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 싱글맘의 관계지도 시리즈-변화한 인간관계와 새로운 연결들
사실 학부모 특강이나 공개수업에서 겪는
특별한 어려움은 많지 않았다.
하지만 아이들 어린이집에서
요즘 부모 참여도가 굉장히 높아지면서
정말 힘든 순간들이 있었다.
특히 "아빠와의 데이트"같은 이벤트들...
어린이집에서 기획하는 이벤트들이 참 좋긴 하다.
"아빠와 쿠킹 타임", "아빠와의 데이트"같은 것들.
길도 좋고 나도 그런 시간들이 많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엄마한테는 쉼을 주는 거고,
아이들한테는 아빠와의 단둘이 추억을 쌓을 기회를 주는
정말 좋은 기획이라고 생각한다.
문제는 우리 아이들은 데려갈 아빠가 없다는 거였다.
아이들은 행사에 참여를 못하거나
아니면 할아버지를 급조해서 데리고 가야 했다.
구시아버지 활용 작전
우리 집 상황이 좀 특수했던 건
아이들 친할아버지, 그러니까 시아버지와의 관계가 참 애매하게 연결되고 있었다는 거다.
이게 내 성격의 반영이기도 한데,
사실은 연락을 완전히 끊고 안 보는 게 맞는데
나는 누군가와 척을 지고 등을 지는 게 완전히 되지 못하는 성격이라서...
아이들을 너무 보고 싶어 하시고
아이들을 보려고 하시는 시아버지를
완전히 끊어내지 못해서
굳이 보려고 하신다고 하면 얼굴은 보여드리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아빠와의 시간"이런 게 있을 때
남자 어른이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으니까
시아버지를 활용해서 그 행사를 계속 아이들과 했다.
다른 부모들에게는
"아빠는 주말에도 출근하는 직업"인 것처럼
포장하거나
"주말부부처럼 지방에서 일한다"는 식으로
본의 아니게 그런 식으로 포장해야 했다.
그런 풀 썰들을 계속 만들어내야 하니까
그게 좀 힘들었다.
학부모들과의 대화에서
학부모들과 이야기하다 보면
아무래도 아빠들 사이의 관계 얘기를 많이 하게 되는데
사실 나는 있는 것처럼 연기를 하고
얘기를 많이 해야 되는 경우가 많았다.
이건 엄마들과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선생님들과 친해지는 법
학교에서 선생님들과 친해지는 방법 중 하나가
카톡으로 소소한 얘기 나누는 건데
선생님들과 다 함께 하는 얘기가 애들 얘기도 하지만
남편과의 관계 얘기도 많이 하게 된다.
정말 친해지게 되면 그런 얘기들을 하는데,
그 관계 얘기를 하다 보면
내가 이혼했다는 사실을 밝힐 수도 없고
(지금도 알고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긴 하지만)
그러다 보면 괜히 없는 얘기들을 지어내야 하기도 하고
정말 민망해질 때가 있다.
"남편은 무슨 일 하세요?"
"육아는 많이 도와주세요?"
이런 질문이 나오면 나는 연기를 해야 했다.
"우리 남편? 정말 많이 외조해주죠"
많이 도와주는 남편이 있는 것처럼,
날 많이 돕는 시댁이 있는 것처럼.
여우주연상감으로 아주
메소드연기를 펼치는 희대 열연을 펼쳐야 했다.
그러면서도 엄마들 사이에서
눈흘김을 피하려면
조금씩 남편 욕도 해줘야 하기도 했다.
"우리 집에 아들이 둘이잖아요.
입양한 첫째 아들 다들 하나씩 데리고 사시죠?"
하는 식의 농담반 진담반의 멘트는 기본 상식이랄까.
그런 식으로 엄마들 사이에서
인지 게임을 하면서 살아남은 세월.
난 여우꼬리 9개 달린 삼 남매 기르는
싱글맘으로 교묘하게
무지막지한 생존 게임의
승자로 살아남는 중이었다
근데 이게 거짓말을 잘하는 타입이 아니라서
오래가지 못하는 걸 내가 스스로 안다.
