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다시마 Aug 04. 2021

남편의 짜증 Ⅰ

결혼 7년차의 위기

꼬마 신부와 꼬마 신랑


  나는 22에 결혼을 했다. 남편은 결혼 당시 25이었다. 우리는 어린 나이에 과감히 결혼을 선택했고 아이도 둘이나 낳았다. 그리고 지금은 결혼 8년차. 나는 29이 되었고 남편은 32이 되었다. 

  어린 나이에 결혼해서 힘들지 않았냐고? 물어서 뭐하나? 죽을 듯이 힘들었다. 한 5년간은 정말 '너 죽고 나 죽자' 하며 미친듯이 싸운 기억밖에 없다. 이혼얘기도 수없이 나왔고 실제로 1년간 남편의 타지 취직으로 별거(?)도 해보았다. 

  그러다 어느 날, 내게 우울증이 찾아왔다. 둘째를 낳고 생긴 산후 우울증이 치료되지 않고 1년정도 이어지며 나를 괴롭혔다. 어느 날은 아이들을 어린이집에 데려다주는 길 '애들만 데려다주고 오늘은 꼭 죽자' 했던 날이 있었다. 그 날 아이들을 등원시키고 횡단보도에서 신호가 바뀌길 기다리다가 문득 '그런데 내가 죽으면 우리 애들 어린이집엔 누가 데려다주지?'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 날, 정신과를 예약했다. 

  그 이후로 나는 지금까지 계속 우울증과 불안장애, 불면증을 치료하기 위해 정신과에 다니고 있다. 그리고 놀랍게도 약을 먹고 상담을 받게 된 이 후로 남편과의 사이가 매우 좋아졌다. 결혼 생활 내내 내가 불행한 것은 모두 남편 탓이라고 생각하며 살았는데 실은 내게도 문제가 많았다는 것을 치료를 통해 알게 된 것이다. 그렇게 5년간의 전쟁을 끝내고 우리는 작년부터 꽤 행복하고 사랑하며 살고 있었다. 남편도 내가 많이 변했다며 내가 변하니 본인도 변한 것 같다는 말을 자주 했었다. 


다시 전쟁이 시작됐다.


   그런데 다시 전쟁이 시작됐다. 약 2년간 행복했던 결혼 생활이, 와 이런게 진짜 행복이구나! 했던 결혼생활이 사실은 종전이 아니고 휴전이었다니! 

   또 놀랍게도 휴전을 끝낸 건 내가 아니라 남편이었다. 어느 날 부터 남편은 내가 무슨 말만 하면 짜증을 내기 시작했다. 대화중에도, 카톡에서도, 전화를 걸어도, 그냥 무슨 말만 하면 화를 내기 시작한 것이다. 처음에는 '그래, 나도 저럴때가 있었으니까 이해해주자. 남편도 무언가가 힘들어서 저런 가 보다.' 하며 남편이 짜증을 내도 일보후퇴하며 큰소리 내지 않았다. 그리고 아이들이 잠든 저녁이나 다음날 카톡으로 조용히 남편에게 '너의 짜증으로 이래저래해서 서운했고 섭섭했으니까 다음부터는 주의해줘. 그리고 내 잘못도 맞는 것 같아.' 라며 의견을 전달했다. 남편도 내가 화내지 않고 마음을 전달하니 오히려 '나도 미안했어' 혹은 '너도 다음부터는 그러지 말아줘' 라는 등의 대화를 해줬다. 이정도만 해도 우리는 크게 문제가 없겠구나 싶었는데 어느 순간 남편의 짜증이 도를 넘기 시작했다. 

   며칠 전 우리는 이사를 했다. 이사 내내 남편은 내게 짜증을 냈고 무언가를 시켜도 하는 둥 마는 둥 쇼파에 앉아서 핸드폰 게임을 했다. 이사로 인해 에어컨 이전 설치를 했야했는데 새로 이사 온 아파트는 실외기를 실외기 전용 베란다에 두어야했다. 그곳에는 턱이 높아 실외기 선반이 필요했는데 그 선반을 구매했을 때 남편이 내게 물었다.

   "이걸 왜 사?"

   "아, 거기 아파트는 실외기를 베란다에 둬야하는데 턱이 높아서 이거 위에 놓아야한대"

   "실외기를 베란다에 두면 덥지 않아?"

   "실외기 전용 베란다라 괜찮대. 문 닫으면 그냥 밖에 둔거랑 똑같대" 

  이렇게 친절히 설명해주고 이삿날 당신이 이 선반을 조립해줘야 에어컨 설치를 할 수 있다고 이야기도 해줬다. 그렇게 이삿 날, 짐을 다 옮기고 실외기 선반 조립을 남편에게 부탁했다. 

   "저것 좀 조립해줘"

   "저게 뭔데?"

   "실외기 선반"

   "저게 왜 필요해?"

   "응? 그때 말했잖아 실외기 베란다에 두려면 필요하다고"

   "실외기를 베란다에 두면 덥지 않아?"
   엥? 이 대화 저번에 했던 그대로인데? 뭐지? 하며 남편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남편은 핸드폰 게임을 하며 쇼파에 널부러져 있었고 나는 청소를 하며 땀에 온 몸이 다 젖어있었다. 밀대를 내려놓고 전혀 짜증내지 않고 조용히 말했다.

   "자기야 우리 이 대화 저번에 했었어" 

   남편은 그때서야 핸드폰에서 시선을 떼서 나를 쳐다봤다. 그리고 짜증을 잔뜩 내며 대답했다.

   "기억 안나. 그리고 저걸 내가 왜 조립해야돼?" 

