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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시마 Aug 09. 2021

남편의 짜증 II

결혼 7년 차의 위기

야! 오빠 바람피우는 거 아니야?


   남편의 잦은 짜증 이후로 나는 거의 숨 죽인 듯 살았다. 남편이 어느 부분에서 또다시 짜증을 낼지 몰랐기 때문에 항상 긴장 상태였다. 실제로 너무 긴장을 해서인지 자려고 침대에 누우면 극도의 피로가 몰려왔다. 이번 주는 월, 화, 수 어찌어찌 3일을 버티다 ‘이러다가 몸살 날 것 같다. 혹은 화병이나’ 싶어 목요일 저녁 동네 친구랑 약속을 잡았다. 10시까지라도 밖에 있고 싶어서였다.

   친구를 만나 한잔 두 잔 술잔을 기울이다가 속이 답답해 남편과 있었던 일을 털어놓았다. 결혼 초부터 나와 남편의 생활을 옆에서 가장 가까이 지켜보던 친구는 내 이야기를 다 듣고 나서 묻기를

   “야 오빠 일주일 몇 번 나가?”

   “한 번?”

   “야.. 오빠 바람피우는 거 아니야?”

   “에이 말도 안 돼”

   “아니 그동안 알던 오빠랑 너무 다른데?”

   “나도 그래서 힘들다.”

   사실 바람 생각을 안 해 본 건 아니다. 그러나 내가 아는 우리 남편은 정말 거짓말을 못 하는 성격이라 만약 바람이었다면 내게 바로 들통이 났을 것이다. 오히려 나는 남편이 마치 내가 싫어진 것 같이 구는 것에 더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이 사람이 이제 내가 싫어졌나? 내가 뭘 잘못했나? 뭐 때문에 내가 싫어졌을까?’

   그런데 한참 내 이야기를 듣던 친구가 짜증이 난 다는 듯 소리를 질렀다.

   “야! 너 자꾸 니 잘못 찾지 마! 내가 들어보니까 네가 잘못한 게 없는데 왜 자꾸 ‘내 잘못 아닐까?’ 하고 있는 거야? 너 가스 라이팅 당해?”

   순간 친구의 말에 속이 뻥 뚫리는 느낌이 들었다. 자꾸 내 잘못을 찾으며 남편을 옹호하고 있던 것을 깨달은 것이다. 그렇다. 가스 라이팅. 나는 자꾸만 남편의 억지를 나의 탓이라며 그를 옹호하고 있었던 것이다.  

    집에 돌아와 현관문 앞에서 나는 한참 머뭇했다. 도어록을 누르기가 싫었다. 또 남편이 어디서 어떻게 짜증을 낼지. 혹시 싸움이 나진 않을지 긴장하며 그의 눈치를 봐야 하는 것이 두려웠다.



공포의 주말


  맞벌이에다가 둘 다 직장이 약 한 시간 거리로 떨어져 있다 보니 우리는 평일 거의 함께하지 못했다. 퇴근하고 들어와 정신없이 아이들 저녁을 먹이고 씻기고 재우는 순간 9시가 훌쩍 넘었기 때문이다.

  아무튼 이번  주말에는 남편이 친구들과 낮술 약속을 잡았고 나는 아이들을 보아야 했다. 불만은 없냐고? 차리리 요즘 같이 남편이 잔뜩 날이 서있을 때는 남편이 외출을 해주는   좋았다. 그리고 토요일 오전 10시에 나가 오후 7시가 넘어 들어온 남편은 들어오자마자 대뜸 '내일 A 부부가 집들이 온대'라고 말했다. '아직 이사한  일주일밖에 되서 집이 엉망인데? 갑자기? 내일 일어나자마자  치워야겠다.'라는 생각에  피곤이 몰려왔다. 그렇게 일요일 아침 비몽사몽 일어나 집을 치우고 청소하는 동안 남편은 숙취로 계속 누워만 있었다. 아이들은 바쁜 내가 놀아   없다는  알아서인지 누워있는 아빠에게 계속 매달렸고 놀이터에 가고 싶다며 칭얼거렸다.

   "자기야. 애들 데리고 놀이터 좀 다녀와"

   최대한 상냥한 목소리를 내기 위해 노력하며 남편에게 말했다.

   남편은 들여다보던 휴대폰을 내려놓고 아이들에게 짜증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주말 하루는 엄마, 아빠도 쉬어야 되지 않겠어? 너네 어제 키즈카페 다녀왔다며"

   나는 어이가 없어서 개던 빨래를 내려놓고 말했다.

   "자기야. 자기는 어제 쉬었잖아"

   남편은 다시 핸드폰을 들더니 짜증스럽게 대꾸했다.

   "쉬긴 뭘 쉬어! 여기저기 왔다 갔다 하느라 얼마나 힘들었는데!"

