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은 쉽니다. (3)
"가능할까요, 디자이너님. 상당히 까다로운 요구인데."
의뢰인이 비장한 얼굴로 나를 쳐다보았다. 그가 내민 종이에는 왼손으로 그린 듯한 도안이 있었다. 내 커리어 최대의 위기다. 하지만 이번달 방세를 내려면 어쩔 수 없었다.
"네.. 뭐.. 자신은 없지만... 한번 해볼게요."
나는 그가 내민 도안을 받아 들었다.
"반드시 지구를 산산조각 내주셔야 해요."
의뢰인이 흥분하며 말했다.
"그리고 이 부분! 좀 더 극적으로 표현해 주세요. 파바바박! 하고 파편이 막 튀는 느낌이요, 아시죠?"
"네에..."
잘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은 이미 온데간데없었다. 이제는 그냥 의뢰비를 못 받는 일없이 작업을 잘 마치기만 하면 되었다. 지구 따위 어떻게 되든 내 알바는 아니었다. 방세를 못 내면 이번에야말로 집에서 쫓겨날지도 몰랐다. 지난달로 보증금을 다 까먹었기 때문이다.
"지구가 없어지면 방세도 없어질 거예요."
의뢰인이 말했다.
"얼마나 살기 좋아질까요?"
"그러게요."
나는 대충 대답하며 즉석에서 시안을 몇 개 그렸다.
"이런 느낌은 어떠세요? 핵을 사용해 봤는데."
의뢰인은 그림을 가만히 들여다보더니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요즘 국제정세가 심상치 않아서 핵을 쓰는 건 힘들어요. 이건 어때요?"
오, 환경오염. 요즘 트렌드긴 하지.
"저도 좋은 거 같은데, 이런 디자인으로 하시면 그림이 좀 지저분해질 수는 있어요."
의뢰인은 그 말에 생각에 잠기더니 잠깐 핀터레스트를 구경하겠다며 노트북을 꺼내 두들겨대기 시작했다.
"주문하신 아이스 아메리카노요."
그 사이 음료가 나왔다. 나는 벌컥벌컥 커피를 마시고는 한창 지구 부수기에 열을 올리고 있는 의뢰인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근데 지구가 없어지면 방에서 계속 살 수는 있나? 갑자기 든 생각에 고개가 갸우뚱해졌다.
"디자이너님, 이건 어때요?"
의뢰인이 나를 불렀다.
뭐, 크게 중요할 건 없지. 이따 저녁은 뭘 먹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