면,
내가 빚지는 느낌, 눈치 보는 느낌 싫어한다는 걸
미리 알아채고 배려해주는 부부들도 있어서
가끔 초대받아서 여행 가던 때가 있었는데
그때 그 사람들은 아직도 나와 친분이 두텁다.


반면에 어설픈 위로를 하려거나
아니면 오히려 없는 일처럼 덮고
아무렇지 않게 나를 대하려던 그런 사람들은
글쎄, 내 연락처에 있긴 하지만
난 이제 애써 내가 먼저 찾지 않게 됐다.


난 정리됐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04. 두 번의 정리로 알게 된 것


결혼과 이혼, 둘 다 관계를 재편한다. 하지만 방식이 다르다.


결혼: 새로운 사람들을 들여오고 우선순위를 재조정
이혼: 불필요한 소음을 제거하고 진짜만 남김


결혼은 새로운 사람을 들이는 일이 많았다면,
이혼은 관계를 비워내는 일이 많았다.


그 과정에서 알게 된 건,
관계의 양이 줄어드는 건 손실이 아니라 정제라는 사실이다.



05. 깨달음


두 번의 재편을 거쳐서 배운 건 이거다.


첫 번째는 '함께 갈 사람 고르기'였고,
두 번째는 '끝까지 남을 사람 걸러내기'였다.


이 두 과정을 거치고 나니
내 곁에는 여전히 내 이름을 불러주는 사람들만 남았다.
그들은 내 인생의 큰 파도를 함께 버틴 진짜 가족 같은 존재다.


사라지는 건 인연이 아니라 껍데기다.
속살만 남은 관계야말로 오래 간다.


이혼 후 달라진 친구들을 보며 처음엔 서운했다.
하지만 이제는 감사하다.
그 과정이 없었다면
진짜 소중한 사람들을 더 선명하게 볼 수 없었을 테니까.



두 번의 관계 재편으로 내가 얻은 가장 큰 선물은
진짜와 가짜를 구별하는 눈이었다.
이제 나는 안다.
남는 사람이 진짜 내사람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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