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 위의 인문학> 에피소드 02.
1998년, 오스트레일리아의 부부 바버라 피즈와 앨런 피즈(Barbara and Allan Pease)는 『말을 듣지 않는 남자, 지도를 읽지 못하는 여자: 올라간 변기 시트를 넘어서』라는 웃기고 가벼운 책을 직접 펴냈다. 1년 만에 책은 변기 시트에 관한 부제를 떼어내는 대신 세계적으로 히트를 기록했고(1,200만 부), 오래지 않아 사람들이 버스 정류장이나 일터에서 곧잘 입에 올리는 부류의 책이 되었다.
남녀의 전쟁을 다룬 내용이라는 점에서 존 그레이의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와도 좀 비슷했지만, 그보다 한 발 더 나아가서 비합리적인 영역으로 들어선 점이 달랐다. 피즈 부부의 책은 왜 남자들이 한 번에 하나 이상의 일을 못 하는지, 왜 여자들이 병렬 주차를 못 하는지, ‘왜 남자들은 에로틱한 이미지를 좋아하는데 여자들은 감흥을 받지 않는지’를 설명했다.
지도에 관해서라면, 피즈 부부의 발견은 단호했다. 그들은 단언했다. ‘여자들의 공간 감각이 떨어지는 것은 진화 과정에서 남자 말고 다른 것은 쫓아다닐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다층식 주차장이 있는 아무 쇼핑몰이나 가보면, 여성 쇼핑객들이 자기 차를 찾지 못해서 울적한 표정으로 두리번거리는 광경을 목격할 수 있을 것이다.’ 피즈 부부는 사실 콜럼버스가 항해 장비를 계획하던 시절부터 존재했던 고정관념을 재확인한 것뿐이었다. 남자는 낯선 사람에게 길을 묻기를 꺼리고, 차라리 착착 접히는 방향 안내 도구와 더 친하게 지낸다는 고정관념.
그런데 그게 정말일까?
피즈 부부가 그 책의 성공을 발판 삼아 가내 수공업처럼 후속작을 찍어내기 시작한 때로부터 몇 년 전, 학자들도 나름대로 성별과 지도에 관련된 연구 결과를 발표하기 시작했다. 그런 연구는 사실 한 세기 전부터 이뤄지고 있었지만, 1970년대 말부터는 그런 연구가 이례적으로 시급하게 느껴졌다. 1978년에 캔자스 대학의 J. L. 해리스는 「공간 능력에서 나타나는 성별 차이: 환경적, 유전적, 신경학적 요인들」이라는 논문을 냈고, 1982년에 J. 매덕스라는 사람은 「지리학: 기존의 성별 이형적 인지 능력에서 가장 큰 영향을 받는 과학」이라는 논문을 미국지리학회에서 발표했다.
학자들의 접근법과 발견은 각양각색이었지만, 대부분의 심리학 연구는 정말로 공간 기술, 길 찾기, 지도와 같은 문제에서는 남자가 여자보다 낫다고 보는 것 같았다. 1990년대에 지리학 박사 과정에 진학한 사람 중 남자와 여자의 비가 4:1이었던 것도 어쩌면 그 때문이라고 했다. 1973년에 피터 스트링어라는 남자가 《지도학 저널》에 발표한 논문에서 자신이 지도의 배경 색깔을 연구할 때 실험 대상자로 여자만 모집했다고 말한 것 역시 어쩌면 그 때문이었다. 스트링어는 그 이유를 ‘여자가 남자보다 지도 읽기를 더 어려워하리라고 기대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억제되지 않은 선입견 외에도 이런 현상에 대한 아주 단순한 설명이 따로 있다면 어떨까? 남자와 여자가 모두 지도를 완벽하게 잘 읽지만, 읽는 방식이 다른 것뿐이라면? 여자가 지도를 읽기 어려워하는 것은 남자가 남자를 염두에 두고 디자인한 지도이기 때문이라면? 여자가 장점을 발휘할 수 있도록 지도를 다르게 디자인할 수도 있을까?
1999년, 캘리포니아 대학의 지리학, 심리학, 인류학 전문가들이 관련 프로젝트를 실시했다. 그들은 공간 능력과 지도 읽기를 다룬 기존 문헌을 샅샅이 검토했는데, 그 시점에 그런 논문은 100편이 넘었다. 그들은 샌타바버라 주민 79명을 대상으로 새 실험도 수행했다(19세에서 76세 사이의 여자 43명, 남자 36명이었다).
