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스레터 39
클라이머 여러분!
이 일곱 글자로 수많은 클라이머의 인스타그램 피드를 장악한 남자가 있습니다. 오늘은 어떤 꿀팁을 공유해 줄지 기대하게 만드는 크리에이터 부기팍(@boogipark_climber) 님인데요. 스스로를 '크럭스 브레이커'라고 소개하는 부기 님을 직접 만나고 왔어요. 잘 다니던 대학원을 뒤로하고 크리에이터로 활동하게 된 이유부터, 화제의 클라이밍 양말 제작 스토리까지! 그의 일거수일투족이 궁금하다면 끝까지 읽어 주세요.
인스타그램에서만 소통하다가 이렇게 직접 만나니 더 반가워요!
안녕하세요. 이상하지만 유익한 동료 클라이머 박부기입니다. 클라이밍 하는 모든 분께 제 영상이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잘 부탁드려요.
클라이밍 크리에이터로 활동 중인데, 클라이밍과 크리에이터 모두 어떤 계기로 시작하셨나요? 클라이밍에 입문한 이유부터 알려 주세요.
원래는 취미로 농구랑 온라인 게임을 즐겨 했는데 코로나가 터진 거예요. 밖에 나갈 수 없으니 폐인처럼 게임에 빠져들었죠. 당시 제가 대학원을 다녔는데, 게임 하느라 4시간 자고 연구실 가고 그랬어요. 보통 하루에 12시간 정도를 연구실에서 보내니 나머지 시간은 다 게임으로 허비한 셈이에요. 이런 좋지 않은 생활을 하던 중 클라이밍 크리에이터 '비버준'이 제 고등학교 동창인데 클라이밍을 하자고 하더라고요.
그때부터 신세계가 펼쳐졌어요. 암장에 있는 사람들이 정말 멋있는 거예요. 옷도 자유분방하고 다들 힙하더라고요. 클라이밍 고수들 특징 있잖아요, 빡빡이거나 장발이거나. 그리고 문신까지. 그런 멋진 사람들 틈에 저도 끼고 싶어서 그 후에도 몇 번 가게 됐죠.
그러다가 그 멋진 분들을 따라 머리카락도 기르고, 비버준 님을 따라 콘텐츠까지 만들게 된 건가요?
네, 다 했죠. (웃음) 크리에이터가 된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비버준의 영향도 무시할 수 없어요. 비버준을 비롯해 함께 클라이밍 하던 친구들이 어느 날 부산을 떠났는데요. 제가 안 그렇게 생겼지만 진짜 내향적이거든요. 혼클을 하려니까 낯설어서 막 가슴 두근거리고, 문제가 안 풀리면 혼자 속으로 성질내고 있었어요. 그때 스태프 선생님께서 먼저 다가오셔서 이렇게 하면 된다고 쉽게 설명해 주시는 거예요.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나도 혼자 힘들어하는 클라이머에게 도움 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렇게 콘텐츠를 만들기 시작했어요.
부기 님이 콘텐츠 크리에이터가 된 데에는 비버준 님 50%, 스태프 선생님 50%의 지분이 있네요. 다른 이유도 있다고 하셨는데 말씀해 주실 수 있나요?
이전에 박사 과정 중이었거든요. 제가 수료 기준은 맞췄는데 졸업까지 하려면 논문을 써야 했어요. 그런데 논문이 너무 안 써지는 거예요. 엉뚱하게 클라이밍 가이드는 써지더라고요. 인스타그램에 카드뉴스로 올렸는데 반응이 좋았어요. 정말 클라이머분들께 도움을 드리는 일이 내가 좋아하는 일인가? 싶었어요. "저는 나가서 제 일을 할 겁니다." 교수님께 말씀드리고 연구실을 나오게 됐죠.
연구하던 분이셔서 콘텐츠가 전문적이었나 봐요. 따로 클라이밍 관련 공부도 하시나요?
