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 싱글맘의 관계지도 시리즈-변화한 인간관계와 새로운 연결들
아, 물론 내가 크리스천이라서
'하나님'이시죠 하는
신앙고백을 하자는건 아니다
나도 깜짝 놀랄 만큼 신기한
CCTV 세대가
계속해서 돌아가고 있다.
아이들 세 명이다.
처음엔 내가 이 아이들을 다 샅샅이 돌봐야 하는
그 책임감의 무게 때문에
내 두 눈이 이 아이들의 CCTV를 자처하느라
삶이 얼마나 고단했는지 모르겠다.
그래, 내 눈은 단 두 개인데
천방지축인 아이 셋의 뒤꽁무니를
낱낱이 샅샅이 다 쫓는다는 게
물리적으로 가능이나 한 일이겠는가.
이제 행동의 반경이 넓어지는 건 물론이거니와
사고방식, 생각의 범위가 상상 밖으로 튀어나가는
준 사춘기에 이르는 초등 고학년에 이르자
CCTV는 커녕... 집 앞 방범렌즈도 안 되는 꼴이었다.
뭔가 김이 새도 안 잡히면서
이거 어쩌나 싶을 무렵,
이 아이들이 보이는 작은 행동들은
내게 감동을 넘어선 삶의 동력을 심어주었다.
차려진 밥상에
숟가락 넣기만 급급하던 아이들이
이제는 "엄마는 언제 먹어?"
"엄마는 왜 안 먹어?" 묻기 시작했고
"엄마, 우리 다 먹고 나면
나중에 또 밤에 혼자 야식 먹으려 그러지?" 하고
귀신같이 내 식습관 타박을 잊지 않는
귀여운 잔소리꾼이 되었다.
한번은 내가 그렇게 좋아하는 아아 한 잔을
들이키려고 폼을 잡는데
둘째가 하이톤으로 한소리 한다.
"엄마, 한의원 의사선생님이 커피는 안 된다고 했잖아!"
아뿔싸, 그렇다.
나는 여러 가지 신경통 증상으로 한의원에 다니는 중이었고
의사샘이 "죽지 않으려면 커피부터 끊으시라" 엄포를 놓으셨다.
그 소릴 둘째가 기가막히게 들은 모양이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때가 되면 찬양을 틀고
방언으로 기도하는 내 뒷모습을
성실히... 아, 그러니까 10년은 족히 봐온
첫째딸 이하 삼남매가
어느 날
'엘리베이터 엘리베이터'
'코카콜라 코카콜라'
'에스컬레이터 에스컬레이터'를 반복하며
부흥회 놀이를 하고 있더랬다.
그러니까 이 놀이인 즉슨 엄마가 방언기도를 하는
(알지 못하는 어구들을 반복해서 중얼대는 모습을 희화화하는 모습)
그 모습을 묘하게 흉내 내며 자기들끼리 노는 거였는데...
나도 박장대소를 했지만
우리만이 아는 문화와 추억으로
그 리추얼이 자아내는 놀이문화가 가지는 안도감
상상을 초월하는 가족의 문화이자 추억이 됐다.
내가 청소를 하다가 지쳐서
바닥에 쭈그리고 앉아있던 어느 날
막내가 다가와
"엄마 힘들어? 내가 안아줄까?" 하고
어깨를 토닥이던 그날의 감동도 그랬다.
실제로 나를 안는 시늉까지 하며
따뜻하고 말랑한 살결이 닿는 순간
나는 세상다 녹아내릴듯 한 위안을 받았다
아, 이 포옹은 아마
누군가 스윗한 남편이 있다면
받았으리라고 SNS에 자랑을 해댔을
그런 포옹 이상이었다고 나는 자부한다
저도 남자라고
여자를 위로할 줄 안다고 속으로 생각하며
그날이후 나는 막내를 내 가슴속
영원한 남친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미래의 며눌아기에겐 조금 미안하게 생각한다)
서툴지만 삐뚤빼뚤 첫째아이가
'엄마, 나의 보호자가 되어줘서 고맙다'고
미취학 아동이 절대 쓸 일 없을 그 어려운 단어를 써서
나에게 감사 편지를 써준 그날의 벅참도 잊을수는 없다
어휘의 수준이 올라갈 수록
아이들과 나누는 대화의 퀄리티가
상상을 초월하게 올라갔다
그 말은 이제 이 아이들과의 전인적인 소통
그리고 아주 밀도 높은 대화가 가능하단 의미이기도 했다
나는 이아이들을 일방적으로 책임지는 보호자를 벗어나
의논도 하고 의견도 물을 수 있는
친언니 같은 존재가 되어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아 이러다가 친구같은 엄마가 되어가는건가?
문득 세월의 속도가 피부로 다가왔다
아이들은 내가 책임져야 할 부담이 아니다.
그들은 내 삶을 지켜보는 가장 예리한 관찰자이자,
내가 넘어질 때 일으켜 세우는 가장 따뜻한 동반자였다.
내가 CCTV가 되려고 애쓸 필요가 없었다.
그들이 이미 나의 CCTV가 되어
내 건강을, 내 마음을, 내 일상을 세심하게 살피고 있었다.
짐처럼 여기는 그 마음이 나를 짓누르고 있었을 뿐
정작 짐으로 여기는 그 마음의 감옥에서 괴로워 하는 나를
애처러운 마음으로 걱정해 주고 돌봐주는 아이들은
바로 삼남매, 세 아이의 사랑이었다.
주는 줄 알았는데 받고 있었다.
보호하고 있는줄 알았는데 보호받고 있었다.
이제 나는 안다.
육아는 한 방향이 아니라는 것을.
내가 아이들을 키우는 것만큼
아이들도 나를 키우고 있다는 것을.
내가 아이들을 보호하는 것만큼
아이들도 나를 보호하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각기 다양한 소리를 내고 있지만
우리는 서로를 완벽히 돌아보며 소리를 조율해 가는 밴드이며
완전한 소리를 내고 있는 한 팀이다.
완벽하지 않지만 서로를 채워주며 하모니를 이루는 가족이다.
혼자 키운다고 생각했는데
혼자가 아니었다.
함께 키워가고 있었다.
서로를, 우리를, 이 가족을.
그들이 있어서 나는 더 나은 사람이 되고,
내가 있어서 그들은 더 따뜻한 아이들이 된다.
이것이 우리만의 팀워크다.
이것이 우리만의 가족이다.
아이들은 더이상 책임져야 할 부담이 아니라,
함께 인생을 만들어가는 가장 소중한 운명 공동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