연구자들은 기존 연구 문헌에서 가장 강력하게 도출되었던 결론이(컴퓨터 화면에서 움직이는 두 이미지의 상대 속도를 평가하는 작업, 혹은 이차원과 삼차원 도형을 머릿속에서 회전시킨 모습을 알아맞히는 작업에서는 남자가 여자보다 낫다는 결론이었다) 현실에서는 그다지 실용적이지 않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새 실험에서는 피험자들이 직접 길을 걸으면서 방향을 찾는 작업과 직접 지도를 그리는 작업을 포함시켰고, 구두로 주어진 방향 안내에 반응하는 작업과 가상의 지도를 익히는 작업도 포함시켰다. 실험에 쓰인 가상의 지도 중 하나는 ‘어뮤즈먼트 랜드’라는 가상의 놀이공원 지도였다. 크기는 22×28센티미터였고, ‘비단뱀 구덩이’, ‘보라색 코끼리 조각상’, ‘아이스크림 판매대’ 같은 랜드마크들이 표시되어 있었다. 연구자들은 피험자에게 지도를 잠깐 보여준 뒤 도로 빼앗고, 가급적 많은 랜드마크를 떠올려 비슷하게 그려보라고 시켰다.
‘노스다코타 주 그랜드 포크스’라는 가상의 동네 지도에 대해서도 비슷한 실험을 했는데, 그것은 사실 샌타바버라 지도를 회전시킨 것뿐이었다. 피험자들은 연구자를 따라서 대학 캠퍼스를 이리저리 돌아다닌 다음에 자신이 걸었던 길을 지도에 표시하는 과제도 수행했다.
연구자들의 결론은 다음과 같았다. 어떤 작업에서는 남자가 더 나았지만(거리 짐작하기, 전통적인 방위 확인하기), 다른 작업에서는 여자가 더 나았다(랜드마크 알아차리기, 구두로 묘사하는 작업 몇 가지). 지도 사용에 관해서라면, 가상의 지도이든, 실제 지도이든, 여자들은 피즈 부부의 책 제목을 무색하게 만들었다. 여자들도 남자들 못지않게 지도를 잘 읽었다. 다만 약간 다른 방식으로 읽을 뿐이었다.
그리고 여자들도 그 사실을 알고 있다는 증거가 차츰 나타났다. 1977년 《실험심리학 저널》에 발표된 한 논문을 보면, 피험자 중 스스로 ‘방향 감각이 좋다’고 평가한 사람은 남자는 28명 중 20명이었고 여자는 17명 중 8명뿐이었다. 그러나 1999년에는 상황이 달라졌다. 적어도 샌타바버라에서는. 남녀 모두 자신의 능력이 향상되었다고 느끼는 것 같은 결과가 나왔다.
10개 항목 중에서(‘내 위치를 아는 것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 ‘오른쪽과 왼쪽을 자주 혼동하지 않는다’, ‘나는 길을 잘 알려준다’ 등등) 남녀가 유의미한 차이를 보인 항목은 하나도 없었고, 남녀 모두 높은 자신감을 드러냈다. ‘나는 거리를 잘 가늠하는 편이다’ 항목에서는 남자들이 여자들보다 좀 더 자신감이 있는 듯했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나는 지도를 아주 잘 읽는다’ 항목에서는 이렇다 할 차이가 없었다.
그렇다면 흔히들 문제로 인식하는 현상은 왜 나타날까? 사실은 여자들도 어려움 없이 방향을 찾을 수 있지만, 여자들에게 방향을 찾아보라고 요구한 방법이 잘못일지도 모른다. 1997년 12월, 영국판 《콩데나스트 트래블러》의 초창기 호에 티머시 네이션(Timothy Nation)이라는 작가의 짧은 글이 실렸다.
저자는 이렇게 물었다. 우리가 런던 거리를 배회할 때, 지도나 나침반만 고집스럽게 따라가는 것보다 유명한 지형지물을 찾아보면서 움직이는 것이 훨씬 쉬운 이유는 무엇일까? 저자가 생각하는 이유는 지도가 거리의 선만 쫓는다는 점이었다. 즉, 지도는 아래를 내려다본다. 그러나 실제로 우리가 걸을 때는 위를 올려다보고, 옆을 둘러본다. 납작하고 이차원적이고 아래를 내려다보는 접근법은 남자들이 사용하는 인지 전략에는 적합하지만, 여자들에게는 일반적으로 불리하다.
