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다시마 Oct 05. 2023

나르시시스트 남편과의 이혼기 1

배신감

*이 글은 이전 '29살에 이혼녀가 되었습니다'와 이어집니다.


네 맘대로 생각해라.


   남편의 성매매 기록과 수많은 유흥업소 출입 기록을 확인 한 후 이상하게도 머리 속이 깨끗해졌다. 정말 순식간에 머리속이 차가워지며 마시고 있던 맥주에 알딸딸했던 기분도 깨끗해졌다. 그리고 웃음이 나더라. 본인의 핸드폰을 들고 키득키득 웃고 있는 나를, 설거지를 마친 남편이 돌아와 물었다.

  "왜? 뭘 봤는데?"

  "와, 진짜 대단하다."

  "왜? 뭐가?"

  남편은 서둘러 핸드폰을 뺏어가며 화면을 확인했다. 마시고 있던 맥주를 치우고 상 정리를 하는 동안에도 계속 웃음이 나왔다. 퍼즐이 맞춰진 속시원한 기분. 그동안 묻고 살던 의문들이 정리되자 개운했던 것인지 아니면 그저 그를 비웃고 싶었던 걸지도 모르겠다.

  "단톡방 보고 그런거야? 그거 그냥 애들이 장난친거야"

  뭐 단톡방에도 내가 보면 안될 무언가가 있던 걸까? 그는 계속 눈치를 보며 이것저것 변명해댔다.

  "아니 카톡 안봤어. 지금은 애들이 있으니까 나중에 이야기하자"

  티비를 보며 놀고있는 아이들을 보고 대화를 피하자 그는 계속 닥달했다. 무엇을 봤는지, 뭘 봤길래 그러는건지 물어보길래 주방 안쪽으로 들어와 괜히 깨끗한 가스레인지를 닦으며 말했다.

  "입출금 내역 문자 봤어. 노래방 갔다가 모텔 갔다가 어떤 여자한테 송금했더라?"

  대답이 없었다.

   "내가 생각한게 맞아?"

   라고 되묻자 그는 말같지도 않은 소리를 해댔다.

   "그 날 너무 취해서 기억이 없어. 진짜야"

   너무 취해서 기억이 없으신거 치고는 새벽에 멀쩡히 걸어 들어오셨습니다. 그런거 치고는 멀쩡히 핸드폰으로 여자에게 송금까지 하셨구요. 말같지도 않은 대답에 웃음이 또 터져서 터벅 터벅 걸어와 쇼파에 앉자 졸졸졸 그가 따라와서 내 손을 잡았다.

   "진짜야. 그 날 같이 갔던 사람들한테 물어봐"

   "그걸 믿으라고?"

   믿을 마음은 이제 없었다. 머리 속이 정말로 차가웠고 당장 무슨 말부터 해야할지 몰라 시선을 돌려 벽을 바라보곤 대답했다.

   "나중에 이야기하자. 지금은 애들 있으니까"

   그는 잡고있던 내 손을 홱, 던지듯 놓고 말하더라.

   "그래 시발. 네 맘대로 생각해라"

   시간이 꽤 흘렀지만 그 때 던지듯 놓아진 손의 느낌은 아직도 선명하다.

   배신감. 그 느낌은 배신감이었다.


미친놈


   새벽내내 잠들지 못하고 뒤척였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 언제부터 저렇게 살아왔을까, 그때도? 설마 그때도 였을까? 꼬리에 꼬리를 물고 생각이 이어졌고 당장 어떻게 해야할지, 이혼을 한다면, 아이들은 어떡하지, 혹은 용서하고 산다면? 혹은..내가 죽는다면..뭐 이런 끝도 없는 생각이 밀려와 뒤척뒤척 거리다가 눈물도 흘렀다. 남편은 항상 내가 아이들을 재울때 새벽까지 혼자 술을 마셨다. 그날 그가 술을 마셨던가? 잘 기억이 나질 않는다. 아마도 마셨던 것 같다. 새벽 무렵 얘기를 나눌까 하다가 당장은 어떤 말도 할 자신이 없어서 닫힌 문 사이로 흘러들어오는 거실의 불빛을 보며 생각했었다.

  '미친놈' 

   저 미친놈. 남편이 성매매에 사용한 돈은 시어머니가 며칠 전 빌려줬던 2천만원 이었다. 그 2천만원을 빌릴때 그는 시아버지와 시어머니를 앉혀놓고 죽는 시늉을 했다. '아이 둘을 키우기 힘들다. 집도 월세로 이사와 앞으로가 무섭다. 밀려오는 카드값이 두렵다.' 그 옆에 죄인처럼 쪼그려 앉아 고개를 들지 못했다. 그런데 저새끼는 그 돈을 그렇게 썼다. 아마 그 돈 뿐만이 아니었겠지. 남편은 종종 시댁에 돈을 빌렸는데 그때마다 귀가가 항상 늦었다. 아니지, 그냥 돈만 있으면 늦게 들어왔다. 우리가 왜 이렇게 돈에 쪼들려 살아왔는지, 생활비를 단 한번도 받지 못한 결혼생활을 하게 된건지, 왜 항상 돈이 없는지..그때가 되서야 알게 되었다. 미친놈 때문이었다. 

   남편의 통장잔고는 그 2천만원은 어디갔는지 단 40몇 만원으로 줄어있었다. 미친놈.. 진짜 미친놈이다. 


   그리고 결국 새벽 4시쯤, 결심했다. 이혼을 하기로. 

   '어?근데 만약 안한다고 하면 어떡하지?'

   남편과 8년을 살며 어떻게 단 한번을 이혼 생각을 안했겠는가? 그때마다 그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남들도 다! 이러고 살아! 참아! 참고 사는거야! 넌 왜 못해?"

   아니다. 남들은 이렇게 살지 않는다. 뭐 몇몇은 이렇게 살겠지만 적어도 그의 말처럼 전부 다! 유흥비로 2천만원을 날리며 살진 않겠지. 성매매까지 하면서 말이다. 

   '안해준다고 하면 소송을 하자.'

   생각이 들자마자 핸드폰을 켰고 이혼 소송을 검색했다. 초록창에 검색어를 입력하고 누르자마자 법무법인이 주르륵 떴다. 지도에 들어가 '거리순'으로 정리한 그 목록에서 가깝고, 커보이며, 믿음직스러워 보이고, 최대한 비싸보이는 곳을 찾아봤다. 네이버 예약으로 변호사와 1:1 상담도 예약할 수 있는 그 곳을, 충동적으로 새벽 4시에 방문 예약하였다.

작가의 이전글 29살에 이혼녀가 되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