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과 끝에 가슴 벅차길 바라며
순서는 의미를 만든다.
무의미한 시간에 순서를 정해 첫날과 마지막날을 만든 건 얼마나 똘똘한 발명인가.
처음은 없는 것에서 있는 것으로의 변화이고,
끝은 그 반대다.
신이 아닌 이상 절대적인 없음에서 뭔가를 만든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니,
처음이란 나에게 없던 것에서 있는 것으로 나타났을 뿐이고,
끝은 나에게 있던 것에서 없는 것으로 감춰졌을 뿐이다.
아무려면 어떤가.
삶이란 결국 만사가 내게 어땠는가를 묻는 일 아니던가.
2025년이라는 시간의 한 묶음동안,
만사는 나에게 어땠는가.
한 권의 소설을 썼고, 두 권의 독서 에세이를 썼다.
그 중 한 권은 출판계약을 앞두고 있다.
덕분에 한 동안 뭔가 기대할 수 있게 되었다.
AI와 인간의 차이에 대해 말들이 많다.
묻는 대로 척척 대답하는 AI가 '생각'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일 것이다.
인간만 할 수 있다고 믿어왔던 생각과 말을 AI가 한다면 인간과 뭐가 다른가,
인간의 생각과 말의 본령은 무엇인가,
이런 물음들이 줄을 잇고 있다.
AI가 ‘생각하는 것처럼’ 보인다고 해서, 정말로 생각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이 혼란은 잘못된 서술어 사용에서 비롯된다.
다들 동의하는 바와 같이
AI는 생명체가 아니라, 기계다.
기계인 AI에게 적당한 서술어는 '작동한다' 이다.
생각한다, 말한다라는 표현은 생명체인 인간에게만 사용해야 한다.
가속페달을 밟았을 때 빨라진다고 해서, 자동차에게 열정이 되살아났다고 하지 않는다.
멈춤페달을 밟았을 때 느려진다고 해서, 자동차에게 자제력이 대단하다고 하지 않는다.
자동차는, 인간이 '생각'한대로 잘 '작동'했을 뿐이다.
AI도 마찬가지다.
문제는, AI가 인간의 언어로 작동한다는 것에 우리가 너무 큰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질문해야 하지 않을까?
생명체인 인간의 언어란 무엇인가?
언어가 생각의 표현이라면, 생명체인 인간의 생각은 무엇인가?
생명이 무엇인지,
특히 인간이라는 생명체의 생각과 말이 무엇인지,
기계인 AI의 작동 결과를 보면서 더욱 캐묻게 된다.
나의 시작과 끝이 나에게 달려있지 않은 것이 생명체의 특징이다.
생명은 죽음과의 관계속에서 의미를 부여받는다.
인간은 죽음의 영향력 아래에서 생각하고 말하는 유일한 존재다.
그것이 의식적이던 무의식적이던 말이다.
시작과 끝이 나에게 달려있지 않은 인간에게 생각과 말은 둘 중 하나다.
시작과 끝이 나에게 달려있는 것처럼 착각하거나,
시작과 끝이 나에게 달려있지 않다는 것을 인정하거나.
죽음을 인정한 삶의 자유와 선택과 책임에 대한 생각과 말은
죽음을 착각한 삶의 그것과 다르다.
AI에게 잘 질문하라고 한다.
나만의 독창적인 질문을 하라고 한다.
그래야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고 한다.
언제까지 살아남을 수 있는지에 대해선 묻지 않는다.
아무쪼록 새해에는 죽음을 인정하는 가운데
자유롭게 선택하고 책임지려고 한다.
착각 속에서 누린 자유와 선택과 책임은,
내게 너무 무거웠다.
새해엔 시작과 끝에 가슴 벅찬 일이 가득하길 바란다.
인간답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