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 MZ세대의 대학원 생존기 (2)
언젠가 고등학교 사회 선생님이 그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이 사회가 주스라면 우리 세대는 그 단물을 쪽쪽 빨아먹어왔다. 이제 곧 바닥이 나겠지. 하지만 걱정 마라. 너희는 '끝물'이니까."
노력하는 만큼 성과를 얻을 수 있는 단물. 너희까지는 괜찮을 거야, 뭐 그런 위로가 하고 싶었던 것 같다. 하지만 끝물은 자칫 하다가는 이도 저도 아닌 게 되어 리필되는 주스에 뒤덮여버릴 수 있다.
90년 대생들은 이른바 성공 지향적인 교육을 받아 온 세대에게 양육되어, <마시멜로 이야기>, <부자가 된 키라 이야기> 등의 자기 계발서를 접하며 소프트웨어가 완성되었다. 그땐 정말 노력하는 만큼 성과가 나오던 시대였으니까. 그런데 우리가 사회에 나올 쯤에 주스가 바닥을 드러내버린 거다.
지금의 MZ세대는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를 읽는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를 읽는다. 마시멜로는 가고, 이제는 떡볶이의 시대가 온 거다. 이 소프트웨어는 우리의 문화다. 우리가 자연스럽게 공유하게 된 정서다. 그런데 끝물이라 그런지, 사이에 끼어서 그런지, 조금 혼란스럽다. 이미 모두가 걸어왔던 익숙한 정도(正道)와 앞으로를 이끌어갈 새로운 길, 그 사이에서 어떤 것을 택해야 옳은지 헷갈린다.
대학에 오면 참 다양한 연령과 배경의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그런 다양한 관계에는 꽤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는데, 대학원은 또 달랐다. 나이가 무슨 상관이야,라고 생각했지만 직장과 학교가 묘하게 공존하는 이곳에서는 그렇지 않았다. 선배는 함께 공부하는 동료이기 이전에 교수님으로 연결된 직장 사수이다. 그에게 하는 말, 내가 하는 행동이 공과 사, 직장과 학교 중 어떤 하나의 영역에 속해 간단하게 구분 지어지지 않는다. 마냥 편안하게 대할 수 있는 사람이 연구실에는 없었다. 비교적 이른 나이에 대학원 생활을 시작하게 된 나로서는, 내 동기들조차 학번 차이가 꽤 나는 선배들이었다. 동기들은 그나마 편한 사이지만, 차츰 그렇게만 다가오지 않는 것들이 생기곤 했다. 유일한 MZ세대로서의 내 막내 생활은 그야말로 끝물 중에 끝물이었다.
멈추지 않고 흐르는 시간을 케이크 자르듯이 나누는 건 불가능하겠지만, 우리의 편의를 위해 나눠놓은 '시대'와 정책과 공감대가 만들어낸 '세대'가 있다면, 모든 조각은 원래 같은 면을 공유하고 있을 수밖에 없다. 어딘가는 맞닿아 있다는 거다. 하지만, 어딘가는 멀리 떨어져 있다. 절대 만나지 않는 면도 있다.
나의 '14일 선언' 이후, 연구실 선배가 뒤늦게 소식을 듣고 나를 불러 '고민 상담'을 해주었다. 선배는 다짜고짜 뭐가 문제냐고 물었다. 당황한 내가 더듬더듬 털어놓은 고민들에 선배는 아주 간단한 계산 문제라는 듯 사무적인 해결방안으로 받아쳤다. 일은 그만두지 말라고, 교수님의 부탁은 거절하지 말라고 몇 번이고 강조했다. 나에게 참새는 짹짹, 하며 오늘의 교훈을 정리하듯 자신의 말을 참새처럼 따라 하게 하더니 이제 문제없지? 하고는 자리를 떠났다. 내 이야기는 전혀 듣지 않았다. 나를 돕고 싶었던 마음이었던 건지, 교수님의 심기를 건드릴까 걱정해서였는지는 알 수 없지만, 요구한 적도 필요하지도 않은 도움을 받고 나는 이유 없이 눈물이 났다. 나에게는 어려운 문학 문제인데, 내 풀이과정이 간단한 계산 문제로 부정당하는 기분이었다.
어쨌든 오늘도 나는, 조교라는 직장 생활과 대학원생이라는 학교 생활을 병행하며 힘차게 살아가고 있다. 물론 쉽지는 않다. 학교는 배우는 곳이고, 직장은 일하는 곳인데, 나는 왜 직장에서 배우고 학교에서 일을 해야 하는 걸까? 케이크와 주스가 세트 메뉴인 것에 이의를 제기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주스가 바닥이 났다면 더 따라야 케이크를 마저 다 먹을 수 있다. 케이크만 먹다가는 목이 멘다. 학생들이 목이 메어 힘들어한다면, 주스를 따라줄 정도의 권리는 보장해주어야 한다. 감당하지 못한다는 것을 자책하고, 주스 없이 케이크 먹는 법을 가르침 당하고 싶지는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