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의 시간과 엄마의 시간 사이,
자정의 평행선

by 한미숙 hanaya


"일어나지 않은 일로 미리 괴로워하지 말라. 그것은 실재하지 않는 것이기 때문이다.“

세네카


그걸 안다. 머리로는 안다.

그러나 딸의 늦은 귀가에는 온갖 걱정이 밀려온다.

“친구 만나서 재미있게 놀아. 그런데 너무 늦지 않았으면 좋겠어.”

“알았어. 그런데 엄마만 그래. 다른 친구 엄마들은 안 그러는데.”
“널 못 믿는 게 아니라 요즘 세상이 험악해서 그런 것이지.”
“알았어.”


오랜만에 시간의 여유가 생긴 아이가 친구를 만나러 나갔다.

작년에 아이에게는 크리스마스도 연휴도 없었다.

친구들을 좋아하는 아이가 긴 시간 친구도 제대로 만나지 못했다.

며칠 뒤에 다시 또 다른 준비를 해야 하는 아이이기에 마음을 이해한다.


그러나 아이의 늦은 귀가에 대해서는 걱정이 많다.

딸을 둔 대부분의 엄마는 그럴 것이다.

뉴스에서 연일 들려오는 이상한 일들이 가끔 머릿속에 떠오르면 잠도 잘 오지 않는다.

게다가 아이는 지금 나와 같이 있지 않다.

가까이 있으면 무슨 일이 있어도 바로 달려 나갈 수 있다.

하지만 지금은 멀리 있기에 걱정이 더 늘어날 수밖에 없다.

아이는 성인이 된 자기를 일일이 통제한다는 생각에 싫어한다.

아이에게 말하면서 오래전 내가 들었던 말이 떠오른다.

대학도 졸업하고 직장 생활을 하는 나에게 엄마는 늘 잔소리했다.

일의 특성상 퇴근 시간은 거의 10시였다.

일을 마치고 동료들과 술을 마시고 들어오면 12시가 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엄마는 내가 들어올 때까지 잠을 자지 않고 기도를 하고 계셨다.


“지금이 몇 시인데 조금 더 일찍 들어와라.”


그때는 그 말이 그렇게 듣기 싫었다.

며칠 계속해서 늦으면 혼도 났다. 그런 상황이 싫었다.

서른 살이 다 된 딸에게 일일이 퇴근 시간까지 챙기는 것 같았다.

알아서 하는 나를 감시한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이제야 엄마의 마음을 알 것 같다.

엄마가 걱정한 것은 나의 안전이었다.

집에 내가 무사히 귀가해야 마음 편히 잠을 잘 수 있었던 것이다.

비록 술이 약간 취했더라도 집 안에 발을 들여야 마음이 놓였던 것이다.

그 시절에는 지금처럼 이상한 일들이 많지 않았는데도 엄마는 불안해서 잠을 이루지 못했다.


모든 부모의 마음은 마찬가지일 것이다.

우리가 불안한 것은 내 자녀를 믿지 못해서가 아니다.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다.

이상한 뉴스들이 마음을 괴롭히고 요동치게 한다.

일어나지도 않은 일이 바로 코앞에 있는 것 같은 불안을 키운다.

사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임에도 불구하고.


지금, 이 순간이 소중하지만, 지금보다는 일어나지 않은 일에 대한 두려움에 우리는 떨며 시간을 보낸다.

실재하지 않은 것에 대해 우리의 아까운 시간을 버릴 필요는 없다는 것을 머리로는 알고 있지만,

모든 일이 내 자녀에게만큼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일어나지 않은 일로 괴로워하지 말라.”는 세네카의 말을 다시 한번 되뇐다.

완벽하게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딸이 늦게 들어오면 여전히 불안할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알고는 있어야겠다.

지금, 이 순간 딸은 오랜만에 친구들과 웃으며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것을.

불안을 완전히 없앨 수는 없지만, 그것에 지배당하지 않는 법을 엄마도 배우는 중이니까.




#철학에세이 #스토아철학 #지금이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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