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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슬 Jul 07. 2024

비타민같은 베스트프렌드이야기.

나라는 다르지만 괜찮아.

갓 스물이 될 시기에서 인터넷 펜팔에서 알게 된 J(이름의 이니셜)이 있다. 인터넷 펜팔은 언어교류를 목표로 펜팔을 시작하였는데, 메시지가 왔다고 편지모양 위해 숫자가 떴는데, 눌러보니 나름의 장문의 자기소개가 있고 프로필이 J의 본인얼굴 사진이었다. 


백인의 파란 눈동자의 남성.


꽤 나이차이가 나지만, '본인의 대한이야기의 자기소개가 귀엽다고 해야 되나?' 그 포인트는 '한국'에 대한 관심이 있는 게 보이는 자기소개였기에. 


답장을 꽤 나도 자연스럽게 써서 보내고 싶었지만, 그때 내 옆에 지금은 멀어진 친구지만, 내 침대에서 다른 외국인과 대화 중이었는데 글을 보여주면서 들떠서 오두방정을 떨었다. 하지만 '한국적인 영어'랄까? 


영문법을 완벽하게 미국드라마 같은 표현은 사실상 시험에서는 오답이기에 뭐를 어떻게 써야 될지, 번역기를 돌리기에는 영어를 좋아하는 나의 '자존심'이 허락되지 않았다. 

나도 내 나름대로의 꾹꾹 내 자기소개를 써서 보냈다. 신기하게도 '유사연애'하는 느낌의 대화의 시작이 되었다.


 그러다 보니, 라인메신저까지 주고받는 사이가 되었다. 메신저를 쓰다가 또 다른 메신저 스카이프라는 화상채팅 프로그램으로 신나게 떠드는 사이가 된 사이. 

타인이 볼 때는 '남자친구'로 본다.


부모님조차 나에게 ' 파란 눈을 가진 남자만 데리고 오지 마라'를 농담 식으로 이야기했다. 이유는 대화가 안 될까 봐였다. 


한 가지 문제 아닌 문제는 J가 '한국어'를 전혀 하지 못한다는 것. 


K-학생인 나는 '네가 못하면 내가 영어를 쓰면 된다'라는 마인드로 어떻게든 바디랭귀지를 하면서도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그런 식으로 평균 2시간 이상을 서로의 얼굴을 보며 장르를 이리저리 통통 뛰며 이야기를 했다. 배시시 웃으며.


보통 이야기를 하다가 화장실을 간다던가 방을 나갈 때는 캠을 꺼놓고 갔다. 


그에게 내 '장애'를 밝히기 싫었기 때문에. 이유는 간단하다. 

 '나를 떠나갈까 봐' 


감정으로 치면 불안과 무서움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지금도 똑같다. 장애에 대한 혐오와 부딪히는 것은 힘들다. 다행히도 그때에 나도 한결같은 것이 '장애에 대한 법'을 달달달 외운 것을 말하며 애써 괜찮은 척했지만 마음을 덜덜덜 떨렸다. 지금이야 배운 게 사회복지 전공이다 보니, 논리적인 내 맘솜씨를 내세운다. 


라포가 굉장히 쌓였을 때, 정확히는 내 마음이 단단해서 말을 할 수 있는 '용기'가 생겼을 때쯤이었을 것이다. 더듬으며 흔들리는 동공으로 캠을 보았다.


그는 내가 쓰는 영어의 발음이 어렵다고 생각했는지 굉장히 소년미 넘치는 목소리로 '천천히 말해도 돼'라고 했다. 내 마음도 모른 채. 


" 나는 장애인이야"  

매우 어렵게 말하며 굳은 내 표정. 


"응 그게 왜?" 

라고 말은 했지만, 굉장히 충격적이었다.


'왜 이리 담담한 거지?' 얼떨떨한 표정으로 가만히 '음...'이러고 있으니 본인 직업을 알려주었다. 


