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 MZ세대의 대학원 생존기 (6)
2년의 온라인 대학 생활이 점차 끝나갈 무렵, 대학에서는 대면 활동들을 점차 재개했다. 해외 연수도 그중 하나였다. 아직 시기상조라는 의견도 많았지만 코로나에 지친 학생들에게는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다.
우리 과는 예산이 크게 삭감되어 현실적으로 무리였다. 코로나가 끝났다는 분위기와 함께 비행기 값이 폭등하던 시기였고, 출국 세 달 전 코로나가 이대로 사라질지까지 불투명했던 당시에는 모두가 회의적이었다.
상황이 반전된 건 한 달 후였다. 뜬금없이 해외 연수를 다시 가기로 했다는 교수님의 메일을 받았다.
"뭐 어쩌겠냐. 돈은 하늘에서 뚝 떨어지기를 기도해야지, 하하하!"
막막했다. 아무도 대책이 없는 상황에서 불가능을 가능하게 만들어야 하는 상황이었다. 이건 불가능하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교수회의에서 결정된 사안이었다. 물론 그 과정에서 현실적으로 가능한지 고민 한번, 우리에게 상의 한번 하지 않았지만 말이다.
비행기표 예매가 가장 급했다. 대부분의 여행사들은 갑자기 빗발치고 있는 문의에 바빠서 난리였다. 한참을 기다려 담당자와 통화를 해도 내가 원하는 가격의 비행기표를 찾기는 힘들었다. 예산이 맞으면 단체 예약을 할 만큼의 좌석 확보가 어려웠다. 나도 내 조건이 말도 안 된다는 것을 모르지 않았다. 알고도 고생을 해야 하는 이 상황에 그냥 화가 났다.
그렇게 한 달을 비행기 예매도 안된 채로 학생들을 대상으로 갈 수 있다는 가정 하에 프로그램 준비를 진행했다. 애초에 뒤늦게 시작한 탓에 준비 시간이 턱없이 부족했다. 기숙사 예약부터 비용 처리까지 모든 행정 처리가 급박하게 이루어졌다. 상대교와의 커뮤니케이션도 쉽지 않았다. 시차 때문에 한번 메일을 주고받는데도 사흘이 걸렸고, 거의 매일 야근을 했다.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를 한 달을 보내고, 가까스로 상황이 조금씩 정리되었다. 학생들에게는 부담금을, 행정실에는 야근과 독촉을, 상대교와는 껄끄러운 논쟁만을 남겼지만. 나름 불가능을 가능하게 만든 한 달이었다. 출국이 기대된다며 들뜬 학생들을 보면 그나마 위안이 되었다. 전혀 의미 없는 고생을 하는 건 아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학생들이 프로그램을 마치고 입국한 뒤에도 일은 끝날 줄을 몰랐다. 애초에 말도 안 되는 예산으로 시작한 데다가 그 사이에 환율이 오르는 바람에 생긴 구멍을 메우는 일이 남아 있었다. 자잘한 행정 업무들도 계속되었다. 여기저기 보고할 일은 왜 이렇게 많은지.
학생의 신분으로 내가 누렸던 것들을 생각해본다. 누군가가 그것을 위해 일하고 있었다는 것도. 전에는 생각해본 적도 없었던 수면 아래의 것들. 내가 그 물갈퀴가 될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대학생이었던 나에게 코로나는 온라인 수업이었고, 나를 방 안에 가둬둔 아주 길고 지루한 휴식이었다. 그렇게 코로나가 야근이 되기까지 반년. 내 지경도 조금씩 넓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