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1무너진 자리에서 피어난 꿈ㅡ고난은 위장된 축복

E. 싱글맘의 꿈 보관함 시리즈 ㅡ상처 위에 다시 심은 꿈의 씨앗들

by 다루오

한때 나는

꿈은 잠시 미루어 두는 거라 여겼다.


숨 가쁘게 달리는 일상 속에서

"꿈은 품되, 오늘 하루를 버티자"

스스로 다독이며

살아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여겼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내가 무너졌다고 생각한 바로 그 자리에서

꿈은 오히려 피어올랐다.


이혼 소송 중의 불안,

셋째의 안면 장애 진단 앞에서의 절망,

새벽마다 쏟아지던 눈물 속에서

— 꿈은 여전히 나를 찾아왔다.


그리고 나는 알았다.

무너진 자리는 끝이 아니라,

또 다른 시작이 될 수 있다는 것을.



01. 밤, 묻혔던 '나'를 깨우다


그러던 어느 날 밤이었다.

아이들이 모두 잠든 늦은 밤,

열어본 스마트폰 앱

그 속에는 승무원 시절부터

차곡차곡 쌓아온 페이스북 피드가 있었다.


대학 졸업 이후부터

교사가 되고 결혼을 하기 전까지

내가 진정성 있게 써 내려간 글들,


진심을 담아 찍어둔 무수한 하늘들,


그리고 청청한 20대에 꿈꾸던

'멋진 나'의 모습까지

— 그 모든 것들은

과거가 아니라 손에 닿는 현실과 같았다.


나는 스크롤하다가 멈칫했다.


이건 단순한 기록이 아니라,

내가 묻어 놓았던 진짜 '나'였다.

순간, 입가엔 웃음이

눈가엔 눈물이 핑 돌았다.


"아, 나는 이미 오래전부터

꿈을 꾸던 비저너리였구나.

나를 살려낸 건 결국 글이었구나."


그 늦은 밤,

어둑해진 방에서 새어 나오는

불빛에 의지해

나는 처음으로 인정했다.


내 안에는 여전히 무언가를

창조하고 싶어 하는 깊은

메아리 소리가 있다는 것을.


그것은 이혼 소송도, 생활고도,

육아의 피로도 멈추게 할 수 없었다.



02. 부른 배와 노트북이 만든 초인력


사실 나는, 이혼 소송 중에

셋째를 임신한 상태였다.

'아이 셋이면 기간제 교사도

이제 끝이겠구나' 싶던 그 시절,

내가 가진 인생의 철칙 같은 게 있었다.


문제는 문제를 위한 게 아니다.

반드시 해결방법이 있다!


그 순간 내게 스친 게

내 안에 깊은 메아리였던

글쓰기에 대한 내 꿈이었다.

내 꿈은 단 번에

내 '문제'에 대한 '해결책'이라는

날개를 달아주었다.


그리고 단 한 달 만에 원고를 완성했다.


부른 배를 부여잡고

밤을 새우며 썼고,

결국 한국경제신문사와 출판 계약까지 했다.

그 책이 바로

『이것이 내 마지막 영어공부다』였다.


그 시절 나는,

한 손으로 허리를 받치고

팔자걸음으로 걷는 누가 봐도

산달이 임박한 임산부였다.

아, 그리고 특이점 하나가 더 있었다면

교무실에 제일 먼저 출근하는 교사였다.


아무도 오지 않은 새벽의 교무실,

형광등 불빛 아래에서

토도독 토도독 키보드를 두드릴 때마다

영감이 솟구치던 그 짜릿함은

나만 아는 카타르시스였다.


순간순간 단어와 문장이 쏟아져 나오는데,

그때만큼은 피곤도, 불안도,

두려움도 다 잊혀졌다.

그 시간만큼은 내가

정말 살아 있음을 느꼈다.

숨 쉬고 있다는 것, 존재한다는 것,

내가 여전히 무엇인가를

창조할 수 있다는 사실이,

나를 다시 일으켜 세웠다.


다시 떠올려 봐도

그건 정말 초인적인 힘이었다.

임신한 몸으로,

이혼 소송의 스트레스를 안고,

두 아이를 키우면서도

책을 쓸 수 있었던 건


순전히 꿈의 힘이었다.



