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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슬스레터

클라이머의, 클라이머에 의한, 클라이머를 위한 매거진

슬스레터 #55

by 단팥
70739_2560577_1734048345597942748.jpg ⓒ베타


바위가 좋아서 클라이밍에 관한 글을 틈틈이 써왔던 개발자가 있습니다. 클라이밍이 좋아서 관련된 책을 만들고 싶었던 출판 편집자도 있습니다. 전혀 다른 삶을 살아온 두 사람은 어느 날 “클라이밍 매거진을 만들자”며 의기투합하게 됐죠. 원래 알고 지내던 사이도 아닌데 클라이밍에 대한 애정 하나로 뭉쳤습니다. 클라이밍 매거진 《베타》를 만드는 장준오, 한태훈 공동 편집장의 이야기입니다.


아니, 잠깐! 클라이밍 매거진이 국내에 있었냐고요? 맞습니다. 현재 클라이밍만 전문적으로 다루는 정기 발행물은 없죠. 하지만 《베타》 창간호가 세상에 나오면 국내에도 클라이밍 전문 매거진이 탄생하게 되는데요. 우리나라에 유일한 클라이밍 매거진을 만드는 두 편집장을 만나 《베타》의 모든 것을 털어보았습니다.


�《베타》 더 자세히 알아보기



70739_2560577_1734050684910883510.png 《베타》를 만드는 장준오 편집장(좌)과 한태훈 편집장. ⓒ베타



클라이밍의 어제와 오늘을 잇다



아직 《베타》를 잘 모르는 분이 많을 텐데요. 간단히 소개해 주세요.


한태훈(이하 한): 스마트폰도, 인스타그램도 없었던 1980년대 클라이머들은 어떻게 루트 정보를 공유했을까요? 바로 ‘베타맥스 규격의 비디오테이프’에 등반 장면을 녹화해서 돌려보곤 했는데요. 등반하는 데 필요한 모든 종류의 정보를 뜻하는 클라이밍 용어 ‘베타’는 여기에서 탄생했습니다. 클라이밍 매거진 《베타》 역시 그 의미를 담아 만들었어요.


*베타맥스: 소니에서 개발한 홈 비디오 시스템. 약 12.7mm의 비디오테이프에 녹음하는 기술을 일컫는다.


장준오(이하 장): 덧붙여 설명하자면, 단순히 정보를 전하는 데 그치지 않고 클라이밍 문화를 더욱 풍성하게 만드는 역할을 하고 싶어요. 클라이밍이 역사가 깊은 운동인데, 최근 유입된 뉴비들은 그 역사와 오랜 문화를 잘 모르잖아요. 반대로 올드비들은 뉴비들이 만든 새로운 문화를 이해하지 못하고요. 《베타》는 그 간극을 해소하는 매개체가 될 거예요. 나아가 올드비와 뉴비, 두 문화를 융합해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가는 매거진이 되리라 기대합니다.



70739_2560577_1734049426034102767.jpg?j1cfpqn4 클라이밍 크리에이터 인터뷰 콘텐츠. ⓒ베타


《베타》 창간호 펀딩 상세 페이지에서 소개한 목차를 보면, 인터뷰부터 에세이, 룩북까지 굉장히 다양한 콘텐츠를 담으셨더라고요.


: 창간호인 만큼 구성이 알차도록 신경 썼어요. 김자비 선수 인터뷰를 메인 콘텐츠로 잡고, 준오 님과 제가 각자 에세이를 쓰기도 했죠. 다 열심히 준비한 만큼 많은 분이 재미있게 읽어주셨으면 좋겠어요. 특히 제가 쓴 <제주에서 찾은 볼더 파라다이스>는 한 달 동안 제주도에 살면서 클라이밍 했던 경험을 담은 글이에요. 제주의 멋진 스팟을 간접 경험할 수 있으니 참고해 보세요.


: 클라이밍 크리에이터 ‘매일클라이밍’과 ‘부기팍’ 님을 인터뷰한 <리치와 베타>도 추천해요. 그동안 출판 편집자로서 다른 사람들이 쓴 글을 편집하고 출간해 왔는데요. 제가 처음으로 기획부터 섭외, 제작까지 전부 한 콘텐츠예요. 막상 제 콘텐츠를 만드니 많이 삐걱거려서 아쉬운 점도 많지만요. 유머와 통찰을 적절히 믹스한 글이니 직접 읽어보시면 재미있을 거예요.