사실 지금까지 따로 공부한 적은 없어요. 보통은 제가 실제로 느낀 점들, 이를테면 막히는 구간이 있을 때 어떤 스킬이 부족한가 생각하고 영상을 만드는 편이에요. 물론 스킬에 대해 인터넷 검색도 해보고 주변 선배 클라이머분들께 여쭈기도 하죠. 근데 인터넷에 떠도는 정보를 다 믿을 수는 없잖아요. 그래서 2~3주 정도 저한테 실험을 해봐요. 테스트 결과 '이거 진짜 괜찮다' 싶으면 콘텐츠로 제작해요.
개인의 경험을 기반으로 콘텐츠를 만들면 때때로 아이디어가 부족하지는 않나요?
제 콘텐츠의 10개 중 3개는 고수를 위한 내용, 나머지 7개는 초보분들을 위한 내용인데요. 그래서 클라이밍 할 때 초보자분들을 유심히 봐요. 지켜보다 보면 가끔 어느 한 포인트만 잡아주면 완등할 수 있는데 못하는 경우가 있잖아요. 제가 아는 부분을 알려 드렸을 때 완등하시면, 이 포인트를 콘텐츠로 만들어야겠다 생각하죠. 다른 분들을 관찰하고 얻은 아이디어와 제 경험에서 나온 아이템들의 합을 100이라고 하면 그중 30 정도만 콘텐츠로 만들어요. 핵심 위주로.
정말 많은 초보분이 부기팍 님의 콘텐츠를 통해 좋은 정보를 얻고 있을 거예요.
도움받았다고 인스타그램 DM을 보내주시기도 하고 암장에서 마주치면 직접 말씀해 주시기도 해요. 그럴 때 뿌듯하죠. 문제는, 이제 그분들이 저보다 클라이밍을 더 잘 하셔서 그분들의 니즈를 제가 맞춰드리기가 어려워요. 더 열심히 해야죠.
오프라인에서 알아봐 주시는 분들도 있나요? 역시 클라이밍계의 아이돌이시군요.
요즘 부쩍 많이 알아봐 주시더라고요. 최근에 서울 갔을 때 확 느꼈어요. 예전에는 먼저 와서 이야기해 주시는 분이 없었거든요. 이제 알아보시는 분들도 있으니 크럭스 구간에서 씩씩거리지 않고 행동거지를 똑바로 해야겠더라고요. 아, 길거리에서도… 가끔 서면에서 제가 클라이밍 티셔츠랑 바지 입고 있으면 알아보시기도 해서 놀랐어요.
그 바지! 부기팍 님의 트레이드마크잖아요.
바지에 얽힌 약간의 에피소드가 있어요. 대학원생은 항상 돈이 부족하잖아요? 제가 초보일 때 어디서 그라미치가 클라이밍 바지의 근본이라고 들었어요. 그렇게 들으니까 정말 사고 싶은데 너무 비싼 거예요. 할인하는지 열심히 찾았죠. 근데 마침 그 화려한 바지가, 아무도 안 사는지 70%나 할인 중인 거예요. 참을 수 없었죠. 지금은 구멍도 나고 무릎도 터져서 검정고무신 교복 밈처럼 됐는데요. 다른 바지 입으면 팔로워분들이 "부기팍 변했다, 초심 잃었다"고 농담처럼 말씀하시더라고요. 이제 낡아도 버릴 수 없게 됐어요.
옷 이야기를 하니 '양말' 이야기도 안 할 수 없는데요. 양말은 어떻게 개발하셨나요?
'양말을 만들어야겠다!'는 거창한 다짐으로 시작한 건 아니었어요. 누구나 아프기는 싫잖아요? 항상 암벽화 신을 때마다 발이 아파서 여러 브랜드의 양말을 사봤어요. 아쉽게도 마음에 쏙 드는 제품이 없었어요. '내가 만들면 이렇게 안 만드는데…' 하는 생각이 들었죠. 그러면 내가 만들어보자! 바로 만들게 됐죠.
