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 싱글맘의 용기수집 시리즈 — 두려움을 딛고 일어선 순간들
처음엔 두려웠다. 사소한 생활의 문제들이,
이혼 전에는 그냥 당연히 '남자 몫'이었던
그 일들이 모두 내 앞에 쏟아져 내렸다.
"그건 남자들이 하는 일이잖아."
주변에서 무심코 던지는 그 말은
내 마음에 보이지 않는 울타리를 세워놓았다.
집안 전등이 나가고,
싱크대 문짝이 덜컥 떨어지고,
욕실 수전이 고장 나 물이 새어 나와도
그저 '내가 할 일이 아니야'라며
외면하고 싶을 때가 많았음을
솔직하게 고백해 본다.
하지만 이제는 달라야 한다.
더는 부탁할 사람도, 대신할 사람도 없다.
내가 하지 않으면 우리 집은 멈춘다.
아이들이 불편을 감수해야 한다.
그 사실이 나를 붙들고 흔들었다.
앙다문 두 입으로 결단했다.
이제는 '남자 일'이라는 말로
내 삶을 가두지 않겠다고.
그건 남자의 일이 아니라,
지금 내가 감당해야 할 나의 일,
'우리의 일'이라고.
겨울밤,
퇴근해 돌아와 부엌 불을 켰다.
순간, '퍽' 하고 전등갓이 흔들리다 떨어져 나가며
집안이 순식간에 암전이 되어버렸다.
아이들은 "엄마, 무서워!" 하며
내 옆으로 몰려왔다.
결혼 전에는 남자 친구 찬스,
그전엔 아버지 찬스.
예전 같으면 그렇게 남성동무 찬스들을 써댔겠지만
홀로서기를 감행한 지금
이제는 더 이상 그럴 수 없는 노릇.
대략 난감했지만,
그런 티를 낼 수도 없는 노릇.
담담하게 드라이버를 잡고 의자에 올라섰다.
볼트를 조이다가 전등 뚜껑이
와르르 깨져내렸고,
나는 황급히 테이프로 고정해 가며
수습을 해야 했다.
이미 온몸이 땀으로 젖었지만,
'딸깍' 하고 전구의 아귀가 맞아 들어가자
집안이 거짓말처럼 환해졌다.
아이들이 박수를 치며
"엄마 최고야!" 하고 외칠 때,
나의 가슴도 그 불빛처럼 일렁거렸다.
나 좀 멋진 여자다.
순간 그런 자신감이
눈물과 함께 불빛처럼 뿜어져 나왔다.
자동차 운전대는 내게 두렵지 않다.
다만, 늘 주변에서 걱정스러운 시선으로 하는 말들이
내 신경을 곤두세우곤 했다.
"장거리 운전은 남자들이 하는 일이지."
하지만 부산 친정에 가기 위해
아이 셋을 태우고 출발해야 할 때,
그런 말들이 내게 다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인가.
어쨌든
나는 아이 셋을 데리고 가야 하는 귀향 길이니
선택지는 하나다.
기어를 넣고 출발하는 일.
여기서 하나 더.
휴게소에 들르면 아이 셋을 깨우고,
다시 태우고, 다시 정리해야 하는
수고로움이 반복된다는 사실이
너무나 자명하다.
그 수고를 반복하는 대신,
나는 매번 귀향길에 오를 때마다 결심을 한다.
한 번에 끝까지 가자.
다섯 시간.
창밖으로는 계절의 풍경이 쏟아지고,
뒷 좌석에서는 아이들이
노래를 부르다 잠들다를 반복한다.
"엄마, 터널이야"
"엄마 저건 논이야 밭이야?"
"엄마 노을 좀 봐봐"
자다가 깨서 밖을 보며
온 사방의 전국 풍경을 탐색하며
경이로워하는 아이들의
재잘대는 말소리를 등뒤로 하며
핸들을 잡은 발걸음이 내게 말을 건다.
글쎄, 이게 굳이 남자들이 해야 하는 일일까.
벌써 몇 년째인지, 또 몇 번째 일지 모를
서울-부산 왕복의 고속도로 논스톱 여정.
그 길고 긴 도로 위에서 나는 알았다.
사람들의 편견이 던지는 생각들이
내 삶의 궤적을
정의해 나갈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을.
편견에 도전해 나가는 것이 아니라
주어진 현실에
순응해 나가는 과정이
나라는 인간의 유일한 지도라는 것을.
퇴근 후
온사방에 물이 튀고
욕실이 한강이 되어 있던 어느 날.
욕실 수전이 고장이 나서
대 참사가 벌어져 있다.
며칠 전부터 물이 스멀스멀 새어 나와서
테프론 테이프인지 뭔지를 검색해서 잘 감아 놨는데
역부족이었던 모양이다.
"아 참 바람 잠날 없구나..!!"
깊은 빡침이 메아리치며
이건 뭐 숨고에 의뢰해도
기본 출장비부터 이래저래..
현금깨나 깨지겠네 아이고 머리야..
