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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슬스레터

사람들의 마음을 오르는 브랜드

슬스레터 #49

by 단팥


‘아, 이 제품은 다 좋은데 조금 불편하네’라는 생각이 들었을 때 여러분은 어떻게 행동하시나요?


A. 불편하지만 참고 쓴다.
B. 어차피 맘에 쏙 드는 건 없더라, 그냥 직접 만들어 보자!


아마 대부분이 A를 선택하지 않을까 싶어요. 특정 제품을 직접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조차 하기 어려운데, 반드시 만들겠다고 결심하기란 더 어렵죠. 하지만 우리 주변에는 심심찮게 B를 선택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나아가 그런 사람들이 세상의 불편을 하나씩 해결해 주죠. 오늘 만난 클라이밍 패션 브랜드 ‘오름’의 임동진, 최지실 대표도 10년 전 B를 선택했는데요. 우리가 아는 브랜드 오름은 그렇게 탄생했습니다.



KakaoTalk_20241023_141551449_10.jpg 오름의 최지실(좌), 임동진(우) 대표. ⓒ오름



오르내림 그 팽팽한 줄다리기


단팥 : 안녕하세요. 항상 제품으로만 오름을 만나다가 이렇게 두 분을 만나 뵈니 새롭네요. 내년이면 벌써 오름이 10주년을 맞이하더라고요. 앞으로 새해가 70일도 채 안 남았는데, 어떠세요?


지실 : 오래 버텼죠. 중간에 코로나도 있어서 힘들었어요. 코로나는 우리가 예측할 수 없는 불안 요소였잖아요. 하지만 운 좋게 또 다른 돌파구가 생겨서 조금씩 위기를 극복하면서 버틸 수 있었죠. 사업 오래 하신 선배님들이 “3년 버텨봐라, 5년 버텨 봐라” 이런 말씀 많이 하셨는데 장난인 줄 알았거든요. 근데 진짜 3년 버티기가 힘들더라고요. 그렇게 버티다 보니 어느새 10년을 앞두고 있네요.


동진 : 정말 운이 좋았어요. 그렇지만 힘들었던 시기를 잘 버텼기에 지금의 오름이 있다고 생각해요. 우리에게 매일이 굿데이(Good day)가 아니고, 배드데이(Bad day)도 있잖아요. 그런데 대부분 굿데이만 기억하기 쉽죠. 내가 못 하는 부분이나 안 좋았던 일은 그대로 받아들이기 어려우니까요. 사실은 배드데이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조금씩 성장하고 있는데도 말이에요. 이 시기가 다 지나고 뒤돌아보면 결국 우상향은 우상향이더라고요. 그런 점에서 9주년과 10주년이 크게 다를 것 같진 않아요. (웃음)


지실 : 클라이밍 실력이랑 비슷한 것 같아요. 정체기도 있지만 어느 순간 조금씩 나아지고, 다시 정체기를 맞았다가 극복하고, 클라이밍 실력도 계단처럼 올라가잖아요. 참고로 브랜드 오름의 이름은 클라이밍(Climbing)의 순우리말이기도 하지만, 많은 분의 실력이 오름을 통해 오르길 바라는 마음도 담겨 있답니다.


단팥 : 말씀하신 것처럼 우리 삶에는 오름도 있지만 내림도 존재하잖아요. 살면서 가장 행복했던 오름의 순간은 언제이고, 가장 힘들었던 내림의 순간은 언제였나요?


동진 : 내림의 순간부터 꼽자면 옛날에 회사 다닐 때였어요. 저희 둘 다 의류 수출 벤더 업계에서 일했는데요. 보통 아침 8시에 출근해서 거의 자정에 퇴근하는 생활의 반복이었어요. 공장은 동남아시아에 있어서 아침 일찍부터 커뮤니케이션해야 하고, 밤이면 바이어들의 메일이 들어오죠. 한 번만 메일을 안 봐도 하루에 300개 넘게 쌓이니까… 회사 다닐 때가 제일 힘들었어요. 특히 퇴사하기 직전에, 여기에서 다 말씀드릴 수는 없지만 정말 힘들었어요. 그 내림의 순간에 ‘오름’으로 거처를 옮기게 됐죠.


지실 : 맞아요. 그리고 최고 짜릿했던 오름의 순간은, 호주에 있는 ‘포트 사이드 볼더’라는 클라이밍 짐 앞에 섰을 때예요. 재작년쯤 호주에 잠깐 들렀을 때 방문했는데요. 사진으로만 보던 간판과 진열된 오름 상품들, 이메일로만 소통했던 포트 사이드 친구들도 직접 보니 느낌이 이상했어요. 저희한테 왜 왔냐고 물어보더라고요. (웃음) 거기가 관광지로 유명한 지역은 아니거든요. 그렇지만 저희에겐 큰 의미가 있었죠. 첫 해외 입점 매장이라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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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름 사무실, 간단한 제품은 직접 만든다.



