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 싱글맘의 관계지도 시리즈-변화한 인간관계와 새로운 연결들
나는 특별히 친정 아버지께 대못을 박지 않으려
여러 번 숙고해야 했다.
친정아버지 중심적 서사로 잠시 이야기를 돌리자면
그분의 인생도 참 처량하기 짝이 없기에
내가 뭐 날개를 달아드리는 딸이 되진 못할지언정
짐이 되지 않기 위해 무던히 애를 썼더랬다.
우리는 서로 마주보고 두 눈만 바라봐도
그저 눈시울이 붉어지는 부녀지간.
참, 그간 세월이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 같아서
이건 드라마 소재로도 못 쓸 만큼
우여곡절이 많은 인생들이었다.
여기 한 남자가 있다.
마흔 후반즈음 아내를 잃고
또 몇 년 지나지 않아 이십대 자식을 앞세워 보냈다.
그러고 나머지 하나 남은 자식이 시집을 갔는데
애 셋을 데리고 이혼을 하겠단다.
그 마음이 오죽할까.
울어도 눈물을 흘리지 못하는
경상도 남자의 그 돌덩이 같이 딱딱해진
그 마음을 나는, 감히 헤아릴 수조차 없다.
아무튼 서울-부산을 멀리 살며
최대한 '서울서 잘 사는 딸' 코스프레를 열심히 하던 내가
한 방에 무너져 내리는 모습을 보고도
울 아버지는 걱정하는 내색 한 번 하지 않으셨다.
늘 그랬듯 그냥 나를 믿어주셨다.
"그래, 네가 오죽하면 그런 결정을 내리겠나" 하고는
욕도 아까우신지 애들 아빠를 향해
단 한마디 말도 꺼내지 않으시던 모습을
아직도 기억한다
아이 셋을 데리고 부산으로 이사를 내려가도
100번은 더 내려갔어야 그림이 맞는데도
나는 꾸역꾸역 기어코 서울에 머물렀다.
서울에 연고가 있는 것도
그렇다고 굳이 머물러야 할 거창한 이유가 있는 것도 아니었지만
내가 부산을 갈 수 있는 명분이 없었다.
정확히 얘기하면 내가 아이 셋을 데리고
친정에 비비러 가서 매일이고 아버지 두 눈에 비친 근심을
마주할 자신이 없었다.
그리고 출가외인,
내가 이제 혼자 살아보겠다고 집을 나왔으니
내가 어떻게든 자립하는 게 옳다는 강력한 신념이
비집고 올라와서였다.
아버지는 재혼을 하셨고 나는 엄마라고 부르는
새어머니가 계신다.
참 좋은 분이다.
때마다 부산 기장시장의 싱싱한 해산물로
반찬을 해서 보내주시고
내 입에 맞는 김치며, 횟거리까지...
꽁꽁 포장을 해서 택배를 보내주신다.
내가 아이들을 데리고 부산을 갈 때마다
어찌나 살뜰히 우리 아이들을 챙겨주시는지
우리 아이들은 아직 그냥 외할머니로 알고 있을 정도다.
(난 농담으로 아빠에게
전생에 나라를 구했다고 말을 한다)
정말 정도 많으시고 친딸 같이 아낌없이 다 주시는 분.
하지만 이런 분이 계시는 이 부산에도
내가 완전히 기대서 내려가지 않은 데는,
도움과 간섭에는 반드시 경계가 있다는 걸
이해하고 있는 지혜가 있기 때문이다.
관계란 언제나 적당한 거리가 있을 때 아름다운 법이다.
나도 가끔은 문학소녀로 회기하여
칼릴 지브란의 「예언자」를 꺼내 읽곤 할 때가 있다.
아, 뭐 배운척 하자는건 아니고
삶의 모든 면면에서 적용할 수 있는 혜안이 가득 담긴 글이라
정말 한 번 읽었는데도 사무칠 때가 있어서 그렇다.
특히 "결혼에 대하여"는
때론 연인 사이에서 때론 부모 자식 간에서...
그래, 이혼 후 싱글맘이 된 내가, 비빌 언덕이라고 여길 수 있는
친정 부모와의 관계에서도 묘하게 울림이 있는 글이라
전문을 조금 인용하고 싶다.