머릿속에서 오래된 습관 같은
편두통이 밀려오고 있을 때
이러한 편두통은 올바른 반응이
아니라는 것 나는 이미 안다
이 진리를 터득한 내가
생각을 떨치고 스마트폰을 켜고 찾은 앱은
숨고가 아니라 쿠팡이었다.
나는 우리 집 욕실에 있는 수전과
가장 유사한 아이를 고르고 고르고 또 고르고,
몽키며 고무망치며 뭐 유사 후기에
친절한 누리꾼들이 써두신 필요한 공구들을
모조리 구매해서
다음날 신선하게 도착한 도구들을
잘 받아 들고 유튜브 영상을 켜고 수전 앞에 앉았다.
나사를 풀고, 호스를 빼고, 트랩을 분리하고..
아뿔싸..
찬물이 튀어 얼굴이 다 젖고
, 무릎은 차가운 바닥에 쓸리고..
고개를 젖혀 꺾느라 하늘이 다 노래졌지만..
다시 볼트를 조이고,
마지막 부품을 끼우며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으하하.. 내가 못할 것이 없구나..
그날 이후 나는 집에 있는
망가진 수전들을 모조리 다 수리했고
샤워기와 수도꼭지까지
정수가 되는 필터형으로 교환하는
잔재주를 부리며
"엄마 대단하지? 이것 봐봐 새거 같지?"
득의양양하게 아이들에게 우쭐댔다.
참 유치해 보였지만
남자의 성역 같아 보인
그 연장 쓰고 힘쓰고 하던 부분에 대해
내가 홀로 무언가 해냈다는 성취감은
이루 말할 수 없는 자신감이 되었다.
콸콸,
시원하게 흘러내리는 물줄기.
그 소리는 작은 전쟁에서 얻은 승전가 소리였다.
아이들에게 새로운 공간을 만들어주고 싶어
이층 침대를 당근으로 업어왔다.
그 무거운 침대를 내 차 뒷좌석에
홀로 가서 실어 온 것도 그랬지만
난 참 호기로웠다.
누구도 도전하기 꺼려한다는
고난도의 이층침대를 단 한 번의 망설임 없이,
아 그러니까 실패하리란 생각은
1도 없이 가져왔으니까.
커다란 박스를 열자
끝이 보이지 않는 나사와 판자들이
한가득 쏟아졌다.
아 물론 친절한 설명서는 있었지만
나에게만은 불친절했던 이유가 뭘까.
나 나름 대학 나온 여자인데. 허허허.
볼트를 잘못 끼워 다시 풀고,
이쪽으로 가야 할 판을 저쪽으로 붙여서
다시 풀어야 하고 팔이 떨어져 나갈 것 같은데도
꾹 참고 버티며 이리저리 붙이고 떼고
허리가 욱신거려도 다시 조립해 가며
하루를 꼬박 다 걸려서
세상에는 없을 이층 침대가 탄생했다.
아이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그래 내가 했다. 또 해냈다.
아이들이 침대를 오르내리며
놀이가 시작되자 나는
또 다른 내 안에 무언가가 깨어나는 게 느껴졌다.
아이들의 눈이 별빛처럼 반짝였다.
그 순간, 나도 함께 커졌다.
내가 만든 침대 위에서 뛰노는 아이들을 보며
나는 또 하나의 벽을 넘어섰음을 실감했다.
가족끼리 떠나는 여행.
내겐 늘 '남자가 있어야 가능한 일'처럼 보였다.
무거운 짐을 싣고,
낯선 곳에서 숙소를 잡고.. 고기를 굽고..
또 낯선 밤을 버텨내는 일은
여자 혼자서는 불가능하다 생각했다.
하지만 아이들은 장화 신은 고양이 같은
간절한 눈빛을 보였다.
"엄마, 우리도 여행가보고 싶어!"
그 말 한마디에,
나는 또다시 핸드폰을 뒤적이고 있었다.
차에 텐트와 의자, 작은 버너와 식재료까지 가득 싣고
아이 셋을 태운 채 길을 나섰다.
작은 게스트 하우스에 겨우 도착했을 때
처음 오는 강원도 산골짜기에 있는 곳이라
어두컴컴해서 내가 길을 잘 들었는지 무인 체크인이나
잘 도착했는지 확인할 길도 막막던 기억이 아직도 선명하다.
"와… 이걸 내가?"
한숨이 나왔지만, 이미 시작한 이상 물러설 수 없었다.
아이들이 옆에서 신기한 듯 지켜보고,
나는 네이버 지도에 의지해서
구불구불한 왕복이차선을 잘도 헤치고 들어가서
마침내 산세가 좋은 무인 게스트하우스에 기분 좋게 체크인을 했다.
어찌나 긴장을 했던지
땀에 젖은 머리칼이 얼굴에 달라붙고,
핸들을 잡은 어깨가 다 뻐근했지만
아무도 없는 그 게스트 하우스의
까만 밤에 아이들과 꼭 붙어 누워서
하늘의 쏟아질 것 같은 별을 보던
그 추억을 절대 잊을 수는 없을 것이다.