03. 절망 속에서 꿈의 프레임을 잡다


셋째는 태어나기도 전에

구순구개열 진단을 받았다.

초음파와 기형아 검사에서 이미 알고 있었지만,

막상 현실로 맞닥뜨리니

만만한 일은 아니었음을 고백해 본다.


난 이미 경산모였지만

모유수유가 안 되는 상황에

특수젖병을 물려야 했던 일이며

스테리라는 수술 전 교정을 해야 했던 일이며

100일이 되자마자 큰 수술을 해야 했던 일이며...


지나고 나서 되돌아보니

참 큰 고비가 많이 지나갔던 시간들인데

어찌 그리 담담했을까.


이것도 다 내 꿈들이 점철됐던

그 시간들이 나를 일으켜 세운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특히 수술을 하던 그 시점이

코로나 시절이라 보호자가

1인 이상 상주할 수 없어서..

교대 자체가 불가했던 건

난감하기 짝이 없는 일이었다.


집에서 엄마만 기다리던

두 딸들도 너무 어렸고

일주일이나 병원에서

밤을 꼬박 새워야 하는 나도

제왕절개를 세 번째 하고

회복한 지 얼마 안 된

산모였기에.


병실 앞에서,

수술실 앞에서,

오롯이 혼자 감당해야 했지만

나는 거기서 또 꿈을 붙잡았다.


"이 과정을 기록하자. 내 방식대로."


사실 그전까지 나는,

다른 엄마들이 올린 육아기록을 보며

자꾸만 열등감을 느꼈다.


아이를 살뜰히 살피고

꼼꼼히 기록하는 모습이

대단하다 싶으면서도,

나는 늘 벅차고 지쳐 있었기에

'나는 왜 저렇게 못하지'라는

자책이 밀려왔다.


그래서 내린 극약처방이 있었다.

나도 기록하자.

그런데 글이 아니라 영상으로.


아이를 돌보는 나를,

병간호하는 나를,

그대로 촬영하기 시작했다.

카메라를 들고 아이 곁을 오가던 순간,

나는 문득 어린 시절 꿈꾸던

방송국 PD가 된 것만 같았다.


프레임을 잡고,

장면을 구성하고,

편집을 구상하면서

"누군가 나를 지켜본다"는 기분이 드니

오히려 힘이 났다.


그때 나는 알았다.

병간호는 고통만이 아니라

또 다른 문이 될 수 있다는 걸.

나는 이미 또 하나의 꿈을

이루고 있었던 것이다.

유튜버가 되는 것,

그리고 영상 제작자가 되는 것.

그리고 그것을 통로로,

누군가에게 희망이 될 수 있는 것.


놀랍게도 그 영상이 말 그대로

떡상했다.


밤새 아이 옆을 지키며

눈물 흘리던 시간들이,

누군가에게는 위로와 용기가 되어

날아갔다.


"내 삶은 망가졌어"라고

생각했던 순간들이

오히려 새로운 길을 열어주었다.



04. 싱글맘의 근육은 부엌에서 자란다


그 와중에도

나는 또 한 가지 꿈을 붙잡았다.

바디 프로필.


헬스장에 갈 시간도,

제대로 식단을 해낼 여력도 부족한

아이 셋을 기르는 워킹맘이자 싱글맘에게

가능한 일일까?


정말 나에겐 실험적인 도전이었다.


첫 번째로 내가 택한 운동장은…

우리 집 부엌이었다.

아이들 밥상 차려주고,

국이 끓는 동안 스쿼트.

반찬 데우면서 런지.

가스레인지 앞에서 버피를 하다가

아이들한테 들켜 "엄마 뭐 해?"라는

눈총을 받을 때면 얼굴이 화끈거렸다.


혼자서는 오래 못 간다.

그래서 운동 커뮤니티에서 만난 언니들이랑

단톡방을 만들었는데,

이름이 기가 막혔다.


"와삼 프로젝트."


뜻은 단순했다.

"하루에 개구리 세 개 꿀꺽."

아토믹 해빗에서 영감을 받아,

거창한 목표 대신

하루 작은 목표 세 개만 세워서

그거만 해치우자는 취지였다.


예를 들면,

스쿼트 50개, 버피 30개, 물 2리터 마시기.

이렇게만 해도 하루 미션 성공.


놀랍게도 그 단톡이 대박이 났다.


