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 싱글맘의 감정사전 시리즈 - 혼자 육아하며 마주하는 복잡한 감정들
낙화라는 시를 아는지 모르겠다.
수험시절에 달달 외우기만 했던 그 시가
싱글맘이 되고 설움이 들이닥칠 때
왜 그렇게 가슴을 파고들던지...
(아마 내가 문인의 예술적 기질을 타고났다는 증거겠지 ㅎㅎ)
나는 외항사 승무원을 하며 만 3년을
국제선을 타고 각 나라 공항들을
제집 앞마당 드나들듯 다니던 사람이었다.
일명 TROLLY DOLLY.
트롤리를 끄는 인형 같은 항공사의 꽃.
뭇사람들의 시선을 즐기던 그 공항 워킹,
5성급 호텔 조식, 각 나라 수도들을 순회하며
특산품과 면세점 세일 품목들을 골라 담던 특권들.
그리고 일명 ID90... 90% 할인 티켓으로
거의 세금만 내고 타던 비행기.
연가(AL) 받으면 여기저기 해외여행지를 돌아다니던
그 호사를 내 어찌 잊겠는가... 어허허
워낙 버블리한 성격 덕분에
매 비행마다 바뀌는 크루와도 착착 맞아떨어져서
온갖 나라 사람들과 능수능란하게... 아니 능글맞게 잘 지냈다.
전성기를 달리던 내게
그 리즈시절 내국인 외국인 할 것 없이 쏟아지던
번따(?) 헌팅(?) 세레머니는 잊을 수 없는 추억이다.
기내에서 몰래 건네받은 쪽지들,
공항에서 "커피 한 잔 어때요?" 하며 다가오던 승객들,
호텔 로비에서 우연을 가장해 나타나던 파일럿들...
그때는 그런 관심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그 이후 시작된 교사 생활도 어찌 그리 잘 맞았는지...
통통 튀는 나의 스타일과 고딩 아이들의 코드가 착 붙어서
페북으로 대동단결, 유튜브로 소통하며
아이들 눈높이에서 잘 놀아주고 잘 받아주는 선생님으로
매끄럽게 교사생활을 이어갔다.
지금 생각하면 기적에 가까운 전직이었다.
이직이 아니라 전직을. 나도 내가 놀라울 지경이다.
아이들이 쪽지로 고민 상담을 해오고,
"선생님 인스타 팔로우 해도 돼요?" 하며 다가오고,
졸업한 후에도 "선생님 덕분에 꿈을 찾았어요" 하는
메시지들이 계속 날아들던 시절.
여자라면 누구라도 꿈꾸는 직업 두 가지를
20대에 모두 경험한 나는
엄친딸 이상의 알파걸이었다... 풉...
그런데 내게도 약점이 하나 있었다.
남자를 너무 모른다는 것.
(경험이 없어서가 아니라 여우처럼 거르지 못한다는 의미에서)
한 번의 선택이 10년을 좌우한다는 광고 카피가 있지만,
배우자 선택은 평생을 좌우한다.
그 선택이 어긋나버렸다.
그리움 이상의 그리움과 매일 싸워야 하는
그야말로 전쟁을 치르는 여전사가 되어버린
아 나의 30대여... ㅠㅠㅠ
싱글맘이 되고 나서 밀려오는 건 단순한 그리움이 아니었다.
"내가 왜 이렇게 됐을까?"
"그때가 진짜 내 인생의 전성기였을까?"
"이제 다시는 그런 날들이 오지 않을까?"
각 나라를 누비며 자유롭게 날아다니던 나,
아이들과 소통하며 빛나던 나,
사람들의 시선을 받으며 당당했던 나...
그 모든 과거의 나를 그리워하며
현재의 나를 부정하고 싶었다.
밤마다 스마트폰 갤러리를 뒤져가며
예전 사진들을 보는 게 일상이었다.
제복 입고 환하게 웃던 사진,
세계 각국에서 찍은 여행 사진들,
학생들과 함께 웃고 있는 사진들...
"그때의 나는 정말 빛났구나...
지금의 나는 정말 초라하구나..."
그런 생각에 빠져 새벽까지 뒤척이던 밤들이 얼마나 많았는지.
하지만 그 그리움의 사투 끝에
내가 받아들인 한 가지 진실이 있다.
내가 언제나 첫사랑 바라기였던 열아홉 소녀가 아니었듯
어엿한 대학생 언니가 되어있었다는 사실처럼,
나는 계속 탈각을 거듭하며 성장해왔다는 것.
춘삼월 개나리 같은 예쁜 사랑을 하던 대학시절
그 오빠를 떠나보내고 훨훨 날아 중동으로 가서
승무원이 되었던 것도 하나의 탈각이었다.
그 후 귀국해서 6개월 넘는 사투 끝에
사범대 출신의 부르심을 포기 못하고
교편을 잡게 된 것도 또 다른 탈각.
그곳에서 참 만족을 알고 헌신을 결정하기까지
참 많은 변화를 스스로 깨닫고 받아들이면서
'그리움'은 그저 잠시 머물다 가는
바람 같은 감정이라는 걸 배웠다.
지금 생각해보면 내 인생은 계속된 탈각의 과정이었다.
열아홉 소녀 → 대학생 → 승무원 → 교사 → 엄마
각각의 단계에서 나는
이전의 나를 그리워했다.
이전의 나가 더 빛났다고 생각했다.
이전의 나로 돌아가고 싶어했다.
하지만 매번 깨달았다.
지금의 나는 이전의 나보다
더 깊어졌고, 더 넓어졌고, 더 단단해졌다는 것을.
승무원 시절의 글로벌 마인드는
지금 아이들을 더 넓은 세상으로 이끈다.
교사 시절의 소통 능력은
지금 내 아이들과의 관계를 더 단단하게 만든다.
그 모든 경험들이 모여
지금의 나, 싱글맘이자 교사이자 작가인 나를 만들었다.
이제는 안다.
과거의 화려했던 경험들은
지금의 나를 만든 소중한 재료였다는 것을.
공항에서 받던 그 많은 시선들이
지금은 강단에서 당당하게 설 수 있는 자신감이 되었고,
학생들과 나눈 그 많은 소통들이
지금은 내 아이들과 진짜 대화할 수 있는 능력이 되었다.
ID90으로 돌아다닌 그 많은 나라들의 경험이
지금은 아이들에게
"엄마는 그때 거기서..." 하며
세상을 넓혀주는 이야기가 되었다.
엄마 이전에 나였던 리즈시절은 사라진 게 아니다.
지금의 나 안에 고스란히 살아있다.
과거를 그리워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과거에 갇혀 현재를 부정하는 건
나 자신에 대한 모독이다.
나는 계속 변화하고 성장하는 사람이다.
엄마가 된 것도 그 성장 중 하나일 뿐이다.
그리움은 잠시 머물다 가는 바람 같은 감정이다.
그 바람에 휘둘리지 않고
지금 이 순간의 나를 사랑하는 것.
그것이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나,
그리고 미래의 나를 모두 존중하는 길이다.
내가 걸어온 모든 길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고,
지금의 나는 앞으로의 나를 만들어갈 것이다.
트롤리를 끌던 나도, 교단에 서던 나도,
아이들 손을 잡고 걷는 지금의 나도
모두 똑같이 소중하고 빛나는 나다.그 모든 나를 사랑한다.
그 모든 내가 바로 지금의 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