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3 멈추지 않았다면 몰랐을 것들 — 쉼의 역설

D. 싱글맘의 용기수집 시리즈 — 두려움을 딛고 일어선 순간들

by 다루오


열심히 사는 인생들이 늘 그렇듯

나는 달리는 법에만 익숙했다.
숨이 차도 멈출 수 없었다.

멈추면 집이 무너질 것 같았고,

아이들이 흔들릴 것 같았다.

그래서 무조건 달리고 또 달렸다.


엄마로서, 교사로서,

한 집안의 가장으로서

멈춘다는 건 곧

책임을 놓는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에.

멈춤은 나약함이고,

쉼은 사치이기에.

잠깐의 숨 고르기조차 내게는

허락되지 않는 일이라 여겼다.


새벽 5시에 일어나 아이들을 등교/등원 준비를 하고,

출근해서 수업을 하고,

퇴근 후에는 아이들 학원 픽업,

저녁 준비,

빨래, 설거지까지.

하루 24시간이 모자라

밤 12시가 넘어서야 잠들고,

다시 새벽 5시에 일어나는 루틴을 반복했다.


그 와중에도 머릿속은

항상 바쁘게 돌아갔다.


'내일 학부모 상담이 있지',

'다엘이 학원비 입금해야 하고,'

'루비 감기약 떨어져 가고',

'세탁기 고장 나면 어쩌지'...


끝없는 걱정과 할 일들이

내 뇌를 점령하고 있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내 삶을 정말로 살려낸 순간들은

오히려 멈추었을 때 찾아왔다.



01. 몸이 나를 멈추게 했을 때


몸은 결국 신호를 보냈다.

어느 날 이유 없는 고열과 두드러기로 쓰러졌다.

온몸에 발진이 돋아나고, 입맛이 사라져

아무것도 삼킬 수 없었다.

수업 중에도 버티지 못해 병외출을 냈고,

근처 병원에서 수액을

두어 번 맞고 돌아와도 차도는 없었다.

일주일 만에 체중이 5킬로그램이나 빠졌다.

기운이 없어 화장실 가는 것조차 힘겨웠다.


평소 같으면 "이 정도는 괜찮아"라며

억지로라도 일상을 유지했겠지만,

이번엔 정말 불가능했다.


나는 그때 이틀 삼일 동안

억지로 멈출 수밖에 없었다.


이불속에 누워 꼼짝도 못 하는 동안,

신기한 광경이 펼쳐졌다.

아이들이 내 옆에서 스스로 밥을 차려 먹고

빨래를 돌리고,

숙제를 챙기는 모습을 보게 된 것이다.

첫째 다엘이는 내가 없으니

자기가 엄마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지

진두지휘를 했다.


"레오야, 이거 먹어"

"루비야, 먹은 거 같이 치우자"


평소 같으면 둘째 루비가 언니 말에

앙칼지게 굴었을 텐데,

그런 기색 하나 없이 다 도우려고 했다.

막내 레오도 누나들 말을 잘 따랐다.


첫째 다엘이는 막내 레오가 화장실을 가면

뒤처리를 기가 막히게 해 주고,

둘째 루비는 라면을 끓여서 셋이 나눠 먹었다.

평소 내가 해줘야 하는 레오의 뒤처리까지

누나들이 자연스럽게 도맡아 하는 모습에 나는 감동했다.

설거지까지 척척 해내는 모습을 보며 나는 깜짝 놀랐다.

"엄마, 괜찮아? 우리 잘하고 있지?"

루비가 내 이마에 손을 대며 물었을 때,

나는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그제야 알았다.

내가 쓰러진다고 해서

집이 곧장 무너지는 건 아니었다.

멈추었을 때,

오히려 아이들이 자라났다.

내가 전부 떠안고 달리느라

미처 보지 못했던 아이들의 가능성,

그들의 놀라운 적응력과 책임감이

거기 피어나고 있었다.


내가 모든 걸 해줘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아이들은 이미 충분히 컸고,

충분히 할 수 있었다.


나의 강박적인 보살핌이 오히려

아이들의 성장을 가로막고 있었던 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02. 원망을 놓았을 때, 길이 열렸다.


몸뿐 아니라, 마음에도 멈춤이 필요했다.

