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 싱글맘의 용기수집 시리즈 — 두려움을 딛고 일어선 순간들
나는 늘 강해야 했다.
타이거 맘이자 깐깐한 여교사,
버팀목이 되는 가장이란 타이틀까지
버텨내려면 나는 강한 사람이어야 했다.
그래서 다짐했다.
울지 말자. 흔들리지 말자.
아이들 앞에서는 절대로 눈물을 보이지 말자.
하지만 그 다짐의 뿌리는 단순히 '강해야 한다'는
의무감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보다 더 오래된 기억이 나를 지배하고 있었다.
열아홉 그 시절을 회상해 보자면
엄마가 세상을 떠나시기 두세 달 전부터
자주 눈물을 흘리셨던 기억이 선명하다.
나는 이유를 알지 못했다.
하지만 그 눈물은 평범한 게 아님을
예감할 수 있었다.
말로 설명되지 않는 기운,
알 수 없는 슬픔이
집안을 감싸던 그 묘한 정적들을
나는 세포 속 깊이 기억한다.
나는 엄마의 눈물을 보면서
어렴풋이 이별을 짐작했던
나의 본능이 발동하던 서늘함을 말이다.
"엄마가 곧 떠날지도 모른다"
막연한 불안과
혼란이 각인된 아픔을 말이다.
그래서 결심했다.
'나는 내 아이들에게
이런 기억을 남기지 않겠다.'
나약함과 슬픔으로 점철된 모습이
아이들의 마음에 오래 남을까 두려웠다.
그 두려움이 나를 붙잡았고,
그래서 나는 더 눈물을 억누르고 애써 밝은 척
오히려 더 웃으려 씩씩하게 애를 써왔다.
내가 줄곧 듣던 말이다.
"넌 멘털이 갑이다"
웬만한 일에는
끄떡도 안 할 것처럼 보이는 철의 여인.
그들의 말 대로
나 역시 그렇게 믿었다.
어떤 풍파도
정신만 단단히 붙들면 버틸 수 있다고.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나는 상당기간 우울함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허덕이고 있었다.
뒤이어
공황장애가 찾아왔고, 불면증까지 겹쳤다.
밤마다 잠이 오지 않아 새벽까지 뒤척였다.
잠들어도 금세 악몽에 시달리며 깨곤 했다.
아이들을 재운 뒤 불 꺼진 부엌에 서 있다가도,
이유 없는 눈물이 왈칵 터져 내렸다.
나는 그 눈물의 이유를 모른 척했다.
아니, 인정하기 싫었다.
"내가 너무 나약해서 그렇다."
"정신력이 부족해서 그렇다."
나는 그렇게 스스로를 몰아세웠다.
자책했고, 더 강해져야 한다고 채찍질했다.
결정적인 순간은
어느 아침 출근길에 찾아왔다.
매일 자차로 20분 남짓 되는 거리를 달려
서울 어느 고등학교로 향하던 평범한 일상이었다.
그날도 평소처럼 운전대를 잡고 길을 달렸다.
라디오에서는 DJ가 힘찬 목소리로 말했다.
"오늘도 파이팅입니다!
창밖에는 가방을 멘 학생들이
부지런히 걸어가고 있었다.
분주한 출근길, 평범한 풍경이었다.
신호에 걸려 잠시 멈춘 순간이었다.
갑자기 아무런 예고도 없이,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황급히 나는 손으로 눈물을 닦았다.
하지만 눈물은 멈출 생각이 없었다.
핸들을 쥔 손은 멈추어 버렸다.
신호가 바뀌었지만 액셀레이터를 밟지 못했다.
차창 밖으로는 여전히 일상이 흘러가고
누군가는 웃으며 전화를 받았고,
누군가는 아이 손을 꼭 잡고 횡단보도를 건넌다.
그 평범한 풍경이,
내 안의 무언가 뜨거운 것이 울컥하고
건드려 더 이상 참을 수가 없다.
나는 핸들에 머리를 묻고 한참을 울었다.
아무도 보지 않았는데도,
내 안의 무너짐이
세상에 다 드러나는 듯 두려웠다.
그때 나는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결코 강한 사람이 아니다.
그날 이후 나는 알았다.
이건 단순한 피곤이나
멜랑콜리한 기분 탓이 아니었다.
치료가 개입돼야 하는 지점이었다.
병원 문을 두드리기까지는 큰 용기가 필요했다.
정신건강의학과.
그 단어는 내게 마치
'언덕 위 하얀 집'이라는
어린 시절 놀림감이 주는 압박을 선사하는 곳.
그 문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내가 약하다는 낙인이 찍히는 느낌을 주는 곳이었다.
그럼에도 결국,
나는 그 문턱을 넘게 되었다.
의사 선생님께서는 내게 SSRI 계열의 약과
알프람, 인데놀등을 처방해 주셨다.
손에 약을 쥐었을 때, 그
것을 삼켜야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데도
많은 생각이 교차했던 것을 나는 인정한다.
'내가 약을 먹는 사람이라니. 이 약을 평생 먹으면 어쩌지….'
그 부정과 두려움 속에서 나는 오래 서성였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며 알게 됐다.
약을 먹는 내가 약한 게 아니었다.
약을 먹더라도 생의 의지를 가지는 내가
오히려 강한 거였다.
치료를 선택했다는 것 자체가
용기였다.
치료를 받는 것도 힘들었지만,
또 다른 용기는 아이들에게 솔직해지는 일이었다.
나는 아이들에게 늘 웃는 얼굴만 보여주려 애썼다.
엄마는 괜찮아, 엄마는 늘 강해.
