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발굽 소리가 언 강에 깃들듯
어느 겨울밤, 갑자기 둑이 터졌다
지친 하루 끝에 회사 주차장을 빠져나오며 해가 유난히 짧고 추운 겨울이라고 생각했다. 저녁을 먹고 피로에 겨워 자리에 눕던 순간, 가슴 한복판이 일렁이더니 눈물이 쏟아졌다. 멈추려 입을 꾹 다물고 주먹을 불끈 쥐어도 소용없었다. 소리 없이 흐르던 눈물은 꾸역꾸역 참던 목구멍을 뚫고 터져 나와, 어느덧 짐승 같은 울부짖음이 되었다.
그날 이후 그 밤의 소리가 자주 떠오른다. 그것은 내 삶이 보낸 절박한 신호였다. 강둑이 무너져 마을을 집어삼키듯, 나의 임계치가 한계에 다다랐음을 온몸으로 증명하는 경고였다.
나는 보험을 컨설팅한다. 고객의 리스크를 분석하고 비교하여 최선의 대안을 제시하는 것이 내 일이다. 10여 년의 조직 생활을 거쳐 현장 영업을 시작한 지 6년, 나에게는 결코 타협하지 않는 원칙이 하나 있다. '고객 중심일 것.' 나를 중심에 두지 않고 고객의 입장에서 최선을 찾는 이 원칙은 험난한 영업 현장에서 나를 지켜준 버팀목이자, 꽤 높은 성과를 내게 해 준 자부심이었다.
하지만 이 견고한 원칙이 가끔 날카로운 칼날이 되어 돌아온다. 나의 진심 어린 최선이 상대에게 그저 '영업꾼의 욕심'으로 치부될 때, 그 자괴감은 켜켜이 쌓여 독이 된다. 도망치고 싶고, 이 일을 하는 내가 미워지는 순간들이 있다. 며칠을 들여 최선의 안을 찾아 제시했지만, 돌아오는 것은 침묵이거나 냉담함일 때가 있다. 그 순간의 상처는 수고로움의 문제가 아니라, 나라는 사람에 대한 부정처럼 남는다.
그 겨울밤의 통곡은 아마도 그렇게 쌓인 독소들이 나를 집어삼키려 했던 순간이었을 것이다.
그 주말, 나는 겨울 숲을 찾았다.
눈이 꽁꽁 얼어붙은 산길은 아이젠 없이는 한 발짝도 허락하지 않았다. 쇠발톱을 장착하고 굽이치는 강가를 지날 때, 숲에서는 마치 탱크가 지나가는 듯한 거친 소리가 났다. 수십 명의 발걸음이 만들어내는 그 육중한 소리에서 나는 고대 말발굽 소리를 들었고, 그 밤 나의 울음을 떠올렸다.
어느 책에서 읽고 반해버린 이야기가 있다.
겨울에 말을 타고 언 강 위를 지나가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이듬해 강이 풀리고 나자 그곳에서 말발굽 소리가 들렸다고 한다, 강이 얼어갈 때 소리도 같이 얼어 봉인되었다가, 강이 플릴 때 되살아난 것이다, 말도 사람도 진작에 사라졌지만, 그들이 있었음을 증명하는 소리가 남는다는 것이다
나는 그 소리들 속에 그 밤의 울부짖음을 묻기로 했다. 짐승 같은 서러움과 들끓던 자괴감을 아이젠의 쇳소리에 섞어 언 강물 아래 깊이 봉인했다.
마침내 봄이 오고 강물이 풀릴 때, 내가 묻어두었던 울음도 함께 봉인해제 되리라. 그 울음도 강물을 따라 유유히 흘러가 버리리라.
삶은 가끔 묵묵히, 거리를 두고 응시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나란히 걷던 삶에서 잠시 멈춰 서서 내 안의 나를 기다려주는 시간. 지금의 시련이 삶의 전부일 수 없고, 이 힘듦 또한 영원할 리 없다. 그렇게 조금 떨어져 물끄러미 나를 바라보다 보면 의외로 미처 보지 못했던 감사가 고개를 든다.
나는 그 감사함으로 비워진 마음을 다시 채운다. 숲을 내려오는 길, 나는 아직 오지 않은 봄을 상상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