나는 한동안 아이 아빠에게 끊임없이

양육비 독촉 메시지를 보냈다.

"언제 보내줄 거야?"

"아이들 학원비가 밀렸어."

"한 번만, 제발 이번 달은…"

"아이들이 물어보는데 뭐라고 말하라고?"


매일 같은 메시지를 보내면서도 답은 오지 않았다.

읽음 표시조차 안 뜨는 메시지들을 보며

나는 점점 더 초조해졌다.


밤늦게까지 폰을 들여다보며 답장을 기다렸고,

답이 없으면 재차 또 다른 메시지를 보냈다.

독촉을 멈추지 않는 한, 내 마음은 끝없이 소모되었다.

그건 아이 아빠를 향한 원망이 아니라,

결국 나 자신을 갉아먹는 일이었다.

화가 나고, 서럽고, 억울한 감정들이 내 하루하루를 지배했다.


아이들 앞에서도 짜증이 늘었다.

"아빠한테 연락 안 와?"

"아빠가 뭐라고 했어?"


아이들에게도 자꾸 같은 질문을 반복했다.

아이들을 응대하는 내 표정까지도 점점 어두워만 갔다.


그러다 어느 날 문득,

"이제 정말 그만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계속 매달려봤자 상황은 변하지 않고,

오히려 나와 아이들만 더 상처받을 뿐이었다.


손을 놓기로 결심했다.

더 이상 메시지를 보내지 않기로,

기대하지 않기로, 원망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신기하게도 독촉을 멈추자 다른 길이 보였다.

긴급지원 서비스, 차상위 한부모 지원,

그리고 특별히 한시적 양육비지원 제도 같은

놀라운 지원들이

차례로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예전에는 "애들 아빠한테 받아야지"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다른 대안을 찾아볼 여유조차 없었는데 말이다.

특히 양육비 긴급지원 서비스는 정말 큰 도움이 되었다.

복아힘(복지 아는 게 힘)이라는 카페에서 누군가 올린 글을 보고

"이런 것도 있구나" 싶어서 검색해 보니 한

국건강가정진흥원에서 운영하는 제도였다.


신청 과정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다.

온라인으로 신청서를 작성하고, 양육비 미지급 증명을 위해

가정법원에서 발급받은 이행명령 결정문과

통장 사본 등을 제출했다.


서류 준비하는 데 며칠 걸렸지만,

그간 빚독촉을 하듯 매번 애궐복궐하던 나의 마음고생을 생각하자면

일도 아니었다..

승인이 나고 나서 아이 한 명당 월 20만 원씩

최대 12개월까지 지원받을 수 있었다.


아이 아버지가 책임져야 할 양육비의 공백대신

매달 정부에서 책임져지고 지원해 주는 60만 원은

정말 큰 힘이 되었다.


무엇보다 좋았던 건 양육비 이행 관리를 도와주고,

상대방 재산 조회나 법적 절차에 대한

상담도 받을 수 있다는 점이었다.

혼자서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던 일들을

전문가가 도와주니까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독촉을 멈췄기에 나는 내 마음을 원망에서 돌려

현실적인 대안과 제도를 바라볼 수 있었다.

멈춤은 패배가 아니라, 나를 살려낸 새로운 출발이었다.



03. 돈의 고삐를 늦추며 알게 된 것


나는 한동안 돈을 모으는 일에 강박적으로 매달렸다.


소위 '풍차 돌리기'라 불리는

적금을 여러 개 돌리며 무조건 아끼고, 줄이고, 참아내는

재테크를 해가며 '아껴서 잘살자'를 시전 했다.


매달 통장 정리를 하며

"이번 달도 10만 원 모았다"

"다음 달은 15만 원을 목표로 하자"

이런 식으로 스스로를 채찍질했다.

아이들이 "엄마, 이거 사주세요"라고 하면 무조건

"안 돼. 돈 없어"라고 대답하는 게 습관이 되었다.


할인점에 들를 때에도 1000원짜리 과자마저

"너무 비싸다"며 포기하고,

아이들이 좋아하는 딸기는

"지금은 제철이 아니야"라며 외면했다.

"쓰면 안 돼. 모아야 돼." 그게 정답인 줄 알았다.


