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2 아이들이 그려준 10년 나-냉장고 방송 타는 날

E. 싱글맘의 꿈 보관함 시리즈 ㅡ상처 위에 다시 심은 꿈의 씨앗들

by 다루오

냉장고가 방송에 나가는 날


아이들과 함께 냉장고를 부탁해를 보던

어느 날이었다.

화면 속 셰프들이 "와!" 하며

감탄하는 모습을 보던 아이들이

갑자기 말했다.


"엄마, 우리 집 냉장고도

저기 나갔으면 좋겠다!"


나는 너무 깜짝 놀라

펄쩍 뛰며 대답한다.


"말도 안 돼!

우리 냉장고 열면 셰프들이 기절할 거야.

재작년 명절에 얻어온

떡국떡이 아직도 냉동실에 있는 데다

유통기한 확인 안 되는

통조림의 전쟁터다야

그리고 엄마는

저기에 나갈 만큼 유명하지도 않고."


그러자 두 딸이 동시에 항의했다.


"엄마가 유튜버도 하고,

책도 쓴 작가인데 왜 안 돼?

구독자 몇 명인데!"


아, 구독자...

겨우 나를 유튜브 한다고

말하게 해 주시는

천오백여 명의 구독자님들...

(감사합니다 ㅠㅠ)


그 순간, 빵 터지고 말았다.


내가 스스로를

'냉장고도 정리 못 하는

무명 싱글맘'이라고 생각하는데,

아이들은 나를

'방송 출연 가능한 유명 작가'로 보고 있다.


둘째는 한술 더 떠 말했다.


"그럼 내가 꼭 유명해져서

우리 냉장고를 방송에 내보낼 거야!

그때 셰프들이

'이게 뭐야?' 하면

'우리 엄마표 창작 요리'라고 해야지!"


나는 웃음을 참으며 받아쳤다.


"좋아, 그땐 꼭 네 냉장고를 들고나가.

엄마 냉장고는 프로그램을 바꿔야 할 같아.

냉부가 아니라 그알로다가...-_-;"




내가 놓친 시선의 차이


짧은 대화였지만, 며칠간 잔잔한 여운을 남기는 에피소드였다.


나는 늘 아이들을 위해

미래를 설계한다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아이들도 나를 매일 관찰하며

자신들만의 인생 시나리오를 짜고 있었다.


그것도 내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더 거대하고 화려한 버전으로.



01. 다엘이의 창작 DNA


큰딸 다엘이는

내가 새벽마다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영상을 편집하는 모습을 지켜보다가

어느 날 자연스럽게

"나도 해볼래"라고 말했다.


첫 시작은 초등학교를 막 입학해서였나

코로나 직후부터였던 것 같은데

블로나 캔바 같은 툴을 어깨너머로 배우더니,


이제는 자기만의 이야기를 구상해

영상으로 만들어

내가 만들어준 유튜브 부계정에

업로드까지 한다.


구독자도 제법 있는

혼자 댓글을 달고 키득거리며

나보고 왜 구독 안 하냐

새 영상 왜 안보냐 닦달일 때가 많은데

어디서 이런 아이디어들이 나오나

신기할 때가 많다.


업로드 중지된 지

1년이 넘은 내 계정과 비교하면

너무나 열띤 업로드 중인 딸을 보자니

격세지감이란 생각이.


엄마를 가볍게 추월하는 제2세대 루키 등장이다.


내가 내 꿈길에서 시작한 시작한 일이

이제는 첫째 아이 안에서

또 다른 꿈으로 피어나고 있는 모습으로

우리의 10년 후를 더욱 기대하게 만든다.



02. 루비의 따뜻한 손길


둘째 루비는

내가 몇 년 동안 힘들어도

직접 저녁 밥상을 차리던 모습을 기억한다.


그 영향 때문일까,

요리에 관심이 많을 뿐 아니라

맛을 표현하는 어휘가 놀랍도록 풍부하다.


"엄마, 이 김치찌개는 감칠맛이 좀 부족한 것 같아.

마지막에 멸치액젓 조금만 더 넣어봐."


어? 이 아이가 나보다 요리를

더 잘하는 건 아닐까?

심지어 자신을 "맛잘알"로 소개하며

절대 미각으로 맛을 정확히

짚어내는 감각이 있다.


게다가 우리 루비는

손재주가 좋고 마음도 좋아

무언가를 만들면 늘 선물하고 싶어 한다.


토털클레이, 요리교실, 도자기교실을 통해 배운

여러 가지 실력을 바탕으로 오물조물

많은 것들을 만드는데

놀랍도록 그것들을

'나누고 싶어' 하는 마음을 볼 때가 있다.


아직은 좋은 건

자기 혼자 가지고 싶을 나이인데..

문득,

내가 만든 걸 나누던 저녁식사에서

한없이 행복해하던 루비의 얼굴이 떠오른다.


