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어리 버리기!

주일은 쉽니다. (2)

by 다샤

나는 다이어리를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문방구를 들락거리던 시절부터, 내 눈을 사로잡았던 건 오직 번쩍거리는 다이어리들!


그렇게 쌓이고 쌓여서 창고방을 하나 가득 채울 만큼 많아져버렸다. 처음 하고 싶은 일이 생겼을 때, 친구가 세상에서 제일 중요했을 때, 티켓 모으기에 빠졌을 때 등등 다양한 내가 방을 가득 채웠다.


차곡차곡 기록되는 것이 많아질수록, 한편으로는 기록하지 않으면 불안해졌다. 모든 나의 순간들이 기록되어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필기를 좋아하는 편이기도 했지만, 선생님이 늘 말하셨듯, 오색빛깔로 세상 정성을 다하여 노트 필기를 해봤자 다시 보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 그리고 놀랍게도 예전에 썼던 다이어리를 다시 펴보며 추억에 잠긴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물건을 끝까지 다 사용하는 습관은 자랑스럽게 여기는 내 장점이었다. 마치 훈장처럼 한 페이지도 남김없이 사용한 다이어리들을 쌓아 올리는 건 기분 좋았다. 하지만 그 기록들을 사랑하지는 않았다. 매일 잘하고 있다고 생각했고, 오늘에 대한 좋은 이야기들을 남겼지만, 다시 돌아보면서 뿌듯해할 여유조차 없었던 것 같다. 언젠가는 쉴 수 있겠지, 하면서 달리듯 언젠가는 돌아보겠지, 하면서 어딘가에 처박아 두기만 하는 거다.


그러다 코로나가 시작되었다. 하고 싶은 것이 있어도 할 수 없었고, 가고 싶은 곳이 있어도 갈 수 없었다. 내 다이어리는 점점 조용해졌다. 집에 있는 시간이 길어지자, 정리하는 것이 유행하기 시작했다. 정리는 오와 열을 맞추는 게 아니라, 비우는 것이라는 말이 경종처럼 울렸다. 늘 언젠가는 쓰겠지, 하면서 쌓아둬 봤자 어제 쓰지 않은 것은 오늘도, 내일도 쓰지 않는다!


마치 무언가에 홀린 듯 창고방을 비우기 시작했다. 어떤 물건들은 버릴 수밖에 없이 낡기도, 어떤 것은 있는지도 몰랐다. 꼼꼼히 살피지 않으면 비우기 쉬웠고, 그럴수록 미련이 아니라 후련이 찾아왔다. 그러다 창고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내 다이어리와 공책 무덤을 발견했다. 마주하기 싫었다. 그렇게 하나씩, 하나씩 무덤 속을 헤집었다. 어제 펴보지 않은 것은 내일도 펴보지 않겠지만, 다이어리들만큼은 그대로 버릴 수가 없었다. 내가 무엇을 버리고 놓칠 예정인지 참을 수가 없었다.


하나씩 살펴본다. 어떤 페이지들은 쉽게, 어떤 페이지들은 어렵게 넘긴다. 도저히 버릴 수 없어서 찢거나 찍기도 한다. 잊고 있었던 결심, 친구와 보낸 시간, 치열하게 써 내린 기록. 하나씩 정리할 때마다 마음이 가벼워졌다. 마침내 방이 텅텅 비었을 때, 내 속은 왜인지 내가 해낸 것들로만 가득 찼다. 버린 것들은 업적이 되었다.


물건 때문에 들어갈 일이 없던 창고방은, 이제 부모님의 서재가 되었다. 상자가 쌓여 있던 자리에는 책상이, 고장 난 컴퓨터를 처분한 자리에는 수납장이 들어왔다. 책상 같은 거 필요 없다던 아빠가 출근 전에 성경을 읽는 자리가 되고, 식탁이면 충분하다던 엄마의 전용 독서 좌석이 되었다. 그리고 나는 이제 다이어리를 쓰지 않는다. 나를 매일 기록하는 일로부터 자유로워졌다. 그때그때, 필요할 때마다 채운다. 버릴 일이 없도록 수납하지 않는다. 홀가분하다. 나중을 위해서가 아니라, 지금을 위해서 쓰기 시작해본다. 지금 쓰는 이 글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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