   "그럼 내가 할까?"

   "기사한테 하라해."

   "기사님은 우리가 조립해 놓으래"

   "아 짜증나게 진짜"

   이런 식이었다. 쓰지 않는 짐을 박스에 담아 창고에 옮겨달라고 이야기해도 남편은 있는대로 짜증을 내며 박스는 어디에 있는지, 박스의 크기가 맞지 않는다는지, 봉투는 어디에 있는지 하나하나 물으며 내게 짜증을 냈다. 결국 나는 그 짜증과 질문 폭탄에 견디지 못하고 나는 바쁘고 너는 어린애가 아니니 스스로 찾아보라고 대꾸했다. 남편은 옮겨달라던 짐을 집어던지며 버럭 소리를 질렀다.

   "씨발 진짜! 짜증내고 지랄이야!" 

   내가? 내가 짜증을 내고 있다고? 지금 하루종일 나한테 짜증을 내고 있는게 누구지? 순간 넋이나가 남편을 바라보았다. 나는 정말 할 말이 없었다. 내가 지금 짜증을 냈다고? 아이들은 놀라서 우리를 쳐다보았고 나는 싸우면 안된다는 생각에 "그럼 놔둬. 내가 이따 치울게" 라고 조용히 대답했다. 계속 남편은 내게 이런 식이었다. 


너 거짓말 하는 거 내가 모를 것 같아?


   이번 주말 우리는 같이 중고차를 보러 가려고 약속했었다. 차가 한대인데 출근길이 멀어져 남편이 우리 엄마의 차를 빌려쓰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더위에 차 없이 돌아다니는 엄마가 걱정되기도 하고 (사실 전화와서 차가 없어 불편하다고 징징되는 엄마의 짜증에 나도 지쳐있었다) 또 남편이 언제까지 엄마의 오래된 차를 끌고 다닐 수 없었기에 내가 경차 한대를 중고로 구매하자고 결정했다. 그런데 대뜸 어제 남편이 약속이 있다고 주말 하루 외출을 하겠다고 하는게 아닌가? 그래서 나는 정말로 '그럼 차는 언제 보러가지?' 궁금했다. 그래서 아무 뜻없이 그대로 물었다.

   "자기야 그럼 주말 약속 있으면 우리 차는 언제 보러갈까?"

   나는 그때 입 안에 밥을 한가득 물고 티비를 보며 정말 아무 생각없이 물었다. 남편은 짜증이 난 목소리로 

   "차가 그렇게 급해? 다담주에 보러가" 

   티비를 향하던 시선을 돌려 남편을 바라봤다.

   "엄마가 너무 불편해해서 나는 최대한 빨리 사고 싶었는데.."

   "너 지금 이 말 왜 하는지 알아. 너 거짓말 하는 거 내가 모를 것 같아?"

   엥? 무슨 거짓말? 순간 머리 속이 복잡해졌다. 나는 정말 아무 뜻 없이 있는 그대로 말한 건데 차가 급하다는게 거짓말인가? 저게 무슨 뜻이지? 

   "그게 무슨 소리야?"

   "너 내가 약속있다고 나가는 게 싫어서 그러는 거잖아."

   순간 머리를 망치에 맞은 것 마냥 띵해졌다. 이게 무슨 소리인가? 갑자기 왜 대화가 이렇게 되지? 이 인간이 이 나한테 지금 뭐라는 거지? 

   "자기야 나한테 피해의식 있어? 왜 그렇게 말해?" 

   나도 화가 나기 시작했다. 아니 그냥 '이번 주는 약속이 있으니까 다음주에 보러가자' 라던지 '토요일 말고 일요일에 갈까?' 라던지 아무튼 그렇게 한마디 해주면 되는 걸 가지고 차가 그렇게 급하냐는 둥 니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둥 말도 안되는 소리를 해대는 남편에게 나도 정말 화가 나기 시작했다.

   "피해의식? 너 내가 너 거짓말 하는 거 모를 것 같냐고" 

   "아 진짜 답답해죽겠네. 왜그래? 뭐 나한테 불만 있어? 왜그러냐고 요즘" 

   "난 니가 하는 말이 그렇게 들렸어"

   "난 그런 뜻 아니였어. 그냥 말한거야. 왜그래 도대체? 왜 요즘 내가 무슨 말만 하면 잡아먹을라 그래?" 

   언성이 높아지고 정말 싸움이 날 것 같아 잠시 숨을 고르고 나는 대답했다.

   "그래. 알겠어 그럼 다담주에 차 보러가자" 

   싸우기 싫어서 또 다시 나는 일보후퇴를 결정했다. 

   "아 나는 니가 이러는게 싫어!" 

   남편은 또 다시 소리를 버럭 질렀다. 뭐가 또 싫다는거야? 뭐가? 

   "뭐가?"

   "그렇게 니 혼자 풀 죽은 척, 모든 걸 체념한 척 하는게 꼴보기 싫다고!"

   이제 남편은 나의 일보후퇴마져 '척'으로 보이나보다. 그럼 어떻게 반응해줘야하지? 예전처럼 미친듯이 싸우길 원하는 건가? 아니면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반응해야하는 걸까? 

    남편은 그냥 내 모든 것이 싫어지기 시작한 것 같았다. 문득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하는 걸까? 라는 생각이 밀려와 눈물이 났다. 그러나 내가 우는 모습을 보이면 남편이 내가 우는 게 싫다고 할 것 같아 고개를 숙이고 밥을 먹었다. 눈물이 제발 떨어지지 않고 고여서 마르기를 바라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