70739_2560577_1734049858645378960.jpg 《베타》 창간호 표지. ⓒ베타



다양한 시선으로 클라이밍을 담다



일반적인 잡지는 메인 콘텐츠를 ‘커버 스토리’라고 해서 표지 이미지로 활용하잖아요. 그런데 《베타》 창간호는 김자비 선수가 표지 모델이 아니네요.


: 판형이 작다 보니 사진을 과감하게 쓰기 어렵고, 또 과감한 구도를 실험할 만큼 질 좋은 사진이 있는지도 고민되더라고요. 그래서 창간호는 기존 잡지의 문법을 싹 버리고 깔끔한 표지로 제작했습니다. 이런 콘셉트가 《베타》만의 특징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참고로, 이번 표지 모델은 룩북 콘텐츠에서도 만나볼 수 있는 분이에요. 아예 내용과 관련 없는 모델은 아니랍니다.



말씀하신 ‘룩북’은 어떤 콘텐츠인가요?


: 패션 잡지를 보면 아이템을 소개하는 코너가 있잖아요? 《베타》의 룩북 역시 클라이밍 아이템을 소개하는 코너인데요. 클라이밍 하는 모습을 촬영하고, 그 사람이 입은 제품이 무엇인지 간단히 설명을 덧붙였어요. 모델 인터뷰도 짧게 넣고요. 독자분들이 가볍게 참고할 수 있도록 사진 위주로 배치했습니다.



외부 필진 글도 있다고 들었는데, 어떤 분들이 참여했는지 살짝 공개해 주실 수 있나요?


: 총 세 분이 있는데요. △국가대표 코치부터 루트 세팅, 심판까지 다방면에서 활동하는 ‘정지현클라이밍짐’의 정지현 대표 △국제 대회 루트 세팅도 하고 ‘서울볼더스’도 운영하는 이범희 대표 △아마추어 클라이머인 동아사이언스 이창욱 기자를 섭외했어요. 개인적으로는 이창욱 기자의 말맛이 살아있는 <벽이 벽이 되기까지>를 꼭 읽어보셨으면 좋겠어요. $%name%$ 님의 취향을 딱 저격하지 않을까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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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 바위를 오르는 한태훈 편집장과 실내 볼더링 중인 장준오 편집장. ⓒ베타



너무 다른 두 사람이 책 한 권을 쓰기까지



풍성한 읽을거리를 제공하려는 두 분의 노력이 느껴져요. 제작하면서 어려운 점은 없었나요?


: 준오 님이 앞서 말씀한 것처럼 사진이 가장 어렵더라고요. 편집하면서 ‘아, 여기서는 이런 사진이 있으면 좋겠는데’ 하는 순간이 많았어요. 마침 제가 개인적인 사정으로 회사를 쉬고 있어, 직접 나가서 촬영하기도 했죠.


: 매거진 이름인 ‘제호’를 정할 때 가장 치열하게 고민했던 듯해요. 어프로치(Approach), 써드 어센트(Third Ascent) 등 클라이밍 용어들을 나열해 놓고 정말 많이 토론했죠. 어떤 독자를 타깃할 것인지, 우리 매거진은 어떤 가치를 전할 것인지에 대해서 말이에요. 기억하기 쉬우면서도 우리의 의미를 온전히 담을 수 있는 베타(Beta)가 최종 생존하게 됐죠.


*어프로치: 주로 자연 클라이밍에서, 교통수단이 없는 곳부터 등반 루트 출발점까지의 거리를 일컫는다.
*써드 어센트: 새로운 루트를 개척할 때 검증을 위해 오르는 세 번째 등반을 일컫는 말. 개척을 위해 처음 오르는 등반을 퍼스트 어센트(First Ascent)라고 해서 FA라 부른다.



두 분은 이 프로젝트를 통해 처음 만났잖아요. 그렇다 보니 의견을 조율하는 과정이 쉽지만은 않았을 것 같아요.


: ‘하고 싶은 일을 하자’는 모토로 각자 의견을 내고 다 반영하려고 해서, 그런 부분에서 큰 어려움은 없었어요. 딱 한 가지 의견이 확 갈린 적이 있는데요. 표지 사진을 정할 때였어요. 태훈 님은 자연 바위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올드비 클라이머여서, “클라이밍 매거진이라면 바위 사진이 표지여야 한다!”는 의견을 강력하게 내셨어요. 반대로 저는 클라이밍을 한 지는 오래됐지만 실내 암장 위주로 다니는 뉴비 클라이머 성향에 가까워요. 조금 더 라이트하게 실내 이미지를 표지로 활용해도 된다고 생각했죠.


