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 양, 초콜릿 나라에 가다.

우울증 MZ세대의 대학원 생존기 (1)

by 다샤

교수님께 조교 일을 그만두겠다고 말한 건, 내가 첫 출근을 한 날로부터 딱 14일 만이었다.



14일.

짧다고 할 수 있을까?



내가 대학생이었다면, 그 시간은 대략 해외 직구한 신발이 때 맞춰 도착하고, 도로주행을 마치고 면허증을 손에 넣기에도 충분하며, 계절학기의 절반이 지나가는 시간이었을 것이다.


대학원생이 된 나에게 요구된 14일은, 약 1200페이지의 논문을 읽고 수업 준비를 하고, 최소 9시간 이상 학위 논문을 어떻게 쓸지 머리를 싸매며, 새 학기를 맞아 일거리가 쌓인 사무실에서 28시간의 근무를 해내는 것이었다.


하지만 사실 내가 정말로 겪어야 했던 14일은 이거다.


우울감이 짓누르는 무거운 몸을 14번 일으키고, 내키지도 않는 28번의 식사 메뉴를 고민하며, 어둠 속에서 수백 번 핸드폰 스크린을 눌러대며 잠들지 못하는 2주를 견뎌야 하는 시간. 사소한 모든 일상의 의미를 찾기 위해 열심히 발버둥 치느라 고단한 14일이었다.






문제는 다른 사람들의 14일은 그렇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내가 그만두고 싶다고 발언한 사실만으로도 연구실은 발칵 뒤집혔다. 교수님들은 물론 선배들까지, 뭐가 문제인지, 어떻게 도와주면 좋을지 물어왔다. 나를 걱정했다. 하지만 그보다 더, 내가 그만둘 것을 걱정하고 있었다. 내가 그만두면 일을 대신할 사람이 없다고. 도움의 손길 끝에는 나에게 그만두지 않겠다는 확답을 받아내고 싶어 했다.

이유야 어찌 되었든 따뜻한 도움의 손길이라고 느꼈다. 그럴수록 미안했다. 확답을 줄 수가 없었다. 나는 여전히 발버둥 쳐야 간신히 하루를 살 수 있으니까.


한편으로는 나를 철없는 MZ세대로 보기 시작했다. 속으로는 2주 만에 약한 소리를 한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르겠다. 특히나 연구실은 보수적인 분위기 탓에, 교수님의 심기를 거스를 수 있는 아주 사소한 발언도 모두 교수님을 향한 전쟁 선포와도 같이 받아들여졌다. 그런 곳에서 내 행보는 용납되지 않는 것이었다.



이해받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학교도 직장도 아픈 사람의 편의를 봐주는 곳이 아니니까. 이해할 수도 없다. 딸기 맛과 초코 맛이 다르듯, 이건 그냥 맛의 차이다. 삶의 맛이 다를 뿐인데, 또 그렇게 봐주지는 않는다. 아직은 부족한 딸기 양이 언젠가는 초코 맛을 내기를 기대하는 것이다. 나는 딸기인데. 딸기는 딸기 맛이다. 초코 맛을 낼 수는 없다.


연구실 생활을 시작하면서 나는 꽤 큰 결심을 하고 본가를 떠나 학교와 가까운 서울의 작은 원룸으로 이사했다. 진심으로 나아지고 싶었다. 다만 아픈 사람과 아프지 않은 사람의 14일이 다르듯, 내가 온 힘을 다해 발버둥 치는 것이 누군가에게는 별 것 아닌 것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럼에도 딸기 양이 아픈 몸을 이끌고 초콜릿 나라에 온 이유는, 딸기 나라에 있다가는 그대로 방치되어 버려질 게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단지 문제는 딸기 양이었지 딸기 나라가 아니었기에, 초콜릿 나라에 온 딸기 양은 여전히 아팠을 뿐이다.





나에게 그 14일은 참 길고도 어려운 시간이었다. 그래서 그 말은 결코 간단하게 내뱉은 말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 누구도 다른 사람의 14일을 살아볼 수는 없다. 그게 원칙이다. 만약 서로가 서로의 14일을 살아줄 수 있다면, 사람들은 모두 회사를 그만두고 병원은 문을 닫으며 교회는 봉사활동을 멈추게 될지도 모른다. 망설이거나 참지 못할 일도, 답답하고 고통스러운 병도, 외롭고 소외된 사람도 없어질 테니까. 모두가 각자의 사연을 온전하게 이해받을 테니까. 각자의 14일을 위해 살아가는, 또 다른 사람의 14일을 돕는 노력들이 무의미해질 테니까. 나에게 주어진 14일이 아직 이해되지는 않지만,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딸기 양은 여전히 열심히 낫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일은 아직 그만두지 못했고, 여전히 버둥대며 덩치 좋은 초콜릿 나라 사람들 사이에서 적응 중이다. 요즘은 시차 탓이라는 생각도 종종 한다. 날짜변경선을 지나 초콜릿 나라에 온 것일지도 모른다. 이건 초콜릿 나라와 딸기 나라의 시차일 뿐이고, 아직 시차에 적응하는 중인가 보다.


지금은 그냥, 딸기 나라를 떠나올 결심을 한 내가 기특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