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계절 산책

겨울 숲에서 맡은 엄마의 밥 냄새

by 다시 나

매일 수십통의 통화를 하고, 수많은 거절을 받고, 그 과정속에서 적잖은 좌절을 겪는다.
직장에서의 나를 벗고 소음이 지워진 겨울 숲으로 도망치듯 오대산의 겨울숲에 들었다.
지친 마음이 데려간 겨울 숲은 태고적부터 적막속에 있었던 것처럼 고요했고
나뭇잎을 떨구어 낸 빈 공간 속으로 푸른 하늘이 그대로 내려 앉았고
무음의 진공 속에서 바람이 메이리가 되어 지친 나를, 어루만진다.


상원사에서 월정사까지 오대천 계곡을 따라 펼쳐지는 선재길,
구불구불 강물길을 따라 하늘까지 뻗어있는 전나무와
소복히 쌓인 하얀 눈위를 걸으며 타인이 아닌 오직 나에게만 집중한다.
차가운 겨울 공기에 뺨은 불그스레 빨개지고
온갖 잡념들과 소음으로 혼란스러웠던 머리는 무서우리 만치 명징하다
호흡을 깊게 들이마쉬고 깊게 뱉을때 코끝은 알싸하게 맵고
공기중에서는 이상하게도 포근한 밥냄새가 난다
어릴적 친구들과 놀다 엄마가 밥먹으라고 부르면
한걸음에 달려가 엄마의 밥상 앞에 앉아서 맡았던
따뜻하고 다정한 밥냄새가 난다.

밥냄새 때문인지,
걸을때마다 뽀드득 뽀드득 거리는 눈소리 때문인지
선재길을 걷는 동안 겨울은 아이같은 계절이라는 생각을 했다.
환하게 시작하는 봄, 덩달아 들뜨게 하고 , 앞다투어 꽃이 피기시작하는 봄을 지나
푸르름을 자랑하는 여름을 지나
모든것을 절정에 이르게 하는가을을 지나
끝에서야 마주하게 되는 계절, 겨울.
꽃은 졌고 , 푸르름은 지워졌고, 절정은 사라졌고 아무것도 남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 텅 빈 계절
죽음과 멈춤의 모습을 하고 있는 이 겨울 숲이
사실은 온 힘을 다해, 사력을 다해 꽃망울을 품고 있음을 목격한다.
꽁꽁 얼어붙은 강물 아래에서는 기어코 바다로 향하는 저 물줄기처럼
54세의 내 삶도 지금 가장 뜨겁게 흐르고 있음을 비로소 믿게 된다.
나는 다시 치열한 삶의 현장으로 돌아갈 힘을 얻는다
겨울 숲이 주는 귀한 선물을 가슴에 품고 나의 봄을 준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