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르시시스트 남편과의 이혼기3

어디서 같잖은 거 만나고 와서

by 다시마

변호사를 만나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우리는 협의 이혼을 하였다. 그래서 변호사 사무실에 방문한 것은 이혼과정 중 이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그래도 변호사를 만난 것은 후회하지 않는다. 머리 속이 뒤죽박죽 복잡할 때 충동적으로 만난 변호사에게 이혼의 절차와 과정 등을 자세히 들을 수 있었고 앞으로 어떻게 행동해야하는지도 알게 되어 변호사와 만난 것은 참 잘한 일이었다. 만약 이혼 전 무엇부터 해야할지 모르겠다면 변호사를 만나 상담하는 것을 추천한다. 변호사 상담은 유료였는데 나쁘지 않은 지출이었다.


아무튼, 우리 집에서 가정법원까지 차로 약 20분 거리였기에 변호사 사무실도 그 근처 가장 괜찮아 보이는 곳으로 잡았다. 세상 깔끔하고 고급스러웠던 그곳에 도착해 법무법인 OO이라고 적힌 간판을 읽으며 심장이 어찌나 뛰던지..인생 처음으로 변호사를 만나는데 그게 이혼때문이라니? 상담실에서도 안절부절 펜을 들었다 났다 했던 기억이 난다. 상담해준 변호사는 여성분이었는데 굉장히 딱딱하고 시니컬한 분위기의 사람이었다. 어떻게 보면 ‘불친절하다’ 싶었던 그 사람이 오히려 내겐 좀 위로가 되었다. 왜냐면 이깟 일 쯤 별거 아니고 그렇게 호들갑 떨지 않아도 되며 너보다 더한 사람도, 덜한 사람도 이혼하고 있다. 라는 느낌을 팍팍 주었기 때문이었다. 그땐 참 그 태도가 이상하게도 위로가 되었다.


변호사에게 상황을 설명하고 협의이혼,조정이혼,소송이혼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들었고 앞으로 만약 소송을 하게 된다면 어떤 준비를 해야할지 지금 일어난 일을 어떻게 기록하고 저장해두어야할지 등을 물었다. 또 양육권과 양육비에 대한 자세한 내용도 들을 수 있었다. 양육비가 인쇄 되어 코팅 된 A4용지를 받아서 그와 나의 수입을 대입해 나온 금액은 예상했던 것보다 상당히 적었다. 재산 분활도 우리는 딱히 할게 없었다. 우리 명의의 부동산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그냥 전세 보증금과 공동명의의 차 정도.. 부끄러울 정도로 가볍고 심플했다. 그러나 후에 이혼할때는 오히려 돈으로 개싸움하지 않아도 되어 어찌나 깔끔하던지, 만약 신이 있다면 이런 일이 발생될 걸 알아서 우리가 재산을 불릴 기회를 주지 않으셨던 건가요? 싶더라


그리고 가장 궁금했던 부분을 물었다. 남편의 성매매 증거를 모으지 못했다는 부분이었다. 입출금 내역을 본 게 다였는데 그때 사진을 찍어두지도 못했고, 캡쳐본을 갖고 있지도 않다는 부분을 말하며 만약 소송을 진행한다면 증거가 없는데 어떻게 해야하냐는 질문이었다. 변호사는 그 부분은 남편의 신용카드 사용내역과 입출금 내역을 조회할 수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하였고 또 그 부분과 함께 그동안 남편이 생활비나 아이들 양육에 돈을 쓰지 않았다는 부분도 증명할 수 있다고 하였다. 가장 안심이 되는 부분이었다.


한시간 가량 상담을 진행하고 다음 예약이 필요하냐고 데스크 직원이 물었다. 머뭇거리다가 아니요. 라고 답하곤 사무실을 나섰다. 상담을 마치고 우선은 협의이혼으로 최대한 그를 설득해봐야겠다고 결심하게 되었다. 누군가 내게 “소송하지 그랬어? 위자료도 더 받을 수 있잖아” 라고 말했는데 그때는 그냥 하루 빨리 그와 끝내고 싶었다. 그게 협의 이혼을 하게 된 이유였다.