나의 한결같았던

퇴근 후 힘듦을 이겨낸 저녁상을 차리던 노력이

아이 안에서는 '셰프의 꿈, 사업가의 꿈'으로

진화하고 있다.


뭐든 만들고 나눌 거라며,

자기는 대학은 관심 없고 (ㅠㅠ초2가 벌써 ㅠㅠ)

사업할 거라고 큰소리치는 루비를 볼 때

나는 그 마음이 든든하다


사업의 동기가 '돈 벌려고'가 아니라

'나누려고' 또 '불편함을 해소해 주려고'라는

마음 씀씀이가 큰 감동이기 때문이다.




03. 레오의 이중 재능


막내 레오는 요즘

소방관이 되고 싶다고 말한다.

"엄마, 나는 불 끄는 소방관이 될 거야!

그런데 영어도 잘해서

외국 소방관들이랑도 친구가 될 거야!"


어? 언제부터 영어까지 계획에 포함된 거지?


그런데 정말로 언어에 특별한 감각을 보인다.


내가 무심코 흘린 영어 표현을 기억했다가

적절한 상황에서 써먹는가 하면,

요즘 유행하는 이탈리안 브레인롯인가 하는

캐릭터들의 이름을 정말 정확하게 흉내 낸다.


"트알랄레로 트일랄라.."

"아니 엄마 트랄랄라로 라고.."

결국 6세에게 캐릭터 이름을 교정당하는 나는

한바탕 웃음이 터진다.


위로 누나들을 키우며 알게 되었기에,

막내가 이렇게 언어적 감각을 보이는 것이

얼마나 특별한 일인지 나는 안다.


아들아, 너 혹시 이중 전공 준비하는 거냐?




04. 꿈의 대물림


엄마의 좌절은 아이들의 좌절이 되고,

엄마의 도전은 아이들의 도전이 된다.


아이들은 내가 한 걸음씩 내딛는 모습을 보며

아이들은 자신만의 미래를 그리는 법을 배워 나간다.

손에 닿지 않는 미래를

어떻게 손아귀에 넣을지에 대해

엄마의 등을 보고 배운다.


10년 후,


다엘이는 영상과 예술 감각으로

케데헌을 능가하는

멋진 창작자가 되어 있지 않을까?


루비는 손재주와 대인관계 능력으로

사람들과 협업하며 다양한 사업아이디어를 구상하며

활짝 웃고 있을까?


레오는 소방관으로 뛰어나면서,

유머와 언어 감각으로 사람들을 기쁘게 하는

그런 독특한 인재가 돼있을까?


그리고 나는, 더 이상

'나만의 꿈'이 아닌,

'아이들과 이뤄가는 꿈'을

두 눈으로 확인하고 있지 않을까?



05. 완벽하지 않아도 빛나는 우리


10년이 지난 그때에도

냉장고는 여전히 어지럽혀져 있을지도 모르지만,

그 안에서 꿈꾸는 우리 가족의 대화만큼은

어느 예능보다도 익살스러울 것임을

나는 잘 알고 있다.


내가 그린 대로,

혹은 그 이상으로

무언가 또 꿈을 향해 열심히

이리 구르고 저리 구르며 똘똘 뭉쳐가고 있을

우리 넷을 생각하자니

입가에 포물선이 절로 그려진다.


아니, 냉장고 정리도 제대로 못 하는 내가

어떻게 완벽한 미래를 약속하겠는가 말이다.


다만 우리가 서로를 응원하고,

서로의 꿈에 날개를 달아주는

그런 사이가 되기를 소망해 본다.


함께 웃으면서 성장해 나가는 그런 시간들이

차곡차곡 쌓인 것이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06. 함께 걷는 꿈의 길


내가 가는 꿈의 길은

나 혼자 걷는 외로운 길이 아니다.


특별히 싱글맘의 그 길은

홀로 길이 나지 않은 오솔길을 걷는 듯한

외로움과 고독함이 늘 도사리고 있는

암흑과 같은 느낌임을 나는 너무나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내가 꿈을 잃지 않는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내 꿈의 부스러기 하나하나가

아이들의 마음속에 떨어져 또 다른 꿈의 씨앗이 되고,

그 씨앗들이 자라나 아이들만의 꿈 정원을 만들어가는

그런 신비로운 길이 열린다.


나는 그저 꿈을 꾸었을 뿐인데,

아이들은 그 모습을 보며

'꿈꾸는 법'을 배워가고 있었다.


내가 포기하지 않는 모습을 보며

'끝까지 해내는 법'을 익혀가고 있었다.


꿈은 혼자 꾸는 게 아니라

함께 키워나가는 것이라는 걸,

아이들이 나에게 가르쳐주었다.



그리고 진짜 꿈은
나를 성장시킬 뿐 아니라
내 주변 사람들까지 함께 자라게 하는
마법 같은 힘이 있다는 것도.





keyword
작가의 이전글E1무너진 자리에서 피어난 꿈ㅡ고난은 위장된 축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