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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슬 Oct 12. 2024

복도에서 시험을 응시하다.

믿을 수 없이 파란만장한 이야기

대학교 4학년.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는 '교양과목'이었다. 이때는 코로나가 유행했을 때여서 교수님 얼굴조차 모르고, 목소리만 알고 있는 강의를 듣고 어느새 중간고사를 <계단식 강의실>에서 보게 되었다.


계단식 강의실은 딱히 갈 일이 없기 때문에 내가 혹여 가려고 할 때 '교수님이 가는 길'로 가야 된다. 모든 사람들에게 집중을 의도하지 않고도 집중을 받을 수 있기에.


그래서 나는 계단식 강의실로 가는 학생에게 말을 걸었다.


"혹시 여기로 시험 보러 가세요?"


시간은 시험시간에 다가오고 나는 매우 다급하였다. 그러기에 저기로 '시험을 보러 가는 것 같다!'싶으면 말을 걸었었다. 


"보시다시피 제가 휠체어를 타고 있어서 계단을 올라가지 못해요. 교수님께 말씀해주실 수 있으세요?"


"아.. 아! 네"

라고 대답을 하시며 강의실로 들어가서 '교수님'께 이야기를 전해주셨다.


'나는 어떻게 해야 되나?'라고 생각을 할 때쯤에 교수님과 조교님이 나를 내려다보았다. 내가 휠체어를 타고 있어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나를 내려다보는 느낌이 들었다.  


교수님은 나를 보고 이름을 묻는 대신에 내게 질문을 던지셨다. 꽤나 아픈 질문이었다.


"여기도 못 올라와요?"

라고 나를 보며 질문을 하셨다. 


"네.."

라고 나는 '곧 있으면 시험이 시작할 텐데'라는 조급함과 함께 대답을 하였다.


"잠시만 거기서 기다려요."

조교님은 시험지를 가지고 오셔서 손소독제가 있는 동그란 미니테이블에 놓으셨다. 


'이건 무엇일까?' 상태파악을 하며 약간은 멍-하니 있을 수밖에 없었다. '왜 나는 여기서 시험을 봐야 되는 것을 봐야 되는가.' 하며 조교님을 빤히 쳐다보며 입을 떼었다.


"저 여기서 시험을 봐야 되나요?"

라고 말을 하면서 내적으로 화가 나는 것을 겨우겨우 참으면서 말을 하였다.


"그럼 어떻게 해요? 그냥 여기서 보세요."


"시험을 왜 여기서 봐야 되는 거예요?"


""저기를 못 올라가잖아요. 시험 안 보실 거예요?"


'여기서 시험을 봐라. 교수님이 지시하셨습니다'와 '내가 왜 여기에서 시험을 봐야 하냐?'라는 말을 한 3번 이상 반복하였고, '시험은 봐야 되고 열은 받고 어떻게 하지'라고 생각하다가 어쩔 수 없이 시험을 보게 되었다.

모든 것이 서술형.


아이들 뛰어다니는 소리, 불쾌한 시선, 강의소리 등등 모든 것이 방해요소밖에 없었다. 어떻게 시험을 봐야 될지 모르겠지만, 겨우 제출을 하게 되었다.


하필, 그날 집에 가서 시험도 끝났겠다. '집에 와서 쉬는 것이 어떠냐?'라는 엄마의 권유에 휠체어를 기숙사에 놓고 엄마가 나를 차에 태웠다. 


엄마는 나를 조수석에 태우고 놀란 표정으로 나를 보셨다.


"왜 이리 목이 빨갛게 되었어?"


"빨개졌어요?"

라고 하며 나는 기분이 나쁜 것을 숨기지 못하였다. 그래서 있었던 이야기를 엄마에게 모두 털어놓았다.


급성 스트레스성 발작전조증상.


나는 집으로 가자마자 지도교수님부터 센터장님까지 주르륵 전화를 하였다. 계속된 진술을 하였다. 점점 분위기는 굳어지기 시작하였다.


하나의 서막에 시작하였다. 


지도담당교수님은 내게 굉장히 아-무런 일도 아니라는 듯이 말씀을 하셨다.

"저는 죽고 싶을 정도로 너무나 수치스럽고 차별을 받은 것 같아요."


"그건 지금 다슬이가 너무 감정적이라 그래"


"이 차별이 맞는 건가요?"


"아니긴 한데 일단, 교수님이 미안해하고 있으니까 사과받으면 되는 것 아닐까?"


"..."

무응답도 응답.


"저는 이 일 3사 방송국에 제보하고 싶은 심정이에요. 00 대학교에 사회복지과에 진학하는 여성장애인이 시험을 복도에서 보며 차별을 받다. 참, 헤드라인 좋지 않아요?"

화도 나고, 안 좋은 기분이어서 협박조로 들릴 수도 커다란 일이라는 것을 암시하듯이 이야기를 하였다. 


"네가 할 수 있어? 지금 퇴근시간이라 다음에 전화하자."

라고 하시며 비웃으며 말씀을 하셨다.


그렇게 통화는 종료가 되었고, 나는 너무 지쳤었다.

 

지친 나를 엄마가 도와주셔서 옷을 잠옷으로 갈아입고, 화장을 지우고 겨우겨우 밥을 먹고, 엄마의 위로를 받으며 쓰러지듯 잠이 들었다.


자고 일어나 보니 일을 내가 잘못해 보니 '헤쳐나가야 할 일'인 줄은 나는 몰랐다. 차라리 일어나지 말았으면 하는 일이 나에게 일어난 것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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