언젠가는 내가 내 발을 걸고넘어질 거라는 걸.
어느 순간
"어? 지난번에는 남편이 출장 간다고 했는데
이번에는 왜 주말 근무라고 해?"
이런 식으로 앞뒤가 맞지 않을 때가 생긴다는 걸.
그럴 때마다 식은땀이 나고
"아, 내가 왜 이런 연기를 하고 있지?"
나는 누구 여긴 어디
이런 식의 깊은 현타가 몰려온다.
처음에는 "아이들을 위해서"라고 생각했다.
아이들이 위축되지 않게,
다른 아이들과 다르다는 걸 느끼지 않게.
하지만 내 영혼이 점점 지쳐갔다.
엄마들 대화에서 남편 얘기가 나올 때마다
순간적으로 긴장하게 되고,
"이번에는 뭐라고 둘러댈까?" 하는 생각부터 드는
그런 나 자신이 싫어졌다.
내가 나답지 못하다는 게 옭아매는 건
겉사람인 내가 아닌 속사람인 나,
내 영혼 깊숙이 부딪히는 양심과의 절연이었다.
그 부대낌을 얼마나 잘 소화하느냐가
한 개인이 가지는 모럴의 척도 일터
아 착한 척하자는 게 아니라 난 그냥 단순무식한
부산여자의 진을 타고나서 도저히 그걸 견딜 수 없는
한계점에 다 달았음을 온몸이 느끼고 반응했다.
각종 신경증으로
편두통 울렁거림 소화불량 등등..
어느 날 깨달았다.
이 연기는 언젠가 끝나야 한다는 것을.
아이들도 점점 크고 있고,
나도 점점 지치고 있고,
거짓말은 점점 복잡해지고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런 나를 보며 자라는 아이들에게
뭔가 잘못된 신호를 주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최근에 전략을 바꿨다.
정말 믿을 만한 선생님 앞에서는
내가 싱글맘이고 차상위라는 걸 솔직하게 털어놓기 시작했다.
그랬더니 그런 선생님들을 의외로 많이 만나게 됐다.
이건 최근에 있었던 일이다.
둘째가 굉장히 사교성이 좋다.
걔는 나이를 초월해서 친구를 만든다.
지금 초등 1학년인데 5살 아이부터
심지어 7살, 초3, 초4까지도 친구로 만든다.
태권도에 가면 태권도장의 모든 아이와 친구가 된다.
그래서 어떤 친구랑 친하게 지내다가
그 친구가 수업 끝나고 저녁 먹을 시간에
아빠와 함께 하원하는데
사실
나는 픽업을 잘 안 한다.
애들을 좀 강하게 키웠다.
집까지 길을 외워서 걸어 올 수 있는 거리면
내가 굳이 픽업하지 않는다.
그 집은 아빠가 픽업을 하러 온 상황이었고,
어떻게 어떻게 해서 더 놀다가
그 집에서 저녁까지 먹고 오게 되는 일이
빈번히 생겼다.
이런 일이 몇 번 반복되는데
그 아빠가 조금 일찍 와서
아이를 픽업해 가는 상황에서
뭔가 미묘한 게 있었다.
"아.. 왜 엄마가 픽업을 안 오시는데?"
처음엔 단순하게 생각했다.
젊은 부부가 맞벌이를 하니까
엄마는 퇴근이 늦고 아빠가 먼저 픽업을 하는 거겠지.
요즘 그런 가정들 많으니까.
그런데 뭔가 느낌이 왔다.
그 집 상황이 우리랑 비슷한 건 아닐까?
별거를 하거나, 주말부부이거나,
아니면...
그래서 내가 그런 확인하는 걸 멈추고
그 집 아빠한테 카톡으로 먼저 연락을 했다.
"죄송해요. 루비가 늦은 시간까지
댁에서 민폐면 집으로 보내셔도 돼요"라고.
그런데 이 아저씨가 정말 스윗하셨다.
우리 둘째랑 같이 저녁 먹는 사진까지
찍어서 보내주시는 거였다.
