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 MZ세대의 대학원 생존기 (7)
나의 연구실 생활은 제비뽑기로 시작되었다. 연구실에 자리가 부족해서 제비를 뽑아야 했는데, 결과는 당연히 꽝이었다. 자기 키만큼 책을 쌓아놓고 과제며 연구며 할 일이 산더미인데(비싼 등록금은 물론이고), 대학원생들에게 손바닥만 한 자리 하나 주지 못하는 현실이라는 게 놀라웠다. 그렇게 조교를 하는 사무실에 짐을 놓고 학기를 보내야 했다. 나랑 비슷한 처지여서 한 학기 내내 책을 지고 빈 교실을 찾아다는 선배도 있었다.
자리가 불편한 것은 나중 문제이기도 했다. 연구실은 말 그대로 대학원 생활의 중심이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이 어려워지고, 또 그게 어려워지면 여러 가지 학교 생활에 필요한 정보와 서로 주고받는 도움의 손길에서 멀어지게 된다. 물론 인간관계에 따른 개인차는 있겠지만, 연구실에 자리가 없는 사람들이 있는데 기본적인 분위기가 그렇다는 점에서 의문이 들었다. 예를 들면 과 대학원생 전체가 있는 단톡방은 존재하지 않고 연구실 단톡방만 있는데, 거기서 기본적으로 우리 과 대학원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모든 공지사항이 전달되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곧 연구실 밖에서의 대학원 생활을 나름 즐겼다. 그게 훨씬 편안하다는 걸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건 전부 연구실 총량의 법칙 때문이다.
연구실에 자주 나타나지 않는 후배에게 선배가 출근을 종용하는 이른바 '후배 관리'라고나 할까. 이 과정에서는 상대에 대한 예의와 사생활은 무시해야 제 맛이다. 첫 번째 조건, 총량은 반드시 연구실 내에서 측정된다. 연구실 밖에서의 학업에 대한 열정은 무의미하다. 누구도 알아주지 않기 때문이다. 그것은 딱히 유의미한 성과로 인정되지 않는다. 연구실을 나가는 순간, 그것은 학업을 게을리하는 것으로 간주된다. 두 번째 조건, 연구실에 와서 각종 친목과 잡일에 동원되어야 한다. 밥을 먹어도 좋고, 심부름이나 청소도 좋다. 자유롭고 편안한 분위기는 저리 가라. 함께 단체 생활을 즐기자.
이 총량을 채우려면 다양한 방법을 동원해야 한다. 쉽게 말하면 선배들의 민심을 얻으면 된다. 연구실 출근은 그 방법 중 하나일 뿐이다. 회식 참석, 엠티 참여, 사생활 관리 등 다양한 옵션이 있다. 그저 참여하는 것도 안 된다. 반드시 즐겁고 밝게, 사람들과 적극적으로 어울려야 하며, 진로에 대한 고민 및 상담을 통해 깊은 속이야기를 나누면 더 좋다. 사생활 관리는 꽤 위험성이 큰 선택지다. 연애를 한다는 사실이라도 들켰다가는 공부에 방해가 되지는 않는지 세세히 간섭당할 위험이 있다.
그리하여 나는 총량의 법칙으로부터 자유로운 곳에서 학교 생활에 충실했다. 연구실과 적당한 거리를 두면서, 하고 싶은 말은 하고, 하기 싫은 말은 하지 않으면서. 어려웠다. 이상해 보이기도 했을 거다. 그들은 거기에서 오는 묘한 불편함을 나에게 'MZ 세대'라는 별명을 붙임으로써 표출했다.
누군가의 호의를 매도하고 싶지 않다. 하지만 무례함에 당하고 싶지도 않다. 그러니까 이 정도가 적당한 거리다. 그런 이상한 별명을 지어준 보답이라고 해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