그런데 어느 날, 아이들이

"엄마, 다이소 가자!"라고 조르기 시작했다.

처음엔 단호하게 거절했다.

"안 돼. 괜히 잔돈만 허투루 쓰게 될 거야."

하지만 아이들의 간청이 계속되자 마지못해 따라갔다.


다이소에서 아이들은 각자 천 원짜리,

이천 원짜리 작은 것들을 하나씩 골랐다.

루비는 귀여운 스티커를, 다엘이는 볼펜을,

레오는 작은 인형을.

전부 합쳐도 5천 원이 안 되는 금액이었다.


계산을 하고 나오는데

아이들이 그렇게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며

나는 머리를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엄마, 고마워!"

"이거 진짜 예뻐!"

저 작은 것들로 이렇게 기뻐할 수 있구나.


아이들의 환한 웃음을 보며

나는 뭔가 서늘한 감정을 느꼈다.

언제부터 내가 이렇게 인색한 엄마가 되었을까.

몇 천 원으로도 충분히 만들 수 있는 행복을

왜 그렇게 막으려고 했을까.


돈은 쌓아두는 것만으로는 결코

삶의 힘이 되지 않는다는 걸 그때 알았다.

적금 통장에 쌓인 숫자가 아무리 늘어나도,

그 과정에서 아이들과 내가 느끼는

일상의 기쁨을 박탈당한다면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쓸 땐 쓰고, 누릴 땐 누려야

다시 일할 동기가 생긴다.


아이들도 소비의 즐거움을 알아야

사는 힘을 얻는다.

물론 무분별한 소비는 경계해야 하지만,

적절한 소비는 삶을 윤택하게 하는 필수 요소였다.

나는 저축의 고삐를 잠시 늦추고 나서야 알았다.

멈추지 않았다면 절대 몰랐을 것들.

적절한 소비는 낭비가 아니라, 삶을 다시 굴러가게 하는

마중물 같은 것이라는 것을.

가끔은 계획에 없던 외식을,

예상치 못한 선물을,

즉흥적인 나들이를 해도 괜찮다는 것을.


그 이후 나는 풍차 돌리기를

'행복회로 돌리기'로 대신하기로 마음을 고쳐먹고

반쯤 나사가 풀린 쉼의 통장관리사로 살고 있다.



04. 불완전함이 주는 온전한 행복감


이 세상에 나는 완벽한 엄마가 되어야 한다는

강박에도 시달리지 않는 엄마 누가 있을까.


아이들 식탁은 차려야 하고,

집은 항상 깨끗해야 하고,

숙제 검사는 빠트리면 안 되고,

아이들 옷은 언제나 깔끔해야 하고..


어디 그뿐인가

주말이면 아이들과 세상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내야 한다는 압박감도 추가되지 않는가.

박물관도 가고, 공원도 가고, 각종 체험학습도 시켜야

'좋은 엄마'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허우적 대는 것은 엄마라면 다 겪는 일일 것이다.


나라고 별반 다르진 않았던 날들이 있었다.

홀로 된 다음에도 그 '완벽성'에 대한 집착은

식을 줄을 몰랐는다.


그러던 어느 토요일 아침,

그날도 완벽하고 빼곡한 스케줄이 있었지만

나는 너무 지쳐서 말 그대로 장판과 물아일체가 되어

움직수가 없는 상태가 되어버렸다.

"오늘은 정말 아무것도 할 수 없겠다"는 마음으로

아이들에게 말했다.

"엄마 오늘 너무 피곤해.

집에서 아무것도 안 하고 쉬자."

아이들 반응이 의외였다.

"좋아!" "그럼 우리 미디어만 하자!"

"엄마랑 같이 누워있자!"


우리는 그날 하루 종일 방바닥과 일체가 되어

뒹굴뒹굴했다.

유튜브 쇼츠도 무제한으로 보고,

그렇게 금기하는 '침대 위 과자 먹기'는 물론,

중간중간 짧은 낮잠도 잤다.

간지럼을 태우고, 말장난을 하고,

시답잖아 보이는 아재개그 같은

그야말로 '비효율적인 토요일'을 보내었다.


막내 레오가 속옷도 안 입고 누워있는 내 옆에

찰싹 붙더니 장난스럽게 말했다.

