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 MZ세대의 대학원 생존기 (5)
과사무실 조교의 점심시간은 정해져 있다.
이 시간을 사수하는 것은 정말 중요하다. 일이 바빠도, 아니 일이 바쁜 날에는 특히 그래야만 한다. 제대로 쉬기 위해서다.
처음에는 멋모르고 쏟아지는 일을 처리하기에 바빠서 점심시간도 잊고 자리를 지켰다. 아무 생각 없이 업무 연락을 했는데 수화기 너머 행정실 직원에게 혼이 난 적도 있었다.
"아니, 선생님! 아직도 점심 안 드시러 가셨어요? 얼른 가세요!"
쉬는 것도 약속이다. 나 자신만을 위한 게 아니라, 함께 일하는 사람들 모두를 위한 거다. 하지만 문제는, 모두가 같은 시간에 쉬지 않는 게 대학 구성원들의 현실이라는 거다.
대학생들은 각자 시간표가 다르기 때문에 쉬는 시간도 다르다. 사무실에 점심시간이 있다는 생각을 못하는 경우도 많다. 내가 대학생이었을 때를 떠올리면 그럴 수도 있나, 싶다가도 답답하다. 대학이라는 곳에 학생과 교수 외에 직원들이 '9 to 6'를 지키면서, 정해진 시간에 밥을 먹으면서 겨우 한숨을 돌린다는 사실을 생각하는 게 쉽지 않은가 보다.
아무 때나 전화하거나 찾아오는 경우도 많고, 점심시간이나 퇴근시간이 지난 시간에 사무실에 있으면 꼼짝없이 업무를 처리해주어야 한다. 칼같이 지금은 사무실이 쉬는 시간이니까 돌아가세요, 하기가 쉽지 않다. 조교들이 사무실을 직접 운영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데다가 서로 얼굴을 아는 사이인 경우도 많고, 무엇보다 과사무실이 무슨 일을 하는지를 모른다. 민원상담소처럼 생각하는 게 대부분이지, 수많은 행정 업무와 예산 처리를 하느라 바쁠 거라는 생각을 못하는 것이다.
교수님들의 행차는 더욱 곤란하다. 학생들보다 더 자유분방한 시간표에 대학원 수업, 연구 관련 업무 처리 등 볼일은 많고 시간은 다양하다. 그리고 바쁜 스케줄을 과사에 맞춰주는 교수님은 드물다. 당연히 누군지 다 아는 조교들인데, 와서 밥 한번 사줘야지 하는 마음으로 각자 가능한 시간에 등장한다. 그게 점심이나 퇴근 전후일 경우에는 몹시 난처하다.
"밥 먹었냐? 먹었다고? 그냥 한 번 더 먹어라."
몇 번을 거절해도, 배부르다고 해도, 혼자 밥을 먹기 싫다는 교수님의 말을 거스를 수는 없었다. 한국인에게 밥은 우정이자, 인간관계이자, 사회생활이자, 가족 관계의 중심이다. 가까워지기 위해, 성의를 표시하기 위해, 가족 같은 사이가 되기 위해서. 우리는 시간이 맞지 않으면 맞추어서 밥을 먹어야 한다.
점심을 두 번 먹고 하루 종일 더부룩한 기분이 들었다. 그날 이후 나는 용기를 내어 다시 한번 점심을 또 먹으라는 교수님의 제안을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문제는 그 장면을 선배가 봤다는 것이었다. 선배는 나에게 그러면 안 된다고 했다. 밥을 먹으면서 교수님이 하고 싶은 말이 있었을 수도 있기 때문에 그렇단다. 나는 이해가 되지 않는 점들을 질문했지만 선배는 내 말을 들으려 하지 않았다.
점심시간이 정해진 직원도, 점심시간이 제각각인 학생들도, 모두 약속이라는 걸 한다. 약속은 서로가 합의한 내용을 말한다. 한쪽이 정한 시간도 아니고, 상대가 강요한 신뢰도 아니다. 정해진 점심시간처럼 매일을 같이 쌓아가기 위한 표지판 같은 거다. 약속 시간을 지키는 것만큼 단순한 게 어디 있나 생각했었는데, 사회의 12시는 그렇지가 않다. 12시 10분 전에 미리 오는 사람, 5분쯤 지각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사람, 오후를 오전으로 착각하는 사람도 있다. 이제는 약속 시간을 지키지 않은 사람에게 화를 내는 게 능사는 아니라는 것을 안다. 약속시간은 12시 정각이 아니라 상대와 나의 시간을 맞추는 과정인 것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