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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팥 Jun 04. 2022

서른하나에 맞이한 10돌을 축하하며

우리 집에서는  생일을   챙긴다.  번째 생일은 실제 출생일인 3월이고,  번째 생일은 뇌종양 수술일인 6 4일이다. 다시 태어났다는 의미다. 바로 오늘 어느덧 10 세월이 흘렀다. 10돌을 축하하며 최근 느낀  가지들을 기록으로 남겨두고자 한다.


1. “악성 뇌종양도 1 이상   있나요?”


자신을 악성 뇌종양이라고 말했다가, 죽었다고 했다가, 죽지 않았다는 사실이 밝혀졌다가, 다시 죽었다고 했나 하는 어떤 사람에 대한 글에 달린 댓글이었다. 정말로 악성 뇌종양 환자가 1 넘게   있는지 호기심이 가득한 문장이었다. 나쁜 의도가 아니라는    있었지만 살짝 당황스러웠다. 여기 이렇게 살아 있는 사람이 있는데, 무려 10년이나.


그런데 사실 나도 10년 전에는 1년도 못 살고 죽을 줄 알았다. 수술도 잘 되고 예후도 좋았는데 막연히 그렇게 생각했다. 그동안 드라마나 영화에서 봐왔던 암환자 스토리는 대부분 그랬다. 대중매체에서 암은 권선징악이나 새드엔딩, 감동의 도구이지 평범한 삶은 아니었다. 어쩌면 저 댓글의 순수한 호기심은 암환자들의 다양한 이야기를 진솔하게 마주할 기회가 없었기 때문일 거다.


극의 긴장감을 위한 도구가 아닌 평범한 오늘을 살아가는 한 사람으로서 나의 이야기를 기록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았다. 10년 전의 나는 1년 뒤를 꿈꾸지 못해 불안했지만, 누군가는 이 글을 통해 10년 뒤를 꿈꿀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의미 있지 않을까.


2. 작은 보탬이 되었길


시간이 흘러 기억은 가물가물하지만 수술 전 여러 동의서에 사인했다. 그중 하나가 내 케이스를 연구 및 논문에 활용하겠다는 내용이었다. 당시에는 별생각 없이 동의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정말 잘한 일인 듯싶다. 누군가를 살리는 데 도움이 됐을 수도 있으니까.


3. 이과 파이팅!


정기검진 1년 차에는 MRI 촬영이 끝나고 판독 결과를 들으려면 2~3시간을 병원에서 기다려야 했다. 그동안 건대역 지하 음식점에서 밥도 먹고, 병원 카페에서 빵과 음료를 먹으면서 시간을 때웠다. 한 5~6년 차 됐을 때는 영상이 출력되는 시간이 1시간 정도로 줄었다. 그러다가 재작년쯤부터는 카페에서 빵 먹을 시간도 없어졌다. 심지어 며칠 전에는 MRI 찍고 바로 결과를 들을 수 있었다.


영상 출력 시간만 줄었나 하면 그것도 아니다. 화질도 좋아져서 2012년도와 올해 촬영본을 비교해보면 선명도가 다르다. 무지렁이인 내가 봐도 희미한 경계선들이 또렷해졌다. 의학, 공학, 과학의 발전이 얼마나 빠른지 매년 체감한 셈이다.  시간에도 연구에 매진할 모든 이과생 힘냈으면 좋겠다.


4. “결혼은 했니?”


진료실에 들어가면 교수님은 제일 먼저 1년간의 근황을 업데이트하는데, 올해 주제는 결혼이었다. 작년까지는 회사 잘 다니고 있는지 물어보셨는데…. 대학교 1학년짜리가 어느덧 결혼 얘기가 머쓱해지는 나이가 됐다. 앞으로는 2년마다 한 번씩 검사하기로 했는데 과연 2년 뒤에는 어떤 질문이 오갈지, 두둥.


검진을 마치고 병원을 나서면서 2년 뒤에는 교수님이 은퇴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흐르는 세월은 어쩔 수 없고, 후학 양성도 필요하지만 교수님이 오래 현역에 있었으면 좋겠다. 다른 병원 의사는 수술이 어려울 수도 있다고 했는데, 오히려 교수님은 수술하면 괜찮아질 수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정말 괜찮아졌기에 내게 기적 같은 사람이다. 오래오래 뵈면서 감사한 마음을 전하고 싶다. 그렇지만 언젠가 헤어짐의 순간이 오겠지. 흐르는 세월이 아쉬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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