" 나는 물리치료사야 우리 모두는 다르잖아 장애가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지" 

라는 말을 듣자마자 그렇다면 '장애'를 싫어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안심하였다.


J는 내 이야기를 듣고선 자기의 생각을 이야기를 해주기 시작하였다. 


" 나는 장애가 있다는 말이 마치 너는 무슨 색깔을 좋아하니? 했을 때 나는 핑크색을 좋아해 이런 말들과 똑같이 생각이 들어. 네 표정을 보니 생각해 보니 네가 장애가 있다고 했을 때 다른 사람들에게 상처를 깊고 많이 받은 것 같아 보여." 


나는 말없이 끄덕였고, 그가 웃는 미소에 나도 따라 웃게 되었다. 이 너무나 천진난만과 단순함. 


그리고선 서로에게 무엇을 좋아하는지, 뭘 재밌어하는지 이야기를 하다가 얻어걸리는 주제가 있으면 신이 나서는 이야기를 이어나가려고 하기 바빴다. 


일주일에 많이 할 때는 3~4일 정도 우리는 요일과 시간을 정해서 접속을 하던지 미리 메시지를 남겨놓기도 하였다. 우리나라랑은 딱 2시간? 정도 차이가 나지만 그 미묘한 시간을 맞추기가 꽤 서로 어려워서 '각 나라시 간으로 00월 00일 00시 00분에 만나자'라고 하며 나는 살짝 화장을 하고  J와 대화하기 위해서였다.

 

" 오늘은 그때와 다르게 핑크색 립스틱을 발랐네 이 색도 되게 잘 어울려" 


" 그걸 기억해? 잘 어울린다니 기분 좋네" 

꽤 새침하게 대답을 하고선 속으로는 웃으면서 대답했다.


까르르 웃으며 서로의 나라문화나 드라마나 영화이야기들을 하고 정말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했다. 이렇게 통화를 하다 보니 '귀가 뚫렸다'라고 표현하지만 외국인과 대화를 영어로 하다 보니 누군가 대화를 하는 것이다 버릇하니 영어 귀가 꽤 트여 서로의 속 깊은 이야기까지 할 수 있는 귀가 되었다. 아직도 고맙다고 하는 부분이다. 


어느 날은 내가 어느 부당한 일을 당했을 때 굉장히 굳어진 표정으로 내게 이야기를 했다. 

" 그 사람과 이성적인 대화가 안 됐으면 담당자에게 가보는 것은 어때?"  


" 내 일이 그렇게 담당자는.... 중대한 일로 여길까?" 


" 네가 피해를 봤잖아. 말하기가 힘들다면 편지를 써서 그 사람 테이블에 놓고 와달라고 부탁을 해봐" 


평상시 이야기를 할 때는 극 F인 J이지만 내가 피해를 봤다는 일들은 살짝 '내가 아는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로 극 T인 대답을 해왔다. 신기할 정도로.


일이 해결되는 부분도 꽤 많았다. 


날 위해주는 그런 친구인 것 같아 별명을 정해줬다. 

'비타민' 


그는 항상 나에게 따뜻했다. 내가 어린아이마냥 기분이 좋을 때나 우울하거나 좋은 일이나 나쁜 일이 있을 때 신체적으론 멀지만 심리적으로는 아주 가까이 있는 느낌이 들어 '비타민'이라는 별명이다. 


그는 깔깔 웃으며 귀엽다고 하며 애칭처럼 서로 지금도 <비타민>이라고 이야기를 한다. 


정말 썸 타는 남녀처럼 꽁냥꽁냥.

'참 달달하다. 달달해.'라고 생각했다. 


내가 어떤 모습이어도 '예쁘다'라는 말을 사탕발린 말이여도 나를 생각해 준 것 같은 말을 항상 해주였다.