오름, 세계를 오르다


동진 : 약 10년 전에 저희가 오름을 처음 만들면서 썼던 기획서가 있어요. 청년 창업 프로그램 지원할 때 쓴 건데, 막 5년 뒤에 해외 진출하고 어쩌구… (웃음) 되게 휘황찬란하게 썼어요. 어떻게 보면 그때 꿨던 꿈을 어느 정도 이룬 것 같아요.


단팥 : 작은 브랜드가 해외 진출까지 하기가 쉽지 않은데, 정말 대단하세요! 해외 진출하면서 어려웠던 점은 없나요?


지실 : 해외 진출의 어려움은 대부분 서류 관련된 일들이었어요. 물류를 보낼 때 배를 태울지, 비행기를 태울지, 운반비는 얼마인지 등… 저희가 예전에 수출 관련 일을 했기 때문에 얕게나마 지식이 있어서 다행이었죠. 또 동진 대표님이 워낙 잘 해주셔서 든든했고요.


동진 : 처음이 어렵지 한 번 맞춰나가기 시작하면 매끄럽게는 아니더라도 얼추 흘러가더라고요. 그리고 해외 입점 매장도 정말 운 좋게 뚫린 거라, 영업하느라 힘든 건 없었어요. 외국인 고객이 개인적으로 구매했던 오름을 입고 고국으로 돌아갔는데, 그걸 어떤 짐의 대표가 보고 저희에게 연락하는 식이었죠.


지실 : 아까 코로나 때 또 다른 돌파구가 생겼다고 했잖아요? 바로 해외 입점 매장이었어요. 적절한 시기에 알맞은 제안이 들어오면서 오름이 버틸 수 있었죠. 그렇다고 저희가 인스타그램 활동을 열심히 하거나 온라인 광고를 내보내는 것도 아닌데 오름을 찾아오신다는 사실이 저희도 신기해요.


동진 : 제 생각엔, 우리가 좋아하는 걸 만들어서 가능한 일인 것 같아요. 저희와 같은 취향인 사람이 무조건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분들이 오름을 계속 찾아와주시는 거죠. 이런 믿음이 있기에 정말 저희가 좋아하는 걸 만들 수 있기도 하고요.



70739_2469167_1729787166416295195.jpg 폐자일을 활용한 액세서리. ⓒ오름


단팥 : 공감해요. 오름만의 ‘쪼’가 있어서 먼 해외에서까지 고객을 불러 모은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요즘은 뭔가 한 끗이 다른 브랜드를 선호하잖아요. 개인적으로 폐자일을 활용해 만든 제품에서도 그런 쪼를 느꼈는데요. 폐자일을 쓰기로 한 특별한 계기가 있나요?


지실 : 제가 대학생 때부터 ‘프라이탁’이라는 브랜드를 좋아했어요. 정확히는 프라이탁이 가진 이념이나 가치관이 마음에 들었어요. 자연스럽게 프라이탁을 비롯한 업사이클 제품들을 계속 흥미롭게 지켜봤죠. 그러던 중, 저희가 쓰던 클라이밍 로프를 버릴 때가 된 거예요. 찾아보니 외국에서는 폐자일을 이용해 매트를 만들기도 하더라고요. 서로 매트 도안을 공유하기도 하고요. ‘우리도 해볼까?’ 하는 생각이 번뜩 들었죠.


단팥 : 폐자일을 직접 세척하는 영상도 봤는데요. 생각보다 쉽지 않던데요?


지실 : 네, 정말요. 왜 사람들이 그냥 버리는지 알겠더라고요. 그래도 보고 있으면 뭔가 만들고 싶었어요. 제가 손으로 뭔가 만드는 일을 좋아하거든요.


동진 : 폐자일을 활용한 제품을 만들기 더 힘든 이유는 봉제처에서도 선호하지 않기 때문이에요. 정형화된 자재가 아니라서 다루기 어렵거든요. 그래서 저희가 길이도 맞춰서 자르고 일일이 다듬어서 드려요. 사실 이런 점 때문에 처음에 저는 반대했죠. 근데 고객분들이 긍정적으로 봐주시고, 좋아해 주시고, 업사이클 제품으로 오름을 기억해 주시기도 해서 지금은 오히려 좋아해요.



70739_2469167_1729787549947735968.jpg 오름의 첫 번째 백팩, '무로(MURO)'. ⓒ오름



모든 순간이 오름의 연속이었다



단팥 : 오호, 그런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었군요. 그렇다면 동진 님이 제일 좋아하는, 더 애착 가는 상품은 무엇인가요?


