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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산북스 Dec 27. 2017

캘리포니아는섬이다?

<지도 위의 인문학> 에피소드 01.

‘비치 보이스’ 이전에도, 

할리우드 이전에도, 

심지어 골드러시 이전에도, 

캘리포니아는 미국의 나머지 지역과는 확연히 다른 장소였다. 

그곳은 사실 섬이었다.


요즘 우리는 캘리포니아가 오리건, 애리조나, 네바다 주에 단단히 붙은 땅이란 걸 잘 안다. 지도에서 봤으니까. 샌디에이고 남부도 결국 멕시코의 바하칼리포르니아 주로 편입되었지만 본토에 단단히 붙어 있기는 마찬가지다. 


그러나 1622년에는 상당히 황당한 일이 벌어졌다. 81년 동안 공식적으로 거대한 땅덩어리에 붙어 있었던 캘리포니아가 그 순간부터 섬처럼 자유롭게 떠다니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것은 정치적 의지에 따른 급진적 조치가 아니었고, (어느 조각가의 손이 미끄러졌다거나 하는) 한 사람의 실수도 아니었으며, 그저 지도 제작자들의 오판이 지속적으로 이어진 사건이었다. 


그런데 더욱 이상한 점은 캘리포니아를 한 바퀴 완전히 돌아보려고 시도했던 항해사들이(틀림없이 너무나 당황스러워하면서) 족족 실패한 뒤에도 오류가 오랫동안 지도에 남아 있었다는 사실이다.


‘캘리포니아(California)’라는 이름이 처음 지도에 나타난 것은 1541년이었다. 에르난도 데 알라르콘의 항해에서 키를 잡았던 도밍고 델 카스티요가 멕시코의 일부로 지도에 그려 넣었는데, 이때는 반도로 제대로 그려져 있었고 이름도 적혀 있었다. 


캘리포니아가 인쇄된 지도에 처음 등장한 것은 1562년으로, 스페인 키잡이 겸 도구 제작자 디에고 구티에레스(Diego Gutierrez)가 역시 반도의 끄트머리에 그 이름을 적어두었다. 복작복작 아름답게 신대륙을 묘사한 구티에레스의 지도에서, 캘리포니아는 몹시 사소한 세부 항목에 지나지 않았다. 


크기가 107×104센티미터인 구티에레스의 지도는 당시 신대륙을 묘사한 지도들 중에서 제일 컸는데, 어쩌면 구티에레스가 죽고 나서 히에로니무스 더콕이라는 화가가 제작했을 수도 있다. 더콕은 상상력 넘치는 설정을 대단히 좋아했던 화가였음에 분명하다. 


사진 출처 : unsplash.com


지도 속 바다에는 거대한 배들과 범례들이 붐비고, 포세이돈이 바다에서도 달릴 수 있는 전차를 몰고 있으며, 고릴라를 닮은 커다란 피조물이 물고기로 식사를 하면서 파도를 가른다. 브라질에서는 끔찍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원주민들이 인육을 잘라 나무에 매달아 숙성시켰다가 구워 먹는 장면이 그려져 있다.


캘리포니아는 이후 60년 동안 본토에 붙은 모습으로 그려졌으나,  어느 순간 태평양으로 떨어져 나와 이후 200년 넘게 지도상의 섬으로 행세했다.


우리가 알기로 캘리포니아가 처음 섬으로 등장한 것은 1622년이었고, 스페인에서 나온 『이스토리아 헤네랄』이라는 책의 제목 페이지에 포함된 지도에서였다. 2년 뒤, 아브라함 호스(Abraham Goos)라는 네덜란드인이 그린 지도에서는 캘리포니아가 ‘페르메이오 해’와 ‘수르 해’에 포위된 채 바다에 떠 있었다. 


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섬으로서의 캘리포니아를 가장 널리 알린 것은 1625년에 런던에서 ‘북부 아메리카’라는 제목으로 출간된 지도였다. 그 지도는 수학자 헨리 브리그스(Henry Briggs)가 북서 항로 수색에 관해 쓴 글에 딸린 것이었는데, 브리그스는 북극을 향해 널따랗게 펼쳐진 미답의 빈 공간에 자기 지도의 멋진 요소를 선전하는 문구를 써넣었다. 


