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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친 날의 안식처

by 한미숙 hanaya


지친 하루를 마치고 집에 돌아왔다. 오늘은 유난히 힘든 날이었다. 끊임없이 이야기하는 초등학교 3학년 아이들을 가르치느라 목소리가 쉬어버렸고, 온갖 방법을 동원해도 그들의 주의를 집중시키기 어려웠다. 교실이 떠내려갈 정도의 큰 목소리를 내보기도 하고, 때로는 소근대는 목소리로 호기심을 자극해보기도 했지만, 아이들은 쉼 없이 자신들의 이야기를 이어갔다. 초등학교 1학년보다도 더 어려웠던 3학년 강의를 마치고 집에 도착한 나는 거의 탈진 상태로 거실의 소파에 몸을 맡겼다. 그 순간 느껴지는 안락함이란. 의자가 내 모든 피로를 품어주는 듯했다.


의자는 우리에게 다양한 용도로 존재한다. 책상 앞에 앉아 공부하거나, 글을 쓰거나, 때로는 그림을 그리기도 하고, 가끔은 커피 한 잔을 마시며 휴식을 취하는 공간이 되기도 한다. 거실 한 켠에 자리한 소파는 단순한 의자를 넘어 우리의 피로를 받아주는 포근한 안식처가 된다. 하루의 무게를 내려놓을 때, 그 부드러운 표면에 몸을 맡기면 온몸의 긴장이 풀리는 것을 느낀다. 때로는 가족들과 함께 TV를 보며 웃음을 나누는 자리가 되고, 때로는 혼자만의 생각에 잠길 수 있는 고요한 섬이 되기도 한다.


의자는 참 신기하다. 누가, 언제, 어떤 생각으로 처음 만들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인류의 역사와 함께해온 이 단순한 물건은 우리 삶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다. 우리는 태어나서 처음 앉는 순간부터 생의 마지막까지 의자와 함께한다.


의자는 무거운 내 몸을 묵묵히 받쳐주면서도 한 번도 비명을 지르지 않는다. 우리가 앉을 때마다 그것은 자신의 한계 안에서 최대한의 안정감을 제공하기 위해 노력한다. 나무로 만들어졌든, 철재로 만들어졌든, 부드러운 천으로 덮여있든, 그것은 자신의 본분을 묵묵히 수행한다.


우리에게 휴식과 쉼을 내어주는 의자는 때때로 위로도 된다. 오늘처럼 지쳐 기운이 빠진 날, 하루종일 서서 일해 다리가 아플 때, 의자는 '이제 쉬어도 좋다'고 말하는 듯하다. 가끔은 그냥 등을 기대고 싶을 때, 의자는 조건 없이 자신의 등받이를 내어준다. 복잡한 생각으로 머리가 무거울 때도, 의자는 묵묵히 우리를 받아 들인다.

하루의 일과를 마치고 집에 돌아와 의자에 몸을 맡기는 순간, 온몸에 쌓인 피로가 스르르 녹아내리는 느낌이다. 그 순간만큼은 세상의 모든 고민과 걱정이 잠시 멈춘다. 의자는 그렇게 우리의 삶에서 작지만 중요한 쉼표가 되어 준다.


모든 사람을 차별 없이 받아주는 의자는 키가 크든 작든, 몸이 무겁든 가볍든, 나이가 많든 적든, 모두에게 동일한 휴식을 제공한다. 그것은 사용자의 외모나 지위, 부나 명예를 묻지 않는다. 그저 필요한 사람에게 자신을 내어줄 뿐이다.


나도 누군가가 힘들고 지쳤을 때, 기댈 수 있는 그런 존재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문득 든다. 나의 모든 것을 내어주면서도 대가를 바라지 않는, 의자와 같은 사람이 될 수 있을까? 타인의 무게를 받아주고, 그들이 잠시 쉬어갈 수 있는 안식처가 되어주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우리 주변에는 그런 사람들이 있다. 부모님, 오랜 친구, 때로는 우연히 만난 낯선 이까지도 누군가에게는 잠시 쉬어갈 수 있는 의자 같은 존재가 되어줄 때도 있다. 누군가의 무게를 받아주고, 쉼을 제공하고, 자신을 내어주는 존재인 의자, 어쩌면 우리가 살아가면서 지향해야 할 모습일지도 모른다.


초등학생들을 가르치고 지친 오늘도 나는 의자에 앉아 글을 쓴다. 그리고 생각한다. 의자처럼 묵묵히, 조용히, 그러나 확실하게 누군가를 지지해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 아이들의 끝없는 에너지에 지친 나를 의자가 품어주듯이, 나도 누군가에게 그런 안식과 평화를 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겠다. 마치 오늘 나를 받아준 이 의자처럼.



#사물에세이 #의자 #일상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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