: 그래도 둘 다 클라이밍을 좋아하는 마음은 같아서 많이 토론하면서 절충해 나갔어요. 취미가 같아서 시작한 재미있는 프로젝트니까요. 어떤 결과가 나와도 저희 둘에게 좋은 경험으로 남을 수 있는 작업이 될 것 같아요.



그런데 왜 하필 매거진이었나요? 태훈 님은 개발자이니 앱을 만들 수도 있었고, 준오 님은 단행본을 출간할 수도 있었을 텐데 어려운 길을 선택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 말씀하신 것처럼 저도 앱 개발에 관심이 많아요. 하지만 제가 일반 앱, 웹 개발자가 아니고 게임 개발자이다 보니 섣불리 시도하기 어렵더라고요. 그러던 중에 준오 님이 먼저 매거진을 만들어보자고 제안해 주셨고요. 저도 <클라이밍 라이브러리>라는 웹진을 운영하고 있었기에 ‘한번 도전해 보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 일단 클라이밍 정보를 찾아볼 수 있는 매거진은 국내에 없잖아요. 물론 인스타그램이나 유튜브에 정보성 콘텐츠는 많지만 양질의 정보인지 일일이 검증해 보기는 어렵죠. 게다가 요즘 클라이밍 인구가 많아지면서 워낙 빠르게 문화가 바뀌고, 정보가 업데이트되고 있잖아요. 믿을 수 있는 정보를 정기적으로 업데이트해서 전달할 수 있는 매체는 잡지뿐이라고 생각했어요.



70739_2560577_1734051569450343862.jpg 한태훈 편집장이 쓴 클라이밍 에세이. ⓒ베타



클친자가 만든 매거진은 다르다



12월 22일 펀딩이 종료되면, 2025년에는 《베타》가 세상 밖으로 나옵니다. 사람들이 어떤 매거진이라고 생각했으면 좋겠나요?


: 어떻게 보면 요즘 잡지는 하나의 굿즈이자 인테리어 소품이잖아요? 《베타》를 클라이밍 굿즈 모으듯 구독하는 분들도 있으실 거예요. 하지만 단순히 굿즈에 머물지 않고, 알찬 클라이밍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창구가 되면 좋겠어요.


제가 거의 20년 동안 클라이밍을 해왔는데요. 해외는 잘 모르겠지만 우리나라에서는 클라이밍 관련 정보를 찾기 어렵더라고요. 오래된 자료는 사라지기도 하고,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지 않은 채 여기저기 퍼져 있기도 하고요. 사라지는 정보와 문화를 지키는 일을 《베타》가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모쪼록 많은 클라이머가 《베타》를 통해 도움을 주고받으며, 서로 연결될 수 있기를 바라요.


: 《베타》의 창간 소식을 인스타그램을 통해 먼저 공개했는데요. 어떤 팔로워분이 공유해 주시면서 이런 말을 덧붙여 주셨어요.


클라이머의, 클라이머에 의한, 클라이머를 위한 매거진이다


정말 제 마음에 쏙 들었어요. 많은 분이 《베타》는 그런 매거진으로 읽어주시고, 소장해 주시고, 기억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마지막으로 두 분께 클라이밍이란 어떤 의미인가요?


: 제게 클라이밍은 취미인지 직업인지 헷갈리는 존재예요. 프로그래밍과 클라이밍 모두 대학생 때 시작했어요. 그래서 둘의 경력이 엇비슷하다 보니 더 헷갈리는 것 같아요. 실제로 클라이밍을 직업으로 삼았던 적도 있는데요. 사회초년생 때 게임 개발업계가 워낙 야근이 많다 보니 클라이밍도 전혀 못하고 힘들었어요. 그 후 2년 정도 개발 일을 놓고 클라이밍 관련 일을 했어요. 지금은 다시 개발자로 돌아왔지만 언젠가는 클라이밍 쪽에서 일할지도 모르죠. 개발자의 마지막 테크트리는 치킨집 사장이라는 우스갯소리가 있는데, 저한테는 그게 클라이밍일지도요.


: 클라이밍이란 제 첫 번째 자아입니다. 클라이머, 아빠, 편집자 등 저에게는 여러 정체성이 있는데요. 지금 말씀드린 3가지 중에서 클라이머가 제일 처음 만들어진 정체성이에요. 그만큼 클라이밍은 제 사고 방식과 삶에 많은 영향을 미치는 존재에요. 편집자 자아로 클라이밍 매거진을 만들 정도로 많은 지분을 차지한답니다. 그렇게 열심히 만들었으니 《베타》에 많은 관심 부탁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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