처음 해보는 일이라 어려우셨을 듯해요.
맞아요. 제작하고 나서 주변 분들한테 선물로 드렸는데 인스타그램에 올려도 되냐는 거예요. 그러라고 했죠. 바로 반응이 올 거라고는 생각도 못 한 채로요. 그런데 올리고 나니까 구매 문의가 들어오더라고요. 그제야 스마트스토어 등록하고 포장하고, 배송하고… 제작하는 과정 자체도 처음이라 힘들었지만 판매하는 과정도 정말 정신없이 흘러간 것 같아요. 스마트스토어를 해본 적이 있어야지 말이에요.
콘텐츠와 양말 제작을 같이 하시니까 몸이 두 개여도 부족할 것 같아요.
원래부터 일정한 패턴을 만들어서 생활하고, 오히려 루틴이 깨졌을 때 스트레스를 받는 편이라 괜찮았던 듯해요. 전체적인 관점에서 패턴을 잡아두고, 매일 아침 업무(?)의 우선순위를 정해요. 시간 관리를 꽤 타이트하게 하는 편이에요. 아무래도 백수다 보니까 아무도 안 잡아주잖아요. (웃음)
루틴에 맞춰 바쁘게 살다 보면 때때로 번아웃이 오진 않나요?
사실 지금도 그런 상태예요. 그런데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저는 예측 불가능한 무언가가 불안해요. 하기 싫고 힘들어도 하는 편이 낫죠.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걸 하자'라고 생각하는 편이에요. 영상 편집을 한다든지, 자기 계발에 몰두한다든지… 최근에는 블로그도 열심히 쓰고 있어요. 저처럼 새로운 분야에서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 인스타그램을 키우는 방법, 영상 편집하는 법 같은 것들을 기록해요. 다른 사람들도 도움을 받았으면 좋겠어서요.
그렇다면 콘텐츠나 양말 제작 말고 앞으로 더 도전해 보고 싶은 일도 있나요?
엄청 많죠. 어디까지 더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양말도 업그레이드해야 하고요. 바지나 티셔츠를 만들 수도 있고요. 초크백이나 등산 가방, 패드 같은 것들을 만들지도 모르죠.
제품 제작 외에도 하고 싶은 일은 정말 많아요. 부산 영화의 전당처럼 트인 공간에서 클라이밍 파티를 여는 거예요. 같이 킬터보드도 하고 놀고, 지나가던 사람들도 "뭐야, 재밌겠다!"면서 클라이밍에 입문하고요. 상상만 해도 재미있겠죠? 그런 날을 만들기 위해서 일단 지금은 콘텐츠를 열심히 만들어야죠.
오, 부기 님의 클라이밍 파티가 열릴 때까지 기다릴게요!
이제 마지막이자 슬스레터 공식 질문인데요. 부기팍에게 클라이밍이란?
제게 클라이밍이란… (잠시 침묵) 삶이랑 닮아 있는 무언가인 것 같아요. 때때로 다치기도 하고 실수도 했다가 실패하기도 하면서 조금 더 나아가고 성장하고, 어느 날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게 되는.
살아가다 보면 힘든 일도 있고 잘 안될 때도 있지만 자기만의 방법을 찾든 도움을 받든, 그걸 이겨내면 한 뼘 더 성장하잖아요. 정말 닮아 있다고 느껴요. 이 좋은 걸 더 많은 사람이 함께했으면 좋겠어요. 안클즐클 하고, 제발 다치지 마세요~!
인터뷰에 응해 주신 부기팍 님께, 또 긴 글을 끝까지 읽어 주신 분들께 감사 인사를 전하면서! 오늘 인터뷰는 부기팍 님의 영상 클로징 멘트와 동일하게 마무리할게요.
만약 도움이 되셨다면 즉시 공유 부탁드립니다!
협업 문의 : slowstarter@slowstarte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