"애가 참 밝고 예뻐요. 같이 저녁 먹었어요."
직장 다니는 아저씨가 퇴근하고 와서
힘들어 죽겠는데 남의 집 애까지 챙겨주는 게 쉬운 일이 아닌데
이 사람은 뭔가 다르다는 걸 확실히 느꼈다.
내 무기가 뭔지 생각했다.
나는 솔직한 게 무기잖아.
그래서 그 아저씨한테 먼저 솔직하게 얘기했다.
"사실 싱글맘이고, 애들 셋 혼자 키우고 있어서
아이 픽업도 잘 안 하고, 좀 거칠게 키우는 편인데
워킹맘이라 시간이 빠듯해서 정말 감사해요
우리 둘째가 응팔의 덕선이처럼
너무 내놓고 키우는 거에 대한
부채감이 있는데 잘 받아주셨서 너무 고맙네요."
그랬더니 이 아저씨도 마음이 편해졌는지
자신도 커밍아웃을 하셨다.
아니, 정확히는 '싱밍아웃'이라고 해야겠지?
싱글을 커밍아웃한 거니까.
"저도 사실은 혼자서 아이 키우고 있는 아빠에요."
그 순간 우리는 서로를 완전히 이해하게 됐다.
말 그대로 전우애 같은 우정이 시작된 거였다.
이 아저씨를 알고 나서 내가 정말 깊이 느낀 게 있다.
아이들 아빠와 비교가 되는 거지.
정말 다른 종류의 인간이구나.
Different kind of human being이구나.
나보다 한 다섯 살인지 여섯 살 어린 아저씨가
아이 하나를 지키기 위해서 얼마나 고군분투했을까.
이혼, 양육권 확보, 그리고 혼자서 아이를 키워내기까지...
심지어 지금은 육아휴직을 내고
아이를 전적으로 케어하고 있었다.
초등학교 1학년 입학할 때 육아휴직 많이 하잖아.
보통은 엄마가 하는데, 이 아빠는 자신이 직접 하고 있는 거였다.
정말 마음속 깊이 존경했다.
그런데 여기서 내가 깨달은 게 있다.
싱글대디의 삶이 싱글맘보다 더 가슴 아프게 다가왔다는 것.
대한민국 사회에서 여자는 약자로서 보호받는 부분들이 분명히 있다.
이걸 페미니스트들이 부정할 수도 있겠지만,
실제로 현장에서 느끼는 건 그렇다.
하지만 남자라는 이유만으로
싱글대디로 아이를 키우는 것에 대해서는
나만큼 보호받지 못하는 부분들이 분명히 있다.
사회적으로 배려해야 할 계층이
장애인, 싱글맘 이런 부류들만 있는 건 아니구나.
사회적 약자의 스펙트럼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넓고 다양하다는 걸 깨달았다.
##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말하지 말라
미디어에서는 굉장히 오픈된 것처럼 떠들지만
정말 현장으로 내려와서 보면 그렇지 않다.
스펙트럼이라는 게 그렇지가 않다.
보여주는 것과 실제로 사는 건 완전히 다르다.
이 아빠가
배냇저고리 입던 그 젖먹이를
취학통지서 받는 여덟 살까지 홀로 키워내고
아이가 다른 친구들과 관계 맺게 하기까지
그리고 관계 맺은 아이를 집에 들여서 밥까지 주기까지
얼마나 고군분투했을까.
이 아빠도 태생부터 누군가의
스윗한 아빠로 시작한 인생이 아니였으리라.
얼마나 귀한 한 댁의 아들로
청운의 꿈을 안고 시작한 한 20대 파란만장한 인생이지 않았겠는가.
아, 나의 그 푸르르던 시절을 떠올리자니
참 코끝이 다 찡해지는 대목이 아닐수 없었다.
그런데 정말 신기한 건 아이들이었다.
아이들은 편견이 없다.
"엄마 없어? 없나 보다."
"아빠 없어? 없나 보다."
그냥 그렇게 받아들이는 게 아이들의 세계다.
어른들은 늘상 "엄마가 없나?" "아빠가 없나?" 하고
복잡하게 생각하고 판단하고 평가한다.
