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에서는 내 생일을 두 번 챙긴다. 첫 번째 생일은 실제 출생일인 3월이고, 두 번째 생일은 뇌종양 수술일인 6월 4일이다. 다시 태어났다는 의미다. 바로 오늘 어느덧 10년 세월이 흘렀다. 10돌을 축하하며 최근 느낀 몇 가지들을 기록으로 남겨두고자 한다.
자신을 악성 뇌종양이라고 말했다가, 죽었다고 했다가, 죽지 않았다는 사실이 밝혀졌다가, 다시 죽었다고 했나 하는 어떤 사람에 대한 글에 달린 댓글이었다. 정말로 악성 뇌종양 환자가 1년 넘게 살 수 있는지 호기심이 가득한 문장이었다. 나쁜 의도가 아니라는 건 알 수 있었지만 살짝 당황스러웠다. 여기 이렇게 살아 있는 사람이 있는데, 무려 10년이나.
그런데 사실 나도 10년 전에는 1년도 못 살고 죽을 줄 알았다. 수술도 잘 되고 예후도 좋았는데 막연히 그렇게 생각했다. 그동안 드라마나 영화에서 봐왔던 암환자 스토리는 대부분 그랬다. 대중매체에서 암은 권선징악이나 새드엔딩, 감동의 도구이지 평범한 삶은 아니었다. 어쩌면 저 댓글의 순수한 호기심은 암환자들의 다양한 이야기를 진솔하게 마주할 기회가 없었기 때문일 거다.
극의 긴장감을 위한 도구가 아닌 평범한 오늘을 살아가는 한 사람으로서 나의 이야기를 기록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았다. 10년 전의 나는 1년 뒤를 꿈꾸지 못해 불안했지만, 누군가는 이 글을 통해 10년 뒤를 꿈꿀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의미 있지 않을까.
시간이 흘러 기억은 가물가물하지만 수술 전 여러 동의서에 사인했다. 그중 하나가 내 케이스를 연구 및 논문에 활용하겠다는 내용이었다. 당시에는 별생각 없이 동의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정말 잘한 일인 듯싶다. 누군가를 살리는 데 도움이 됐을 수도 있으니까.
정기검진 1년 차에는 MRI 촬영이 끝나고 판독 결과를 들으려면 2~3시간을 병원에서 기다려야 했다. 그동안 건대역 지하 음식점에서 밥도 먹고, 병원 카페에서 빵과 음료를 먹으면서 시간을 때웠다. 한 5~6년 차 됐을 때는 영상이 출력되는 시간이 1시간 정도로 줄었다. 그러다가 재작년쯤부터는 카페에서 빵 먹을 시간도 없어졌다. 심지어 며칠 전에는 MRI 찍고 바로 결과를 들을 수 있었다.
영상 출력 시간만 줄었나 하면 그것도 아니다. 화질도 좋아져서 2012년도와 올해 촬영본을 비교해보면 선명도가 다르다. 무지렁이인 내가 봐도 희미한 경계선들이 또렷해졌다. 의학, 공학, 과학의 발전이 얼마나 빠른지 매년 체감한 셈이다. 이 시간에도 연구에 매진할 모든 이과생이 힘냈으면 좋겠다.
진료실에 들어가면 교수님은 제일 먼저 1년간의 근황을 업데이트하는데, 올해 주제는 결혼이었다. 작년까지는 회사 잘 다니고 있는지 물어보셨는데…. 대학교 1학년짜리가 어느덧 결혼 얘기가 머쓱해지는 나이가 됐다. 앞으로는 2년마다 한 번씩 검사하기로 했는데 과연 2년 뒤에는 어떤 질문이 오갈지, 두둥.
검진을 마치고 병원을 나서면서 2년 뒤에는 교수님이 은퇴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흐르는 세월은 어쩔 수 없고, 후학 양성도 필요하지만 교수님이 오래 현역에 있었으면 좋겠다. 다른 병원 의사는 수술이 어려울 수도 있다고 했는데, 오히려 교수님은 수술하면 괜찮아질 수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정말 괜찮아졌기에 내게 기적 같은 사람이다. 오래오래 뵈면서 감사한 마음을 전하고 싶다. 그렇지만 언젠가 헤어짐의 순간이 오겠지. 흐르는 세월이 아쉬울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