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화. 첫 지하철, 첫 실수, 그리고 노천탕의 낮

아이들은 이미 여행을 잘하고 있었다

by 다루오

싱글맘이 벌인 아이 셋과 오사카 여행기

4화. 첫 지하철, 첫 실수, 그리고 노천탕의 낮

아이들은 이미 여행을 잘하고 있었다



아침 9시. 늦잠이었다.

하지만 여행 첫날에는 인간도, 엄마도, 조금 느슨해져도 된다.

나는 그렇게 합리화했다.

아이들과 함께 패밀리마트로 내려갔다.

어젯밤 혼자 왔을 때는

"와, 일본 편의점…" 하며 감탄했는데,

아이들과 오니 상황이 달랐다.


"엄마, 이거!" 슈크림빵.

"엄마, 이것도!" 멜론 우유.


일본은 멜론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나라였다.


멜론 소프트드링크, 멜론 빵,

멜론 아이스크림.

초록색만 보면 아이들이 흥분했다.

나는 '설탕이 또 들어가겠군'

생각하면서도 그냥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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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키이치고, 멜론은 아니었지만 참.. 이것 여러번 사먹음 ㅠ

여행에서는 혈당이 평화를 만든다.




온천에 가기로 했다.

레오는 물이 있는 곳이면 다 워터파크다.

루비는

"일본은 온천 문화가 유명하잖아."라며

아는 체를 했고,

다엘은 뭔가

다른 걸 원하긴 했지만

뭐 어쨌든

다수결은 민주적이면서도 잔인하다.


클룩, KKday, 일본 여행 카페 추천을 종합해

소라니와로 결정.


때로

전직 승무원은 데이터를 믿는다.

감이 아니라 교차검증.

역은 바로 옆이었다.


"구글 지도면 다 되지."



이 말은 대개

개찰구 앞에서 무너진다.

QR 패스를 찍었다.

나는 통과.

아이들 차례.


에러.


한 번 잘못 찍히자

계속 에러. 뒤에 줄이 생겼다.


아이들이 당황했다.


"왜 안 돼?"


나도 당황했다.


그리고 나는 역시 엄마였다.

차분하지 못한 엄마.


"제대로 좀 해봐."


목소리가 날카로워졌다.

역무원과

통화 연결이 되었지만 영어는 시원치 못했다.

허나 일은 해결이 되었고

득의만면 할수 있어

그저 다행스러웠다.


허허..

지하철을 두 번 갈아타는 동안 내 어깨는

돌처럼 굳어 있었다.


뭐 늘 그렇듯

아이들은 금세 회복했다.


실수는 어른에게 오래 남고,

아이에게는 짧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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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라니와에서 점심을 먹다 사고가 터졌다.

다다미방. 야끼소바. 가츠동. 그리고 콜라.

레오의 손이 스쳤고, 콜라가 와르르 쏟아졌다.


정적.


나는 반사적으로 말했다. "레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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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톤은 높았다.

그런데 직원들이 달려왔다. 웃으면서. 괜찮다면서. 정말 빛의 속도로.


야사시이(やさしい).


그 상냥함이 공기처럼 자연스러웠다.


나는 아이를 혼낼 준비가 되어 있었고,

그들은 상황을 정리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누가 더 성숙했는지 묻지 않아도 됐다.


나는 괜히 더 미안해졌고,

괜히 더 작아졌다.

콜라는 바닥에 쏟아졌는데 긴장은

내 안에 쏟아져 있었다는 걸, 그

제야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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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상으로 자리를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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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가라 둘다 ㅎㅎ

유카타를 입은 아이들을 보는데

순간 숨이 멎었다.

얘네가 이렇게 잘 어울릴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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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 콜라 깻박친거 내가 다 용서한다 ㅎㅎ


다엘은 제법 소녀 티가 났다.


옥상 노천탕 수증기 속에서,


머리를 묶은 모습이 낯설 만큼 예뻤다.

'얘가 언제 이렇게 컸지.'

일상에서는 늘 급했다. 숙제 챙기고,


씻기고, 재우고, 다음 날 준비하고.


이 아이를 이렇게 길게 바라본 적이 있었나.



루비는 여전히 언니를 찍고, 동생을 챙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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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랑 동생만 챙기던 루비 ㅜㅜ

자기 사진은 없어도 괜찮은 둘째.

나는 그게 그냥 성격인 줄 알았다.


그날은 그게 배려라는 걸 알았다.




그리고 레오.

한국에서는 늘 애매했다. 만 5세. 혼탕 불가.

그래서 같이 목욕탕 가는 일이

점점 어려워졌는데, 여기서는 가능했다.

우리는 함께 들어갔다.

뜨끈한 물에 푹 담그니,

며칠간의 긴장과 몇 년간의 피로가 같이 풀렸다.

레오가 말했다.


"엄마, 물이 포근해."

누나들이 말했다.


"엄마, 여기선 레오 때문에 못 하는 게 없네."

그 말이 이상하게 마음을 건드렸다.

나는 늘

'레오 때문에 안 되는 것'을

계산하며 살았는데.

여기서는 안 되는 게 없었다.



옥상 난간에 기대어 아이들을 봤다.

나는 늘 준비했고,

계산했고, 통제하려 했다.

해외니까 더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이들은 이미 잘 놀고 있었다.

잘 웃고 있었고, 잘 회복하고 있었다.

콜라를 쏟아도 괜찮았고,

개찰구에서 막혀도 지나갔고,

낯선 물에 들어가도 금방 적응했다.


어쩌면 제일 서툴렀던 사람은 나였다.

나는 아이들을 데리고 온 엄마라고 생각했는데,

그날 밤 나는 그냥 같이

처음인 사람 하나였다.


완벽하지 않았고,

여전히 예민했고, 가끔 소리도 질렀지만.

그래도 우리는 일본의

노천탕에 같이 앉아 있었다.


나는 그 순간, 통제를 조금 내려놨다.


아이들이 망가지지 않도록 붙들고 있던 손을, 조금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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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정도면 첫 해외여행치고는 상당히 선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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