서로 인증샷 올리면서 응원하고,

실패하면 "내일은 꼭 해!" 하며 다독이고.

그 단순한 세 개의 미션이 우리를 버티게 했다.


그렇게 1년을 버티고,

셋째의 돌이 막 지났을 무렵,

나는 드디어 바프를 찍었다.

거울 속 내 몸은 20대보다 탄탄했고,

웃음이 났다.


"야, 네가 이걸 해냈다고?"


내 인생 버킷리스트 하나를 지운 순간이었다.



05. 글을 멈춘 적은 없었다


첫 책을 낸 후, 한동안 공백이 있었다.

작가라는 이름으로 살아가고 싶었지만,

정체성을 찾느라 한참을 헤맸다.


그렇다고 글을 멈춘 건 아니었다.

나는 늘 무언가를 쓰고 있었다.

신앙 묵상, 큐티 형식의 글,

싱글맘으로서의 일기,

교사로서의 티칭 스킬과 영어 교육적 통찰까지.


하지만 그 모든 글을 모아

'나만의 목소리'로 여과해내지 못한다는

갈등이 있었다.


그러다 어느 날, 불현듯 알았다.


"내 삶의 밑바닥에서 길어 올린 글,

내 눈물이 진주가 된 이야기들,

그것만이 진짜 내 글이다."


그때 비로소 나는 나의 길을 알았다.

상처받은 치유자로서의 에세이스트.

내 삶의 고백을 드러내며,

누군가의 치유가 되는 작가.


그 깨달음이 오니 방향이 달라졌다.

더 진솔해졌고, 더 용감해졌고, 더 깊어졌다.

그리고 그런 글들은

이상하리만큼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내가 큰 동력을 얻었다.

매일 글이 쓰고 싶고

글 제목이 생각이 나고

또 놀라운 영감으로 가득한 시선으로

사물을 통찰하게 될 때

나는 감사하게 된다.


내 모든 고난이 실은

변장된 축복이었음에 대하여.

그리고 아직 내게 오늘이란

기회가 있음에 대하여.

그래서 이렇게 글을

쓸 수 있다는 것에 대하여.




06. 긴 꿈길 위에서 나도 자라나고


그 깨달음 이후,

내 꿈은 더 커져가고 있다.


나는 강연 무대에 서겠다고,

재단의 이사가 되어

사회적 환원을 이루겠다고,

내 글이 단순한 기록을 넘어

누군가의 생명을 살리는

메시지가 되기를 소망한다.


이런 꿈을 꿀 수 있었던 건

어쩌면 이혼 덕분이었고,

어쩌면 싱글맘으로

하루하루를 버텨낸 시간들 덕분이다.

그리고 어쩌면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

자체가 주는 선물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나이 듦에 감사하다.

마흔, 쉰, 그 이후의 나이는 내게

더 깊이감을 더해 준다.

더 많은 꿈을 꾸는 능력을 주고 있어

내 입술에 포물선을 그리게 된다.


젊을 때의 꿈이

누구를 흉내 내는 막연한 동경이었다면,

지금의 꿈은 제법 구체적인

포부에 가깝다.


젊을 때의 꿈이

나만을 위한 것이었다면,

지금의 꿈은 누군가와 함께 나누는

희망과 설렘이다.



07. 무너진 자리에서 꿈은 더욱 깊었다


돌이켜보니,

꿈은 미루어 두는

예약 쿠폰 같은 게 아니었다.

꿈은 내가 살아 있다는

가장 분명한 증거이자

내 아이들에게

가장 생생히 현실을 보여주는

살아있는 유산이었다.



무너졌다고 여겼던 자리는,

오히려 꿈이 피어나는 자리였다.

그리고 마흔은 내게,

다시 꿈꾸는 법을 배우고

더 크고 담대하게

나아가는 멋진 시즌의 시작이 되었다.


나는 이제 안다.

꿈은 현실을 무너뜨리는 게 아니라,

오히려 현실을 버티게 하는 힘이라는 것을.

꿈은 완벽한 조건에서 피어나는 게 아니라


무너진 바로 그 자리에서

더 강하게 피어난다는 것을.



무너진 자리에서 피어난 꿈이 나를 살게 했고
삼 남매를 살게 했고 또 다른 꿈을 그 위에 그려내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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