   그래. 넌 네가 탈 차를 사러 혼자 다녀오고, 한 시간 만에 차 계약을 마치고 미용실에서 머리를 하고, 친구들을 낮 12시부터 만나 저녁 7시까지 부어라 마셔라 하던 게 쉰 게 아니구나. 그럼 나는? 나는 어제 하루 종일 아이들을 보고 키즈카페에 갔다가 마트에서 필요한 걸 잔뜩 사 와서 아이들을 먹이고 씻기고 청소하고 정말 잠시도 앉을 틈이 없었고 결국 오늘도 너의 손님들 때문에 쉬지도 못하고 또 집을 치우고 있는데? 마음속이 답답하고 부글부글 끓었지만 남편에게 대꾸하지 않았다.

   이쯤 되면 다들 '아니 왜 화를 안내? 아오 답답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우리 남편은 내가 화낸다고 절대 들을 사람이 아니다. 오히려 눈을 매섭게 뜨고 얼굴을 잔뜩 굳히며 내게 '너 또 억지 부린다.'라고 말할 것임을 나는 정말 잘 알고 있었다. 7년을 살면서 깨달은 것은 남편은 화를 내봤자 듣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내가 청소를 거의 끝내갈 때쯤 남편에게 분리수거를 부탁했다. 손님이 오는데 현관에 쌓여있는 택배 박스들이 거슬렸기 때문이다. 남편은 구시렁대며 박스와 플라스틱을 챙겼고 나는 남편이 베란다에 있는 비닐과 캔을 챙기지 않는 걸 보고 물었다.

   "자기야! 캔이랑 비닐은?"

   남편은 신경질 적으로 대답했다.

   "내가 저걸 어떻게 한 번에 들어?!"

   순간 황당하였다. 그냥 '이거 버리고 와서 한번 더 내려갈게' 라던가 '먼저 이것만 버리고' 라던가 충분히 아무렇지 않게, 친절히 대답할 수 있는 일이었다. 남편은 지금 내게 마치 편의점 알바가 '담아드릴까요?'라고 물으면 '그럼 이걸 그냥 들고 가?'라고 대답하는 손님같이 굴었다.

   남편의 친구가 오기 한 시간 전, 나는 외출을 결정했다. 이대로 집에 있다가는 남편의 친구 앞에서 남편을 참지 못하고 싸움이 날 것 같았다. 어찌어찌 잘 참고 웃으며 손님을 보내도 내 속의 부글거리는 화를 주체할 수 없을 것 같았다.

   "나는 나갔다 올게. 친구랑 놀고 있어."

   남편에게 말했다.

   "어디가?"

   "그냥 나가서 커피도 좀 먹고, 필요한 것 좀 사 오고 하려고"

   "왜?"

   "아 그냥 좀 쉬고 싶어서.. 술도 별로 안 당기고"

   화나지 않은 목소리로 나는 남편에게 양해를 구했다. 그래도 되냐고, 남편은 흔쾌히 알겠다고 했다. 서둘러 준비를 하고 나서려는데 남편이 붙잡았다.

   "언제 올 건데?"

   "왜? 나 있어야 해? 아 혹시 애들 때문에 그런 거면 첫째만 데려갈까?"

   "아냐 혹시 불편해서 그런 거면 그냥 오지 말라고 할까?"

   "아니! 난 괜찮아! 자기 만나고 있어!"

   나는 정말로 괜찮았다. 내가 지금 불편한 건 남편 친구가 아니고 남편이니까. 그리고 내가 손님을 부르지 말라고 했으면 남편은 분명히 더 불 같이 화를 냈을 것이다.

   

   외출 후, 멍하니 카페에 앉아있는데 남편에게 카톡이 왔다.

   '언제 들어올 거야? 손님 불러놓고 이게 무슨 짓이야? 나 지금 많이 참고 있어'

   어이가 없었다. 참고 있다니? 내가 부른 손님인가? 지가 대뜸 불러놓고? 그리고 그 부부는 나와는 딱 한번 만났고 남편과는 수 없이 술자리를 가진 부부였다. 나 없이 셋이 충분히 많이 만나 온 사이였다.

   '자기야. 내가 부른 것도 아니고 나 없이도 잘 만나던 사이였잖아. 그리고 나간다고 했을 때 자기가 알았다며, 애초에 내가 나가는 게 싫었으면 말을 해주지'

   '아니 애초에 나갈 생각이었음 처음부터 이야기를 해야지. 왜 그 뒤에 얘기하냐고'

   '처음엔 나갈 생각 없었는 데 자꾸 짜증을 내니까 나왔어. 힘들어서'

   '그럼 이야기를 해야지 내가 짜증을 낸다고'

   아... 내가 짜증을 낸다고 이야기하면 본인이 고쳤을 것인가? 이미 수없이 매일 짜증 좀 그만 내라고 빌어왔는데...

    '제발 억지 좀 그만 부려. 왜 이렇게 자꾸 시비를 걸어. 그리고 내가 부르지 말라고 했으면 자기는 그걸로  더 화냈을 걸?'

    '됐다. 내가 너랑 무슨 얘기를 하겠냐"

    남편은 늘 이런 식이 었다. 무언가 일이 잘못되면 항상 내 탓을 했다. 네가 예민해서, 네가 잘못해서, 네가 못 참아서, 네가 네가 네가!!

    그리고 실로 오랜만에 이혼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다. 객관적으로 내가 잘못했던, 남편이 잘못했던 더 이상은 이렇게 못 살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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