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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시서점 Mar 29. 2024

어쩌면 '몰락의 시간'의 주어는 우리일지도 모릅니다.

[몰락의 시간]을 읽고



어쩌면 '몰락의 시간'의 주어는 우리일지도 모릅니다.


[몰락의 시간]은 안희정 수행비서이자 '안희정 성폭력 사건'의 첫 번째 조력자였던 문상철 씨가 쓴 책입니다. 이 책에는 사건의 앞뒤 이야기와 본인의 경험이 담겨 있습니다. 책을 읽으면서, 등장하는 인물들이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과 대하는 태도가 흥미로웠습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진보와 보수, 좌파와 우파 등으로 나누거나 어느 편에 서서 그 편의 입장에서 사건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많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보다 책에 나오는 무수한 사람들의 문제점은 어느 당, 편 따위로 가를 문제라기 보다 우리 사회 곳곳에 산재한 문제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캠프 내 청년 정치인이나 활동가들이 대부분 이미지로 소진되고 유세에 동원되어 율동만 하다 돌아가는 건 꾸준히 있어왔던 일입니다. 여느 당을 막론하고 청년은 언제든지 갈아 끼우는 배경 이미지에 불과하고, 사람을 키우는 시스템이 부재하다 보니 당에서 큰 인재보다 외부 인재 영입에 몰두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니까요. 


어느 진보정당 대선 캠프에서 일했던 동생이 두 번 다시는 그 정치인 얼굴을 보고 싶지 않다며 씁쓸해하던 표정이 떠오릅니다. 또 다른 정당 단톡방에 있던 친구는 단톡방에 올라오는 글을 보면 '여기가 진보정당인지 보수정당인지 모르겠다.'라며 혀를 내두르기도 했습니다. 저 또한 언젠가 선거 관련하여 했던 일에 대한 합당한 보수를 받지 못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이들 모두 자신이 옳다고 여기는 일을 하기 위해 했던 일이고 대단한 자리를 바라거나 욕심을 내지도 않았지만, 소모품에 불과했습니다. 


저는 언젠가부터 어른들에게 합당한 대가를 기대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몰락한 시간]에서 말하듯이 관계로 일하고 관례로 살아갑니다. 그것이 무례한 일임을 깨닫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그렇게 살아왔고 그렇게 살아갈 것이니까요. 지금까지 삶을 바쳐 이뤄온 일들의 대가를 그런 방식으로 보상받는다고 여길지도 모르지요. 어른들은 인생경험과 성숙함을 지니고 있지만, 모든 인간이 성인은 아니기에 부족함과 삐뚤어진 사고관 또한 지니고 있습니다.  


야근을 하지 않으면서 야근 수당을 당연히 찍는 모습은 군대에서, 기관에서 누누히 보아온 일입니다. 이것이 너무도 당연하기 때문에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그보다 문제를 제기했을 때 문제를 제기한 사람에게 프레임을 씌우고 자격을 물으며 죄를 묻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근본적인 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메신저의 사적인 영역을 힐난하고 그 전문성을 의심하게끔 공정성을 제기하면서 프레임을 바꾸려 애씁니다. 하지만 '메시지를 반박할 수 없을 때는 메신저를 공격하라'는 수준 낮은 짓일 뿐이죠. 이 수준 낮은 짓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습니다. 모든 일을 관계로 풀어가려는 얕은 행동이 새로운 카르텔을 만들고 낯짝 두꺼운 비겁한 사람들을 만듭니다. 정치인들뿐만 아니라 사회 곳곳에, 자신의 일을 묵묵히 하는 게 아니라 눈에 띄기만을 바라며 살아가는 사람들을 만듭니다.  


[몰락의 시간]에서 또 한 번 흥미로웠던 것은 싱크탱크를 만들어 꾸준히 공부를 했다는 것. 그리고 그 공부의 결과, 이 사회는 점차적으로 고치기 보다 개혁 수준으로 뜯어 고쳐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원인으로 많은 사람들이 유교의식을 들곤 하지만, 역성혁명이 가능한 유교 탓을 하는 건 너무 먼 시대의 것을 끌어와 탓을 하면서 현실의 문제를 회피하는 것 같습니다. 가부장제만을 탓하는 것도 논점을 빗겨가는 모양새인 것 같습니다. 문제는 문제를 회피하기 때문 아닐까요. 세대로 구분하여 탓을 하는 것도 핑계로 들립니다. 한 시대를 같이 살아가는 사람들인 걸요.  


어쩌면 '몰락의 시간'의 주어는 우리일지도 모릅니다. 이 사회를 만든 건 우리니까요. "어린이는 어른보다 한 시대 더 새로운 사람입니다. 어린이 뜻을 가볍게 보지 마십시오. 싹을 위하는 나무는 잘 커가고, 싹을 짓밟는 나무는 죽어 버립니다."라는 방정환 선생의 말을 떠올립니다. 싹을 위하는 나무가 많아지길 바랍니다. 여느 정당이나 단체든, 어느 곳에서든 희망을 갖고 청춘을 바친 사람들이 무너지지 않기를 바랍니다. 모두 무례한 어른이 되지 않기 위해 노력했으면 좋겠습니다.



다시서점,

김경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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