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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팥 Apr 22. 2021

타인의 불행은 내 원동력이었다

스물한 , 뇌종양 수술을 받고 병실에 누워있는 현실을 믿을  없었다. 같은 병동을 쓰는 환자들은 모두 나이 든 어르신이었다. 그들은 나를  때마다 젊은 사람이 여긴 무슨 일로 왔느냐고 물었다. 사정을 이야기하면 놀란 표정을 숨기지 못하고 안쓰러워했다. 그들이 그럴수록 나는 현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나한테만 이런 불행이 찾아온  같았다.


어느 날 입원 수속을 밟고 있는 또래를 보았다. 순간 그 아이도 뇌종양이었으면 좋겠다고 간절히 바랐다. 그래야 공평한 세상이라고 생각했다. 나만 고통받을 수는 없으니까. 복도를 지나는 짧은 시간 동안 정말 간곡히 바랐다. 그러나 그 아이의 병명이 무엇인지 알 수 없었고 그 이후로 병동에서 마주친 적도 없었다. 아마도 다른 병동에 자리가 부족해 잠시 왔던 게 아닐까 싶었다. 이 추측이 맞는 것 같아 더욱 실망스러웠다.


그랬다. 당시 나에게 필요한 건 응원이나 위로, 격려, 걱정, 동정, 공감이 아니라 타인의 불행이었다. 나와 같은 불행을, 나보다 더한 불행을 겪는 사람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런 사람이 있으면 나는 기꺼이 행복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한마디로, 자신이 세상에서 가장 불행하다고 여기는 ‘비련의 여주인공병’ 말기였다. 신체의 병보다 마음의 병이 더 중증이었다.


소설가 윤은  속을 들여다볼  있었나 보다. 그는 다른 말로 위로하고 걱정하지 않았다. 다만 많이 걸으라고 했다. 이동을 위한 수단으로써 걷기가 아니라 오직 걷기를 목적으로 하라 했다. 걸으면서 자신에게 집중하는 시간이 내면을 단단하게 만들어줄 거라고.  말은 잘못된 방향으로 폭주하는  마음을 멈춰 세우는 브레이크였다. 타인의 불행이 삶의 원동력이었던 나는 걸으면서 나에게 집중할 수 있었고 비로소 자립할  있게 됐다. 물론 지금도 완전하지는 않아서 나도 모르는 사이에 타인의 불행에서 희망을 찾을 때가 있다. 그럴  그냥 걷다 보면 다시금 단단해지곤 한다. 걷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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