"그러나 너희가 함께 있되 거리를 두라.
그래서 하늘 바람이 너희 사이에서 춤추게 하라.
서로의 잔을 채워 주되, 같은 잔에서 마시지는 말라.
서로에게 빵을 주되, 같은 조각을 먹지는 말라.
함께 노래하고 춤추고 즐거워하되,
각자는 홀로 있음도 잊지 말라.
거문고의 줄도 따로이 있으되,
같은 음악에 함께 떤다.
서로의 마음을 주라. 그러나 간직해 두지는 말라.
오직 삶의 손길만이 너희 마음을 간직할 수 있다.
함께 서 있으라. 그러나 너무 가까이 서 있지는 말라.
사원의 기둥들도 서로 떨어져 서 있고,
참나무와 삼나무는 서로의 그늘 속에서 자라지 않는다."
내가 진정한 나 혼자만의 독립을 이루어가는 동안
아버지가 흘렸을 눈물과 새어머니가 같은 여자로
헤아려주셨을 그 마음의 고통을 누구보다 잘 알지만
애써 모르는 척하고 더욱 단단하게 고독의 시간을 선택했던 이유는 간단했다.
우리는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가장 크게 기대하고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가장 크게 실망하고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상처받는 연약한 존재들이다.
우리가 인생의 모든 면면이 위기가 있을 때마다
누군가에게 기대는 것으로 점철된다면
진짜 내가 어른이 되어야 하는 '노년'에는
누가 나의 비빌 언덕이 되어줄 수 있을까?
나는 내 내면의 힘을 믿었고 나의 고독과 친구가 되는 법을 택했다.
그리고 이제는 내 원가정이 아니라
나의 원가정을 스스로 우뚝 서서 꾸릴 때가 되었다는
'스스로 어른됨'의 성장통을 택했다.
내 인생 멘토가 한 분 계시는데
인생에 육교와 지하도가 있다면
육교를 먼저 택하는 게 낫다는 비유를 곧잘 하신다.
맞다.
나는 좀 쉽게
친정 비빌언덕에 걸쳐서
'지하도'로 쉽게 내리막길 먼저 선택하지 않았다.
지하도로 내려가면 나중에 반드시 오르는 계단을 올라야 하는
2차전이 반드시 필수적으로 동반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하지만 인생의 초반에 선택하는 육교계단이
나중에 인생 후반전에 내게 선사할 내리막 계단을 주리라는
강한 확신이 있다.
많은 싱글맘들 혹은 싱글맘들이 아니어도
워킹맘들, 혹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육아맘들이
이 경계 설정에 실패해서 반쯤은 '부모 그늘에 걸치는'
요지경 캥거루족의 인생을 사는 것 같아
안타까움을 자아낼 때가 많다.
인생에 내가 나도 모르게 기대고 있는
그 비빌언덕들이 많을수록
결정적 위기순간에
진짜 어른다움을 잃어버리고 방황하게 된다는 것만은 확실하다.
특히, 부모가 된다는 것은
엄청난 무게로 '어른'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라는 것을
이 시대를 사는 모든 싱글맘들은 가슴 깊이 이해하길 바라는 마음이다.
내가 가장 가까이 여기는 친정부모까지도
'함께 있되 거리를 두는'
경계선과 독립의 지혜가 필요한 게
지난 5년간의 고군분투가 내게 안겨준 원칙이자 철학이다.
감사함과 부담감 사이에서 가장 아름다운 관계는
서로의 그늘 속에서 자라지 않는
참나무와 삼나무 같은 것이다.
각자 홀로 서되, 같은 음악에 함께 떠는
거문고의 줄처럼.
그것이 진정한 사랑이고,
그것이 진정한 독립이다.
우리가 인생의 모든 면면이 위기가 있을 때마다
누군가에게 기대는 것으로 점철된다면
진짜 내가 어른이 되어야 하는 '노년'에는
누가 나의 비빌 언덕이 되어줄 수 있을까?
나는 내 내면의 힘을 믿었고 나의 고독과 친구가 되는 법을 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