"엄마 찌찌다 엄마 찌찌" 하면서

내 젖가슴을 짓궂게 만지길래,

나는 웃으면서 말했다.


"야, 여기가 얼마나 소중한 곳인 줄 알아?

누나들이랑 너랑 애기 때 다 여기서 나오는

유 먹고 컸어, 너희들~"


그러자 레오가 가뜩이나 쌍꺼풀 진 눈을

똥그랗게 말아 뜨며 진지하게 물었다.

"아니, 엄마가 소였어?"


우리 네 가족은 박장대소를 하며

한참을 깔깔대고 웃었다.

그날 이후 며칠간 나는 레오만 보면

움메움메 소 흉내를 내며

그날의 일을 떠올리며

낄낄거리길 반복했고

추억의 책갈피 하나가 추가되었다.


이런 자연스러운 스킨십과 체온을 나누는 시간,

아무 계획 없이 함께 웃는 순간들이야말로

아이들이 정말 원하는 행복이었구나.

완벽한 계획, 완벽한 교육, 완벽한 관리보다 중요한 건

그냥 함께 있어주는 시간이었구나.


멈추지 않고 계속 뭔가를 해주려고만 했다면,

이런 소중한 순간을 아마 영영 놓쳤을지도 모르겠다.



05. 쉼의 역설


나는 멈춤을 두려워했다.

멈추면 뒤처질까, 멈추면 무너질까,

멈추면 아이들에게 상처가 될까 두려웠다.

멈춤은 나약함의 증거이고,

책임감의 부족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멈추었을 때 비로소 보였다.


아이들의 성장은 내가 전부 책임지지 않아도 된다는 것.

사람에 대한 원망을 멈출 때,

내 안이 조금은 자유로워진다는 것.

돈을 모으는 집착을 멈출 때,

오히려 삶이 더 잘 돌아간다는 것.

완벽해야 한다는 강박을 멈출 때,

진짜 소중한 것들이 보인다는 것.


멈춤은 역설이었다.


나를 약하게 만드는 게 아니라,

오히려 다시 걸을 힘을 주는 에너지였다.

쉼은 사치가 아니라 필수였고,

멈춤은 포기가 아니라 한 발 뒤에서

정말 지금 내가 인생에 어떤 시기를 지나고 있는지를

보다 선명하게 보게 해주는 바로미터 역할을 해주었다.


달리기만 할 때는 주변 풍경을 볼 수 없다.

멈춰 서서 숨을 고를 때야 내가 어디에 있는지,

어디로 가고 있는지,

무엇이 정말 중요한지를 알 수 있다.


그리고 멈춤을 통해

나는 하나 더 중요한 것을 깨달았다.

내가 달리는 동기가 두려움이나

조바심 때문이라면,

정말 그때야말로 쉼이 필요하다는

확실한 사인이라는 것을.


내가 지금 달려 나가는

이 모든 것의 이유가

사랑과 희망, 혹은

그 변주에 가까운 무언가가 아니라면,

정말 잠시 쉬어간다고 해서

무슨 일이 생기지 않는다는 게

인생의 법칙 같은 거라는 것을.



06. 깨달음


나는 이제 안다.

멈추지 않았다면 결코 몰랐을 것들이 있다는 것을.

몸을 멈추었기에 아이들의 가능성을 보았고,

마음을 멈추었기에 제도의 도움을 발견했으며,

돈의 고삐를 늦추었기에

삶의 즐거움을 다시 찾았다.


완벽함의 추구를 멈추었기에

진짜 소중한 순간들을 놓치지 않을 수 있었다.


싱글맘으로서 달려야 할 때도 있다.

책임감을 가지고 부지런히 살아야 할 때도 있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멈춤의 지혜를 잃지 말아야 한다.

멈춤 없는 삶은 방향을 잃기 쉽고,

쉼 없는 일상은 의미를 잃기 쉽다.


쉼은 사치가 아니다.

멈춤은 포기가 아니다.

그것은 다시 살아가기 위한 가장 단단한 발판이다.

나는 멈추기에, 살아갈 힘을 얻는다.

멈추지 않았다면, 결코 몰랐을 것들을

발견하며 나아간다.


오늘도, 때로는 달리고 때로는 멈추며,
아이들과 함께 우리만의 속도로 나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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