티머시 네이션의 본명은 맬컴 글래드웰(Malcolm Gladwell)이었다. 아직 『티핑 포인트』나 『블링크』 같은 책으로 유명해지기 전이었던 그는, 이어서 뉴욕의 컬럼비아 대학 연구진이 1990년에 수행했던 실험을 소개했다. 쥐와 미로를 사용한 유명한 실험에서, 수컷 쥐들과 암컷 쥐들은 먹이를 찾을 때 서로 다른 방식으로 방향을 찾았다.
연구자가 실험 공간의 기하학적 구조를 바꾸면 (가령 칸막이를 놓아서 없던 벽을 만들면) 수컷들은 과제 수행 속도가 조금 느려졌지만 암컷들은 거의 영향을 받지 않았다. 한편 실험 공간에 있는 랜드마크를 (가령 탁자나 의자를) 옮기면, 반대의 결과가 나왔다. 이번에는 암컷들이 혼란스러워했다. 놀라운 소식이었다. 수컷들은 광범위한 공간적 단서에(넓은 공간, 납작한 선) 잘 반응하는 데 비해 암컷들은 랜드마크와 가구에 의존하는 셈이었다.
이 결과를 해괴하게 여긴 사람들도 있었을까? 그랬을 수도 있지만, 지난 20년간 수행된 다른 실험들도 속속 비슷한 결과를 내놓았다. 제일 최근의 논문은 2010년에 미국심리학회가 발표한 것으로, 영국과 스페인 연구자들이 이전보다 더 많은 쥐를 삼각형 수조에 빠뜨려 물속에 숨은 발판을 찾아내도록 시험한 실험이었다. 이번에도 결과는 비슷했다. 암컷들은 특정 위치에 존재하는 단서들을 유익하게 활용했지만, 수컷들은 무시하고 그냥 지나쳤다.
연구자들은 이어 사람에게도 비슷한 실험을 해보고, 역시 비슷한 결과를 얻었다. 요즘은 남녀가 방향 찾기에서 그런 차이점을 보인다는 사실을 부인할 심리학자가 거의 없을 것이다. 다만 그런 변화가 어떻게 발생했는가 하는 점은 확실히 알 수 없다. 그 점을 이해하려면, 우리는 아프리카 평원에서 살았던 수렵 채집인에게로 거슬러 올라가보아야 한다.
상당히 그럴싸한 가설에 따르면, 인류의 뇌는 그 시절에 남자든 여자든 똑같이 방향을 찾는 기술을 발전시켰지만 방식이 달랐다. 남자들은 광범위하게 이동하면서 넓은 영역에서 사냥을했던 데 비해 여자들은 한자리에서 뿌리나 열매를 거두는 편이었는데, 여성들의 그런 채집 기술은 기억의 도움을 받고 기억은 지형지물의 도움을 받는다.
납작한 이차원 평면에 그려진 전통적인 지도는 사냥꾼을 위해서 사냥꾼이 그린 것이다. 여성 채집자는 잘 활용하기 어렵다. 반면에 지도를 삼차원으로 바꾸면 종이에서 지형지물을 도드라지게 표현한 그림이든, 컴퓨터 화면에 표시된 디지털 지도이든 여자들이 눈앞의 도로를 대번에 좀 더 잘 읽는다.
1998년에 조지아 주립대학의 심리학자 제임스 댑스와 동료들이 수행한 실험에 따르면, 남녀의 전략적 차이점은 언어적 소통에까지 미친다. 남자들은 길을 알려줄 때 북쪽이나 남쪽 같은 나침반 방위를 곧잘 언급하지만, 여자들은 도중에 있는 건물이나 다른 랜드마크에 집중한다.
그러니 결국 바버라 피즈와 앨런 피즈가 옳았을지도 모른다. 적어도 반쯤은 옳았을지도 모른다. 남자가 말을 듣지 않는 것은 별로 들을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여자가 지도를 읽지 못하는 것은 잘못된 종류의 지도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그들의 골치 아픈 결혼을 구원할까? 계기판에 부착된 플라스틱 상자가?
글 및 사진 출처 : <지도 위의 인문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