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카바의 계절이 남긴 요절한 쌍둥이 언니의 추억 이야기
컨버스에 얽힌 추억
컨버스 하이탑은 내가 학창 시절에
정말 싫어하던 신발이다.
그땐 밑창도 딱딱했고
집안에서 키가 제일 작던 나에게
하이탑 스타일은
다리가 너무 짧아 보이게 하는
원흉 중 원흉.
아무튼 신고 벗기도 너무 힘든
뭐 촌스런 신발 중 하나란 생각에
왜들 저렇게 물고 빨고
좋아라 하나 이해가 안 되던
스타일 중 하나였다.
내 키가 163인 반면에
장신의 키를 자랑하는
우리 외가의 키 유전자를 물려받은
우리 쌍둥이 언니는
171인지 172인지까지 키가 커서
특히 발목에서 무릎까지의 길이가 긴
동양인으로서는 보기 힘든 체형을 지닌
2000년대 초반을 사는
고등학생 여성이었는데
아 그렇게 저 컨버스 하이탑을 사서
끈을 하고 교복치마를 나풀거리며
등교를 하는 게
그렇게
꼴 보기 싫었던 기억이 있다.
(우리 학교는 검정 구두만 신어야 했던
교칙이 있기도 했지만
어차피 그게 아니었다 하더라도
난 컨버스 하이탑은
발목부터 무릎까지의 길이가
받쳐주지 않아서
절대로 신지 않았을 신발이다
세월이 흘러 우리 언니는
요절하기 직전인
스물다섯 1월 그 겨울에도
그 컨버스 하이탑 검은색을 신겠다고
새로 산 신발을 박스에 넣어둔 채
심정지로 세상을 등지고
자기 발볼에 맞추어
신발끈만 예쁘게 매어놓은
그 신발만 남겨두어
저 멀리 하늘로 가버렸다.
마지막 유품 정리를 하러 가서
그 신발 상자를 끌어안고 얼마나 울었는지
또
그 새 신발을 불로 태우며
얼마나 오열을 했는지
내 심장이 기억을 한다
내 다시는 그 신발은
쳐다보지도 않겠다 다짐했던
그 가슴 시린 나 역시
스물 다섯 먹던 그해 겨울을
어찌 잊을까.
그랬던 내가 컨버스 하이탑을
다시 꺼내 신게 된 게
교편을 다시 잡은 2011년부터였다.
Oldies but goodies
다시 돌아온 교정에
나보다 10살 어린아이들이 신고 다니는
저 가벼운 신발이 주는 해석이
더 이상
눈물이 아니라
사제지간이 주는 친밀감
학창 시절이 주는
산뜻한 기억과 설렘
그리고 쌍둥이 언니와 나만이 가지던
둘만의 비밀스러운 추억의 회자
그런 재해석이
더해지리라고
그 누가 상상할 수나 있었을까.
벌써 몇 켤레를, 몇 해째
나는 색깔을 바꾸어가며
신는지 모르겠다
이제 밑바닥도 푹신해지고
신발끈도 고무끈이 나와서
신고 벗는 데도
무리가 없는 하이탑
이제 치마 입을 일이 없어
그냥 발목부터
무릎까지의 기럭지가 짧은 나는
바지 입고 신으면 그만일 하이탑을
다엘이가 탐내는 걸 보며
다엘이에게 한 켤레 사서
신기고 있다
컨버스,
너 끝까지 흥해라.
명품이어서가 아니라
그냥 편안하게 오래 기억에 남을
우리들의 추억으로서 말이다.
코카콜라처럼 맥도날드처럼
새우깡처럼
안성탕면 혹은 프로스펙스처럼 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