"다슬아 나는 여자친구 있어 이번에 호주에 온다니 나 너무 설레"

'결국 헤어졌다 다시 만나는구나'라고 생각하며 그가 웃으며 나도 긍정의 제스처로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에는 이 아메리칸 스타일에 나는 이해를 하기가 너무 어려웠다. 왜냐하면 J의 부모님이 나라는 존재도 알고, 내 안부까지 묻고 나를 생각하면서 J어머니께서 그림을 그려주신 것도 직접 받지 못했지만, 사진으로 몇 장이나 받았았었다.


한국에서는 흔히들 말하는 썸일 텐데 나는 흔한 베스트프렌드 '여사친'이었다.


한국에서 J와 나는 '연인'인데 그가 연애를 한다는 소식에 나는 머리가 어질어질했다. 하지만 나는 애써 웃으며 축하한다고 이야기를 하자마자 J는 본인 스마트폰을 뒤적뒤적거리더니 사진 한 장을 찾아선 캠에 보여주며 씩 웃었다.  


" 내 여자친구야"

라고 하며 아이처럼 해맑게 웃었다. 


나는 사진을 보고선 아시아계의 여성이기에 살짝 놀라서 혼자 이 사람은 교포인 걸까 어떻게 만난 걸까 하면서 사진을 보고선 일단은 축하한다고 이야기를 하면서 하나씩 내 호기심을 물어봤다. 


"축하해 그런데 너의 여자친구는 아시아계 사람이니?" 


"응 내 여자친구는 홍콩사람이야" 


내가 외국인하고 대화를 하고 있지만, 신기하게도 외국인커플을 보니 굉장히 기분이 묘하고 신기하였다. 그리고 그와 그녀는 어떻게 만났을까 라는 호기심이 들어서 질문을 할까 말까 굉장히 고민스러웠다.

 

혹시 우리 사이처럼 '온라인펜팔'에서 시작일까.


J군은 아시아사람들을 좋아하는 사람이기에 K-콘텐츠 때문에 그런 것도 영향은 있겠지만 그런 것만은 아니라고 들었기에 더욱더 궁금했다. 남의 연애사가 제일 재미있는 법이라는 것에 실사판 같았다. 


" 둘은 어떻게 사귀게 되었어?"

라고 용기 아닌 용기를 내어 이야기를 하였다. 


"데이트 어플에서 만났어" 


'데이트어플로도 정말 커플이 될 수 있구나.'라고 생각했다. 매체에서만 보던 일이었기에.


점점 아메리칸 마인드에 적응을 할 때쯤 서로 시간이 날 때 영상통화를 하며 기숙사에서 혼자 살 때는 누구한테나 이야기하지 못할 이야기를 J군과 이야기를 하며 해결책을 얻기도 공감을 받으며 위로를 받기도 하였다.


코로나시국 때에는 호주가 락다운이 되어있을 때 처음으로 J가 무기력한 모습을 처음 보게 되고, 호주가 그렇게 넓은 지도 체감을 한 번 더 하는 계기가 되었다. 신기하고, 그래도 조금씩 나와 대화를 하면서 괜찮아지는 것도 느껴지고 평상시처럼 조잘조잘 거리며 핸드폰번호를 교환했다.  외국인이 많이 쓰는 'whatsApp'이라는 어플로 대화를 하게 되었다. 아마 우리나라 카카오톡 개념인 것 같았다.

 

그렇게 잘 지내고 있다가 호주라 가지는 못하지만 내게 J 씨는 보여줬던 M양과 '결혼'을 한다는 소식을 듣고 진심으로 축하한다고 전해주었고 너무나 예뻐 보이는 부부이다.  


최근 메시지에 J군에게 <그것>의 대해 이야기를 해주었다. J군은 <그것>에 대해 이야기를 하며 정보를 주고, 위로와 내 근황을 묻게 되었고 글을 쓴다고도 이야기를 했다. 


여전히 스위트했다. 천성이라고 느껴지는 성격. 

우리는 자주 말한다. 

'나라는 다르지만 괜찮아!'


한 번쯤 실제로 보고 싶은 친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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