그게 아이들에게 안정감을 줄 거라 믿었다.
하지만 더 이상 감추지 않기로 했다.
"엄마는 병원에 다녀와야 해."
"엄마는 약을 먹어야 마음이 편해져."
이 말을 꺼내는 데는 큰 용기가 필요했다.
아이들이 불안해하지 않을까,
엄마를 약한 사람으로 보지 않을까 걱정됐다.
그런데 아이들은 내 예상과 달랐다.
첫째 다엘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엄마 아프면 병원 가야지."
둘째 루비는 물었다.
"약 먹으면 괜찮아지는 거야?"
막내 레오는 말없이 내 무릎에 올라와 재롱을 부렸다.
나는 아이들에게 반복해서 설명했다.
엄마의 마음이 왜 힘든지,
약이 어떤 도움을 주는지,
정기적으로 병원에 가는 게 왜 필요한지.
아이들은 자기들 눈높이에서 이해하려 애썼다.
그리고 그 이해를 자기들만의 방식으로 표현했다.
"엄마, 오늘은 기분이 어때?"
"엄마, 울어도 돼."
"엄마 힘들면 우리가 도와줄게."
그 단순하고 소박한 말들이,
작은 손길들이 내게는 세상에서 가장 큰 위로였다.
아이들의 반응은
내가 더 큰 용기를 낼 수 있는 디딤돌이 되었다.
어느 순간부터 나는 아이들 앞에서도
마음껏 울기 시작했다.
억지로 숨기지 않고, 참지 않고, 감정이 올라오면
그대로 표현했다.
아이들도 처음에는 당황했지만,
시간이 지나자 그것을 이해하게 되었다.
나는 아이들에게 말했다.
"감정에는 나쁜 게 없어.
다만 그 감정을 표현하는 방식이 건강해야 해.
화를 내도, 눈물이 나도 괜찮아.
다만 서로에게 상처 주지 않는 방법으로
표현하는 게 중요해."
내 눈물은 단순히 나의 해방이 아니었다.
아이들에게 감정 교육, 감정 코칭이 되었다.
엄마가 우는 걸 보며 아이들은 알게 되었다.
울음은 약함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감정의
표현방식이라는 것을.
그리고 그 감정을 솔직히 나누는 게
때론 우리 가족을 더 단단하게 만든다는 것을.
시간이 흘렀다.
나는 이제 말할 수 있다.
첫 시작은 약 5년 전이었지만
지난 3년간은 약을 거의 복용하지 않고도 잘 지내왔다.
물론 이따금 우울해지고 눈물이 터질 때가 있다.
심장이 요동치고 숨이 가빠지기도 한다
하지만 그럴 땐 더 이상 참지 않는다.
마음이 벅차면 엉엉 울어버린다.
눈치 보지 않고, 억누르지 않고, 있는 그대로 흘려보낸다.
그리고 호흡이나 심박에 증상이 감지되면
주저하지 않는다.
아이들 눈치 보지 않고, 즉시 병원으로 향한다.
필요하다면 SSRI 약을 처방받거나
알프람이나 인데놀을 구비하여
그 자리에서 복용한다.
나에게 이제 그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나를 지키는 방법이고, 내 아이들을 지키는 길이기도 하다.
나는 더 이상 내 감정의 노예가 아니다.
언제든 다시 우울해질 수 있지만, 나는 이제 방법을 안다.
내 취약점을 알기에, 어떻게 다스리고 회복해야 하는지도 안다.
그래서 더 이상 두렵지 않다.
그리고 내 일상 속에는 나만의 작은 치트키도 있다.
비타민 B6와 B12, 멜라토닌.
이것들은 감정 자극 방지용 비밀 병기다.
불현듯 감정이 요동칠 때, 잠이 오지 않을 때,
내 몸을 다독여주는 작은 도우미다.
이 치트 키들 덕분에 나는 좀 더 가볍게
웃을 수 있고,
조금 더 편안하게 잠들 수 있다.
나는 이제 안다.
약을 먹는다고 해서, 치료를 받는다고 해서,
아이들 앞에서 울었다고 해서
내가 약한 게 아니다.
오히려 그 솔직함과 선택들이
나를 더 강하게 만들었다.
아이들은 반복해서
내 이야기를 들으며 자기들 눈높이에서 이해했고,
그 이해를 작은 말과 행동으로 보여주었다.
우리 아이들은 자기감정상태를
말로 표현하는데 익숙하다.
그리고 자신의 욕구를 표현하는데
주저함이 없는 편이다.
감정에는 나쁜 것이 없고 다만, 그 표현 방식이
건강해야 한다는 말을 나에게
수십 번 아니 수백 번도 더 들어서 생긴 결과이다
얘들아 미안하다 잔소리
그리고 상대방의 감정을 살펴서
감정의 이름을 붙여 부르는데도
익숙한 편이다.
"엄마 지금 슬프구나"
"엄마 지금 뭔가 화가 났구나"
"엄마 지금 스트레스받았지?"
"엄마 오늘은 눈이 웃고 있네. 우리 치킨 먹어?"
그 작은 위로 하나하나가 내게는 엄청난 힘이 되었고,
다시 살아갈 수 있는 용기의 디딤돌이 되었다.
그리고 이제는 안다.
아이들 앞에서 흘린 눈물은 상처가 아니라 가르침이 되었다.
나는 울 수 있는 엄마이고,
아이들은 그 눈물 속에서 감정의 건강한 이름을 배워간다.
진짜 강함이란 울지 않는 것이 아니라, 울 때와 웃을 때를 아는 것,
그리고 그 모든 감정을 솔직하게 나누며 함께 자라 가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