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수증과 물고기

by life barista

출근할 때마다 주머니에서 뭔가 발견된다. 오늘은 호남집 영수증이 나왔다. 호남집은 몇 주 전 갔던 생선구이집이다. 사실 이날 저녁 메뉴는 닭 한 마리였다. 넷이서 닭 두 마리가 들어갔다고 하는 큰 대자를 먹었지만, 우리는 포만에 이르지 못했다. 우리는 올 때부터 종로 5가 맛집의 양대 산맥인 닭 한 마리와 생선구이 중 무엇을 먹을까 고민했던 차라, 누가 먼저라 할 것도 없이 생선구이집을 2차로 합의했다. 예산은 훌쩍 초과했지만, 또 언제 와서 먹어보겠냐는 말에는 거부할 수 없는 설득력이 있었다.



비가 추적추적 내렸다. 우리가 방금 먹고 나온 집은 닭 한 마리 골목 초입이었다. 좁고 낡은 먹자골목 여기저기서 일본인, 중국인, 가끔 서양인들이 장사진을 치고 있었다. 호객행위에 걸린 탓에 첫 집에서 먹은 게 후회스러웠다. 다른 가게들은 그야말로 북새통이었다. 골목 첫 집은 무조건 지나쳐야 한다는 건 보통 맞는다. 맛도 맛이거니와, 양이 부족해 저녁을 다시 먹어야 한다니 사실 억울했다.



닭 한 마리 골목을 벗어나자마자 생선구이집 간판이 어둠 위로 사이좋게 떠 있다. 비 오는 토요일 늦은 저녁, 고향인 듯한 정겨운 이름이 박힌 간판들 사이에서 호남집을 찾았다. 택시 기사님이 추천한 곳이다. 가게 밖에선 팔순 가까운 할머니가 생선을 굽고 있다. 출입문, 주방, 식탁, 주름진 일손 등 여러 면모가 딱 봐도 맛집이었다.


닭 두 마리를 먹고 온 사람들이라곤 믿기지 않을 정도로 우린 많이 먹었다. 임연수, 고등어, 굴비까지 군침 도는 색깔로 구워져 나왔다. 오징어볶음도 일품이었다. 밥에 술까지 첫 끼처럼 싹 비웠다.


생선구이가 동태탕을 불러냈다. 동태탕은 지난 토요일 광주식당에서 먹었다. 우리는 동묘역 만물시장 가파른 뒷골목에서 한 시간을 기다렸다. 우리 앞뒤로 육십 대 부부가 티격태격했다. 무슨 동태탕을 이렇게 기다려서 먹느냐. 여자분이 투덜댔다. 남편으로 보이는 백발 아저씨는 머쓱해져선 30분만 기다리면 된다고 에둘렀지만, 30분은 진작 넘었다. 뒤에 있던 아주머니는 급한 마음에 빈자리를 확인하러 왔다 갔다 했다. 의자를 더 놔도 될 것 같은 데, 손님을 기다리게 한다며 볼멘소릴 계속했다.


사람들 등살에 만물상 주인장이 디스플레이한 등산용 지팡이가 자꾸 쓰러졌다. 어제 내린 비가 깨진 우수관에서 샜다. 깨진 부분을 감싼 낡은 비닐은 더 이상 버틸 수 없다는 듯 팔려고 내놓은 시계 위로 빗물을 계속 토했다. 저걸 팔 수 있으려나 걱정이 되었다.



동태탕은 시원하고 깔끔했다. 유명인들이 여럿 다녀간 광고도 있다. 그랬으니 나 같은 사람까지 차례가 온 것이다. 기다림에 불평 불만했던 사람들은 모두 말없이 동태탕을 먹는다. 한결같이 테이블로 쏟아진 머리통에서 사람 사는 소리가 났다.


주머니에 영수증을 다시 구겨 넣었다. 함께 한 얼굴, 음식, 그 색깔, 소리, 스쳐 지나간 이방인들도 함께 구겨졌다. 어디로 떠나고, 먹고, 만나고, 스치고, 잊는다. 그때마다 조금이지만 돈이 필요하다. 그래서 오늘도 출근한다. 딱 그만큼만 벌어야지. 때마침, 오늘은 월급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