동진 : 최근에 출시한 ‘백팩’이요! 시중에 나와 있는 가방들을 다 뜯어보고 연구하며 만들어서 애착이 가요. 제가 불편하다고 느꼈던 부분들도 꼼꼼하게 체크하고요. 패턴사 할아버지 옆에 앉아서 “이건 뭐예요?”, “이건 어떻게 하는 거예요?” 물어가며 귀동냥으로 하나하나 배웠어요. 백팩은 처음 만들어 봐서 중간에 수정 작업도 무척 많았어요.


지실 : 무엇보다 가방은 필요한 부자재 종류가 옷보다 훨씬 많아요. 부자재마다 취급하는 업체도 달라서, 나중에 다 끝나고 세어보니 컨택한 곳이 15군데 정도 됐어요.


동진 : 다 따로따로 부자재를 받아서, 재단은 또 다른 곳에 맡기고… 정말 정신없었어요. 근데 재단하러 가서 옆에서 보면 또 배울 게 있더라고요. (웃음) 제품 하나를 만들 때마다 항상 새로운 걸 배우는 것 같아요. 제품마다 봉제 기법이나 기계도 다 다른데, 저는 이런 차이를 알아가고 배우는 과정이 즐거워요.


단팥 : 하나의 브랜드를 키우는 일은, 매 순간 성장하고 매일 조금씩 어떤 경지에 오르는 과정인가 봐요. 그 과정을 지치지 않고 헤쳐 나가게 하는 원동력은 무엇인가요?


지실 : 아무래도 고객분들이 저희의 원동력이죠. 가끔 편지를 써주는 분들도 있어요. 반품이나 교환할 때 간식을 같이 보내주시는 분들도 있고요. 한 분 한 분 생각하면 감사한 마음이 커요.


동진 : 그런 의미에서, 오름을 사랑해 주시는 분들이 어떤 사람인지 궁금한 거예요! 제품은 결국 누군가의 불편함을 개선하면서 만들어지는데요. 어떤 사람들이 어떤 불편 때문에 오름을 사는지 알고 싶었죠. 사실, ‘Our Orumm’이라는 인터뷰 콘텐츠도 발행하고 있는데, 이런 사심이 섞여 탄생한 콘텐츠예요.


지실 : 정말이지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많이 듣고 싶었어요. 저희 둘은 오래 같이하다 보니까 불편한 점들을 서로 다 얘기해 버렸단 말이죠. (웃음) 우리 고객을 직접 만나보자! 하고 결심하게 된 계기에요.



70739_2469167_1729787655561711208.jpg 모든 상품을 꼼꼼하게 확인한다. ⓒ오름



진심을 입다, 오름



단팥 : 직접 만나 이야기해 보니 고객분들은 오름의 어떤 점을 좋아했나요?


지실 : “A가 필요했는데 오름이 만들었다. 가려운 부분을 긁어주는 기분이었다” 저희 초창기 고객분들은 이런 말을 많이 해요. 고객들도 저희의 진심을 알아주시는 듯해서 보람차죠.


동진 : 빈말이 아니라 정말로 제품 하나하나 진심과 정성을 담아요. 오름에서 제작한 제품들은 둘이 함께 검수하는데요. 티셔츠 한 장도 빠뜨리지 않고 다 검수해요. 테이블에 펼쳐놓고 실밥 정리하고, 오염 있는지 확인하고 마지막에 포장하죠. 솔직히 아르바이트도 써보려고 했는데, 저희가 하는 게 속 편하더라고요. 시간은 오래 걸려도 직접 하는 게 맞는 것 같아요.



70739_2469167_1729787723690868186.jpg 서로에게 좋은 동반자이자 빌레이어, 확보자, 등반자인 두 사람. ⓒ오름


단팥 : 제가 입는 오름 팬츠가 평범한 바지가 아니라, 두 분의 진심이었네요. 어느덧 인터뷰의 끝자락인데요. 두 분께 ‘클라이밍’란?!


동진 : 클라이밍이란… 음, 인생의 전환점이라고 생각해요. 클라이밍을 안 했다고 가정하면 지금도 일반 회사원으로 살고 있지 않을까요? 클라이밍 하면서 자연스럽게 아웃도어 활동을 하게 되고, 아웃도어 활동을 접하면서 여행도 떠나게 되고요. 여행을 다녀와서 인생의 동반자이자 사업 동업자로서 지실 대표님과 브랜드도 직접 만들어 보고요. 제 인생의 전환점이죠.


지실 : 제게 클라이밍은 오름이에요.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하지 않네요. 오름 한 단어로 충분한 듯해요.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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