하지만 아이들에게는 그냥
"엄마 아빠가 다 같이 있어야 된다"는 개념이
어른들만큼 충실하지가 않다.
그게 오히려 더 자연스럽고 건강한 시각이기에
엄마가 없을땐 아빠가, 아빠가 없을땐 엄마가
그저 사랑을 주고 관심을 주는 보호자가 있다면
그걸로 족함을 느끼고 자신의 세계에 몰두하고 있어서 결핍이라는걸
모르는, 그런상태였다.
아, 내가 여기서 환기 시키는이유는 그러했기때문에
우리가 서로 싱글맘인지 싱글대디인지 인지하는데
꽤나 오래 걸렸다는 점이다.
이렇게 가정들을 오고가는 어른들이었다고 상정해보자.
1초면 스캔됐을 이야기가 아니었을까.
그렇게 본의 아니게
엄청난 공감대를 주고받으면서
그 싱글 대디와 나의 사정을 조금씩 나누게 되었다.
남자 여자의 차이는 있지만
그냥 서로서로 너무 잘 알아주는
조금 특별한 우정의 시간이었다.
나는 인생 선배 입장에서 조언을 참지 못했는데
이 오지라퍼 본능은 언제쯤이면 없어질지 ..
"좋은 사람 만날 수 있고 자기계발 하시면 된다"고
묻지도 않은 조언을 쏟아낸 예닐곱살(?)누나의 이 헛소리가
누가 되지 않았길 지금도 바래본다.
그 어려운 시절 지나가며
나름 뭐 단독 저서 출간도 하고 EBS도 기웃거려가며
나름 자기 계발도 하고 했으니..
그런말 정돈 해줄 자격 되는 동네 아줌마라고
위안하며..
마음의 변화
그래서 마음을 여는 계기들이 생겼다.
살다 보니 거짓말을 해야 한다는 압박감 때문에
"나 언제까지 이래야 되나?" 하는 생각이 컸는데
조금씩 그런 벽이 깨지는 걸 느꼈다.
내가 너무 조급하게 생각할 필요가 없겠구나.
세상에는 나와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고,
그들과 진짜 관계를 맺을 수 있구나.
솔직함이 때로는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될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어떻게 보면 이 모든 게
내가 어떤 지점에서 어떤 단계 안에서 겪는 감정들이고,
언젠가는 당당하게 다 밝힐 날이 온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지금 나는 당당하게
에세이로 내 삶을 풀어내며
싱글맘의 라이프를 소재로 하는
에세이스트로서의 변신을 도모하고 있다.
이게 내가 깨달은 거다.
숨어서 연기하며 살아남기보다는
당당하게 내 이야기를 써 내려가며
진짜 나로 살아가는 것.
그것이 진정한 살아남기가 아닐까.
엄마들 사이에서 살아남기 위해 연기하는 것도 한계가 있다.
언젠가는 진짜 나로 살아야 한다.
당당하게
"네, 저는 싱글맘이에요"라고 말할 수 있는
그런 날이 와야 한다.
물론 아직은 쉽지 않다.
사회의 시선도 있고, 아이들 걱정도 있고.
하지만 언젠가는
가면을 벗고 진짜 나로 살아갈 수 있는
그런 용기를 내고 싶다.
그리고 그 용기의 첫 발걸음이
바로 이 글을 쓰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엄마들 사이에서 살아남기는 정말 쉽지 않다.
특히 싱글맘에게는 더욱 그렇다.
하지만 연기로는 한계가 있다.
진짜 관계는 진짜 나를 보여줄 때 시작된다.
그리고 사회적 약자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다양한 모습으로 존재한다.
서로의 아픔을 이해하고 연대할 때
진정한 변화가 시작될 수 있을 것이다.
언젠가는 나도
가면 없이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는
그런 날이 올 거라고 믿는다.
그때까지는 조금 더 버텨보자.
하지만 언젠가는 반드시
진짜 내 모습으로 살아가리라.
언젠가는 나도
가면 없이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는
그런 날이 올 거라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