어디서 같잖은거 만나고 와서


그날 저녁, 아이들을 재우고 거실로 나왔다. 남편은 쇼파에 앉아 술을 마시며 유튜브를 보고 있었다. 이어폰을 끼고 혼자 낄낄거리며 웃고 있었는데 8년을 함께 살아온 그가 굉장히 먼 남 같았다. 내 마음은 이렇게 괴로운데 그는 아무렇지도 않아보였고 편안해보였다.


이 날부터 나는 그와의 대화를 모두 녹음했다. 상대방의 동의없이 녹음을 한다는 것은 법적 효력이 없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녹음을 한 이유는 법적 증거가 아닌 나의 마음을 붙잡기 위해서였다. 그가 내뱉는 마음을 후벼파는 악랄한 말들을 하나하나 녹음해서 곱씹으며 이혼이라는 결심을 굽히지 않기 위해서였다. 혹여나 함께한 세월에 마음이 약해질까봐, 그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며 여태껏 그래왔던 것처럼 그를 용서하게 될까봐 녹음하고 들어가며 마음을 다 잡았다.


소주를 마시며 영상을 보고 웃고있는 그의 옆에 조용히 앉았다. 그는 나를 바라보지도 않았고 이어폰을 빼지도 않았으며 그냥 계속해서 웃으며 영상을 보고 있었다. 마치 내가 보이지도 않는다는 듯 그렇게 굴었다. 이제와 생각해보면 그는 항상 이런식으로 나를 무시해왔었다. 아예 보이지도 않는다는 듯, 없는 존재인 것 마냥. 이것이 나르시시스트들이 주는 ‘침묵’이라는 벌이라는 것을 후에 나르시시스트에 대해 공부하며 알게 되었다.

내가 미안하다고 하지 않는 이상, 그는 우리 사이에 갈등이 생기면 늘 나를 없는 사람 취급하며 ‘벌’을 주었다.

그가 나를 바라보고 이어폰을 빼주길 바라는 대신 그냥 목소리를 먼저 내었다.


“나 변호사 만나고 왔어”


내 말에 그제서야 그는 슬쩍 나를 바라보았다.


“변호사가 그러는데, 어차피 유책배우자는 당신이기 때문에 우리가 소송을 해도 내가 이길 수 밖에 없대. 그러니 그냥 협의이혼으로 진행하자”


내 말에 나는 사실 그가 미안하다고 해주길 바랬던 것 같다. 이제서라도 미안하다고 빌며 이혼만은 안된다고 해주길 바랬었다. 그러나 그가 내뱉은 말은 지금도 선명히 기억난다. 그는 이어폰을 빼며 신경질적으로 집어던지곤 비릿한 눈동자로 내게 물었다.


“내가 왜 유책배우자야?”


내가 왜 유책배우자냐니? 황당한 그 물음에 어버버, 말문이 막혔다. 분노로 가득찬 그의 눈을 바라보는데 황당하면서도 답답했고, 무엇보다 무서웠다. 도대체 어떤 사람이여야 이렇게 반응할 수 있는건지, 그가 정말 사람은 맞는건지. 속이 답답하고 무서웠다. 그 답답함을 굳이 풀어 설명하자면 벽에 대고 말하는 듯한 기분. 딱 그거였다.


“왜 유책배우자냐니, 성매매하고 빚까지 내면서 술집에 드나든 게 유책 배우자가 아니야?”


떨리는 마음을 진정시키며 꾸역꾸역 대답을 이어나갔던 것 같다. 비릿한 눈동자와 핏발 선 눈을 바라보며 약간의 구역질도 느꼈었다.


“말 같지도 않은 소리 하지마. 어디서 같잖은 거 만나고 와서.”


그말을 끝으로 그는 다시 이어폰을 꽂았다. 그리고 다시는 나를 바라보지 않았다. 나 역시 더이상 할말이 없어 조용히 일어나 방으로 향했다.


상대는 대화가 통하지 않는다.

그 날 웃기게도 이 밈이 머리 속에 둥둥 떠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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