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5 60점짜리 엄마도 괜찮다—수용과 자기사랑

B. 싱글맘의 감정사전 시리즈 - 혼자 육아하며 마주하는 복잡한 감정들

by 다루오


제페토... 로블록스라는 게임과의 전쟁도 한 판 치렀고,
뭐 공론화네 뭐네, 하는 그 알 수 없는 초딩들의
십대 문화에 대한 이해도 거쳐가며...
이제는 조금 느긋해진 나를 발견한다.


01. 엄마도 아이 나이만큼 다시 태어난다


엄마는 아이 나이만큼 딱 그만큼의 나이로
다시 태어나는 거라 했던가.


난 딱 첫째 나이인 열한 살,
그만큼으로 다시 인생을 사는 게 확실한 것 같다.


난 초등학교 4학년 수준의 여유와 아량,
그 원리 원칙을 세우는 삶의 경영 방식으로
아이들을 대하고 또 만족해 나간다.


내가 초4를 보면, 참 아직은 불안하기 짝이 없지만
그래도 자기만의 취향을 알고, 자기 주장이 있고...
나름의 삶을 거쳐온 구력을 통해
문제 해결력을 어느 정도 탑재한
제법 사람다운 모양을 하고 있으니
나도 딱 엄마로선 그 정도 수준이라는 의미일 것이다.


뭐 더 깨달은 양 해탈한 양 폼 잡아도 넘치는 것이고
아무것도 몰라요... 하고 수선을 떨어도 모양 빠지는 것이다.
난 딱 그만큼의 엄마이다.



02. 모짜렐라 vs 모나리자 사건


얼마 전 차에서 아이들과 얘기를 하다가
"엄마, 그 모짜렐라 뭐지?" 하고
자꾸 나에게 질문을 하던 다엘이에게
대체 무슨 음식이 그렇게 궁금하길래
모짜렐라 얘기를 하나 싶어서
운전에 집중하면서도 모짜렐라를 향한
내 생각을 멈출 수 없었던 적이 있다.


아니, 모짜렐라 뭐... 모짜렐라 치즈?
뭐 모짜렐라 치즈를 먹는 나라?
모짜렐라 치즈를 이용한 음식?
뭘 얘기하고 싶은 거야 너...?


그런데 루비는 뒤에서 박장대소를 하고
그게 아니라며 배꼽을 쥐고 웃고 있다.
숨도 못 쉰다.


아니, 그래서 내가 대체 무슨 얘길 묻고 싶은 거냐 했더니
"아니 엄마, 먹는 게 아니고 그림. 모짜렐라 그림.
모짜렐라 그림을 누가 그렸냐고..."


아뿔싸... ㅜㅜ


모짜렐라 그림을 그리다니... 순간 스치고 지나간 이름이 있었으니
모...로 시작하고 네 글자이며 외래어로
아주 아이들이 기억하기 힘든 이름인
'모나리자'라는 이름이 스치고 지나갔다.


"너... 설마 모나리자 말이니?"


다엘이는 유레카를 외치며
"맞아맞아! 모나리자 모나리자!" 연신 반복하며
드디어 그 이름을 찾았다는 기쁨을 표했지만
내 마음은 있는 대로 무너졌다.


아... 레오나르도 다빈치... 라고 답은 하고 있었지만
아니, 모나리자를 몰라서 모짜렐라라고 하는
이다엘의 그 상식 수준에 혀를 내두를 밖에... 하...



03. 아프로디테도 모르는 아이들


그래, 그건 그렇게 지나갔다고 치자.


어쩌다가 드라마 한 편을 같이 보다가 지나간 이름
'아프로디테'를 비유하는 어떤 대사 하나가 지나가서
내가 지나가듯 아프로디테가 무슨 여신이냐 물었더니
아니, 두 녀석 모두 그렇게
그리스로마신화 만화책은 마르고 닳도록 읽더니
어떤 여신인지는... 알 길이 없다며
막말 대잔치가 한 바탕 열리고야 말았다. ㅜ_ㅜ


그리스로마신화 만화 시리즈를 사느라고
내 허리가 휘었던 일이 주마등처럼 스치고 지나가며
얇아졌던 엄마의 지갑 사정에서 유일하게 정당화하던
도서비 문화비는 아이들의 미래를 위한 투자라며
득의만면했던 나의 정신세계에
매우 피로감이 몰려왔다.


아이들은 아프로디테가 어떤 여신인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라는 나름의 결론을 내리더니...
그만 잠자리에 들어간다고 안녕하고
엄마가 물은 질문은 스스로 종결짓고 꼬리를 감추었다.



04. 과거의 완벽주의 엄마를 돌아보며


과거 완벽주의 엄마를 자처하던 나를 떠올리자면
나는 아마 아이들을 쥐 잡듯이 잡았을 거라는 걸
너무 잘 알고 있다.