‘뉴펀들랜드, 뉴잉글랜드, 버지니아, 플로리다, 뉴스페인…… 저 서쪽으로는 널따랗고 풍요로운 캘리포니아까지 포함했음.’ 지도에서 아메리카 대륙 동해안을 보면, 플리머스와 케이프코드는 매사추세츠 주에 표시되어 있지만 아직 보스턴은 없다(맨해튼도 없다. 인쇄된 지도에서 맨해튼이 처음 언급된 것은 5년 뒤 요아너스 더라트가 제작한 지도에서였고, 당시 이름은 ‘만하터스’였다).


1650년 네덜란드 지도에서 바다에 행복하게 떠 있는 캘리포니아 섬


오해는 수십 년 동안 이어졌다. 그것은 오늘날의 위키피디아 오류에 견줄 만한 17세기판 사건이었다. 위키피디아에 오류가 있을 경우, 웬 똑똑한 사용자가 용케 눈치채고 과감하게 수정할 때까지 무수히 많은 아이가 학교 숙제에서 그 오류를 고스란히 반복하지 않는가. 


1995년, 글렌 맥러플린과 낸시 H. 메이요는 캘리포니아지도협회의 의뢰를 받아 골든 스테이트(Golden State, 캘리포니아 주의 별명)가 둥둥 뜬 섬으로 그려진 지도를 모두 모아보았는데, 총 249점이었다(세계 지도는 포함하지 않았다). 그 지도들의 제목은 다른 가능성이라곤 없다는 듯 하나같이 자신만만했다. 


어떤 지도는 ‘새롭고 가장 정확한 아메리카 지도’라고 주장했고, 어떤 지도는 ‘가장 최신에 이루어진 가장 훌륭한 관찰에 따라 그린 아메리카’라고 다짐했다. 특히 프랑스 역사학자 니콜라 상송(Nicolas Sanson)은 1650년에서 1657년까지 캘리포니아를 섬으로 묘사한 지도를 여러 점 출간했는데, 그 지도들은 네덜란드어와 독일어로 번역되어 이후 50년 동안 브리그스의 지도 대신에 가장 영향력 있는 미신 제조자로 활약했다. 그러나 상송의 지도는 더 새롭고 진실한 발견들도 선전했다. 가령 오대호의 다섯 호수를 모두 표시한 것은 상송의 지도가 처음이었다.


사진 출처 : 셔터스톡


캘리포니아를 본토에 붙은 모습으로 그린 새 지도들이 나오고서도(제일 중요한 것은 예수회 수도사 에우세비오 키노의 사적인 기록에 딸린 1706년 지도였다), 섬은 잊을 만하면 불쑥불쑥 나타났다. 결국 섬을 말살한 것은 스페인의 페르난도 7세가 1747년에 내린 칙령이었다. 칙령은 ‘캘리포니아는 섬이 아니다’라는 명료하기 그지없는 선언으로 북서 항로의 가능성을 전면 부인했다. 그러나 뉴스는 더디게 전달되었다. 캘리포니아는 1865년까지도 일본에서 만들어진 지도에서 섬으로 등장했다.


그런데 애초에 어쩌다가 그런 소동이 시작되었을까? 지도학적 진원지는 1602~1603년에 세바스티안 비스카이노와 함께 서해안을 항해하면서 일기를 썼던 카르멜회 수도사 안토니오 데 라 아센시온(Antonio de la Acensión)에게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는 그때의 여정을 20년 뒤에 지도로 그렸는데, 바로 그 그림에서 캘리포니아가 섬나라로 나와 있었다. 그 지도는 스페인으로 보내졌으나, 도중에 배가 네덜란드에 나포되는 바람에 암스테르담에서 여행을 마쳤다. 


1622년 런던의 헨리 브리그스는 바로 그 캘리포니아 지도를 보았다고 기록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홀란드 사람들이 확보한’ 지도를 베낀 브리그스의 지도는 동판에 인쇄되어 전 세계를 여행하기 시작했다.




글 및 사진 출처 : <지도 위의 인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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