혼자 세 아이를 데리고도 충분히 즐길 수 있구나.
그리고 우리가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저 이불 아래 옹기종기 붙어 누워서
하늘만 바라보아도 이렇게 추억이 될 수 있구나.
준비해 온 고기는 결국 구워 먹지도 못하고
근처 편의점에서 사 온 컵라면 겨우 물 부어 먹고
다음날 아침이 되기만을 기다렸지만,
사실 우리가 계획이라 여겼던 것들
혹은 불가능이라 여겼던 일이
사실은 조금 더 힘을 내어 비틀어 보면
모두 반짝이는 별과 같은 순간들이었음을 알게 되는구나.
그 이후 나는 걸음을 겨우 하는 막내를 등에 업고
두 자매를 데리고 원주 소금산 등반을 가기도 했고,
아이 셋을 데리고 나 홀로 워터파크를
겁 없이 도전하기도 했으며,
차박에 캠핑까지 불철주야 종횡무진 하는
철의 여인으로
용감무쌍한 도전기를 펼쳐내었다.
미쳐야 미치지 않는다는 나의 공식은
여기서도 통했고
남자만 할 수 있는 일은 없는 거였다.
내 사전에서 '남자 일'이라는 말은 사라졌다.
아이들은 무언가 망가지면 당연히 말한다.
"있어 봐 봐. 있다가 엄마가 다 해줄 거야"
내가 전구를 갈고, 차를 몰고, 드릴을 돌리는 모습은 아이들의 눈에 당연한 일상이 되었다.
그뿐인가.
컴퓨터 네트워크 문제를 사뿐히 고치는 능력이라든지
전자기기를 고치는 모습도 아이들에게는 낯설지 않은 모습이다.
한 번은 아이의 친구가 놀러 와서
태블릿 PC가 오작동하는 걸 보고
내가 손을 대려 했더니 주춤거리는 눈치길래
"아줌마가 이런 거 좀 잘 다루는 편이야" 했더니
눈이 똥그래지는 모습이었다.
"우리 엄마는 이런 거 손도 못 대는데.."
그때 루비의 눈빛이 반짝이며 으스대던 것을
나는 아직도 잊지 못한다.
"우리 엄마가 이런 거 좀 잘해"
고장 난 선풍기도, 리모컨도 뭐 심지어 청소기까지도
내가 이리저리 분해했다가 끼워 맞추며 고치고 있는데
사실 나도 타고났다고 하긴 그렇고
이제 이건 '내 일'이라는 사명을 가지고 붙어 앉아서 연구하다 보니
어느 순간 그리 되었다 할 수 있겠다.
최근 한 번은 에어컨에, 세탁기에..
전기 사용과다로 누전이 되었는지 정전이 됐는데
내가 아무렇지도 않게 두꺼비집을 찾아서
누전 차단기를 찾아 올린 적이 있다.
이런 태연한 대처를 했다는 썰을
지나가다 듣게 된 경비아저씨가 한 말씀하신다.
"아이고.. 애기 엄마는 겁도 안 나셔요?"
삼 남매의 눈빛에는
"엄마는 뭐든 할 수 있다"는 믿음이 반짝인다.
그 믿음이 나를 지탱하는 또 하나의 힘이 된다.
하지만, 사실… 내게도 블랙리스트가 있다는 사실.
100피스가 넘는 직소 퍼즐.
끝도 없이 이어지는 레고 블록.
설명서를 아무리 들여다봐도 조각들이
내 눈앞에서 빙빙 돌기만 한다.
그럴 땐 아이들 앞에서 멋쩍게 웃으며 말한다.
"얘들아, 이건 엄마 블랙리스트야. 퍼즐이랑 레고는…
00이 삼촌한테 해달라고 해 -_-;;"
아이들은 또다시 깔깔 웃는다.
나는 웃음을 참지 못하고 같이 웃는다.
나의 한계가 때로는 한바탕 박장대소의 재료가 되기도.
삶은 수없이 많은 벽을 세워 나를 멈추게 하려 했다.
하지만 나는 전구를 갈고,
싱크대를 고치고, 차를 몰아 장거리를 달리고,
드릴을 돌려 커튼을 달고,
밤하늘 아래 아이들과 낯선 곳에서 잠을 청하며
허들을 넘고 넘어 나는 한계를 허물어 갔다.
그리고 아이들은 그 모든 장면을
내 곁에서 지켜보았다.
엄마의 등을 보며 앞으로
나아가는 모습을 고스란히 배워갔다.
이제 그들의 세계에는
'남자 일'과 '여자 일'의 구분이 없다.
오직 '해야 할 일', 그리고 '해낼 수 있는 일'만 남았다.
그리고 나는 안다.
두려움은 여전히 존재하지만,
그 두려움 속에서 내 안의 목소리를 믿고 움직이는 것
—그것이 바로 용기다.
오늘도, 아이 셋과 함께,
나는 그 용기를 품고 천천히,
그러나 단단하게 반드시 앞으로 나아간다.
세상에 남자 일은 없었다.
오직 '내가 해낼 일'만 있었을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