나는 지식의 수집에 대한 열망이 크고
특히 상식의 수준 낮은 상태를 견디지 못하는 성품이라서...
아이들에게도 높은 상식(?)의 수준을 요구하는 편이었는데
미취학 때부터 조금 난리를 피우며
(특히 다엘이에게) 이래저래 스트레스를 준 일이 있음을
솔직하게 고백해 본다.


잘나가는 강남엄마들은 다 가입한다는 카페에 가입해서
그 엄마들 시키는 여러 가지들 다 시켜보기도 하고
실제로 두뇌가 명석했던 다엘이는 제법 따라오기도 해서
내 기쁨이 되어주는 순간이 있기도 했다. ㅎㅎ


하지만 문제는 지속성이었다.


내 생활 패턴에서 이 모든 것들을
다 지속성 있게 연속성 있게 이끌어가며
뭐 일명 과잉 영재 수업(?)의 패턴을 해간다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05. 표준 교육치의 누수만 막으면 된다


아, 그러니까 물 흐르듯 그냥 두면서
'표준 교육치의 누수를 막는 일'에 힘쓰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라는 아주 정상적이고 현실적인 기준에
내 눈을 맞추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TV에나 나오는 그 100점짜리 엄마가 아니라
그냥 60점 정도만 되어도 잘 가고 있다는
그 확신에 내가 거하기까지
정말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는 것.


꽤 많은 책을 읽고 강의를 듣고
그리고 내 자신을 돌아보는 성찰의 과정이 걸렸다는 것,
여기서 밝히고 싶은 이야기다.



06. 이제는 채근하지 않는 엄마


모나리자를 모짜렐로 기억을 하든,
그렇게 뻔질나게 읽었던 그리스로마신화에서
아프로디테 하나 기억하지 못하는 기억력이든...
난 이제 더 이상 아이들을 채근하거나 독촉하지 않는다.


누군가의 눈에는
독서교육도 그러니까 독서 후의 독후 활동도 제대로 하지 않은
그리고, 최소의 미술교양교육도 하지 않은
그런 상식 이하의 엄마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제 안다.
학습의 누수만 막아도
그 60점짜리로만 가고 있는 그 마지노선만
잘 지키고 가더라도 안전한 인생이라는 것을.



07. 내 안의 분노를 마주하다


그런 걸 모른다고 채근할 때
사실 그걸 가르치지 못하고
완벽하게 아이들의 교육에 책임지지 못했던
나에 대한 미움, 내 자신에 대한 분노가
아이들을 벼랑으로 몰고 간다는 걸
어느 순간 깨달았던 적이 있다.


그걸 멈추게 된 순간이 있었다.
언제인지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내가 학교에서는 부진한 아이들,
학습 수준 미달인 학생들에게 그렇게 온정적인데...
집에만 오면 무언가 그 기준치가 너무 완벽에 가까워서
아이들을 달달 볶고 있었다.
아직 너무 어린 아이들인데 말이다.


그 이후 나는 이걸 수용하는 게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알게 되었다.



08. 자기사랑이 관대함을 만든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내가 내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는 조바심에서 나온다는
큰 심리적 틀을 깨닫게 되었다.


내가 내 삶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내가 하는 일이 최선의 결과를 낼 수 있다는
확신 가운데 거할 때
아이들한테도 관대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거든.



09. 과정 중인 엄마, 과정 중인 아이들


내게 희망이 있다면
큰아이가 커가는 그만큼
나도 성장의 기회가 있다는 것, 그것이다.


내가 60점인 데 대해 받아들이고 안심하고
또 미래를 밝게 그릴 수 있는 것은
아직 과정 중이라는 걸 조망하는 여유가
생긴 이후부터이다.


나도 이제 아이를 기른 지 겨우 초4 수준의 엄마이고
앞으로 자라나갈 새털같이 많은 날들에 대해
누구도 이것이 60점짜리일지
100점짜리로 가기 위한 과정이 될 중간 점검이 될런지는
예단할 수 없는 거라는 거라고.



10. 깨달음


나는 확실히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 그런 싱글맘이다.


60점짜리 엄마로 살아가는 것이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그것이 현실적이고 건강한 선택이라는 것을.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
모나리자를 모짜렐라로 기억하는 아이도 괜찮다.
아프로디테를 모르는 아이도 괜찮다.


중요한 건 그 60점 안에 담긴
진심과 사랑과 최선이다.


나는 60점짜리 엄마지만
100점짜리 사랑을 주고 있다.
그것으로 충분하다.


아니, 그것으로 완벽하다.



60점짜리 엄마로 살아가는 것.
그것은 자기 자신을 용서하고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가장 아름다운 방법이다.

나는 60점짜리 엄마이고,
그것이 나의 자랑이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B4 엄마이전 나였던 리즈시절 —그리움과 정체성 혼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