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장 황금 투구인가, 세숫대야인가

‘진짜’와 ‘그럴듯함’ 사이에서 안 헤매는 법

by life barista

필터 얼굴 vs 민낯 얼굴


“아, 필터 없이는 도저히 사진 못 찍겠어.”


기껏 예쁜 카페에 가서 사진을 수백 장 찍어놓고, 우리가 가장 먼저 하는 일은 거울을 보는 게 아니라 앱을 켜는 겁니다. 피부는 깐 달걀처럼 매끈하게, 턱선은 날렵하게, 눈은 살짝 생기 있게. 보정이 끝난 사진을 만족스럽게 저장하고 난 뒤, 잠시 꺼진 화면에 비친 내 ‘생(raw) 얼굴’을 마주하면 묘한 기분이 듭니다. “진짜 나는 누구지?” 하는 일종의 ‘미니 현타’죠.


회사 메신저, 프로필 사진, 강의 홍보 이미지까지 전부 필터 얼굴로 도배되다 보면, 거울 속 민낯보다 보정된 얼굴이 더 “나 같아” 보일 때도 있습니다. 어느새 우리는 진짜인지보다 “그럴듯한지”를 먼저 따지는 쪽에 익숙해진 거죠. AI가 만든 글·사진·영상도 딱 그 틈을 파고듭니다.


요즘은 뭐든 “실제보다 더 실제 같아 보이는 것”들이 우리 일상을 점령하고 있어요. 문제는,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진짜 금을 찾기보다 금색 포장지에 더 먼저 반해 버린다는 겁니다.



세숫대야가 황금 투구로 보이는 순간


돈키호테에게도 그런 순간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돈키호테는 나귀를 타고 가는 이발사를 만납니다. 비에 젖지 않으려 평소 일할 때 쓰는 놋쇠 대야를 머리에 뒤집어쓴 이발사의 모습은 누가 봐도 우스꽝스럽습니다. 하지만 돈키호테의 눈에는 다르게 보였습니다. 번쩍이는 놋쇠를 보는 순간, 그는 소설 속 전설의 무기인 ‘맘브리노의 황금 투구’를 떠올린 것입니다.


“저것은 마법에 걸려 대야로 보일 뿐, 사실은 황금 투구다!”


믿고 싶은 대로 믿어버리는 ‘확증 편향’의 끝판왕입니다. 산초가 옆에서 “기사님, 저거 그냥 세숫대야예요!”라고 아무리 외쳐도 들리지 않습니다. 결국 돈키호테는 그 대야를 뺏어 머리에 쓰고는 세상 늠름한 표정을 짓습니다.


웃기게 들리지만, 우리도 그럴 때가 있지 않나요? 내가 공들여 기획한 프로젝트가 사실은 빈틈투성이인데, AI가 그럴싸한 문장으로 포장해주면 "와, 이거 진짜 완벽한데?"라며 스스로를 속이는 순간 말이죠. 팩트보다 ‘내가 믿고 싶은 이야기’가 더 힘이 세지는 순간입니다.



AI가 만든 ‘그럴듯함’


프랑스 철학자 장 보드리야르는 실제보다 더 실제 같은 복제물의 세계를 ‘시뮬라크르’라고 불렀습니다. 시뮬라크르는 원본보다 복사본이 더 그럴듯해져서 나중엔 뭐가 원본이었는지 아무도 신경 안 쓰는 상태를 의미하죠.


요즘 생성형 AI가 만든 것들이 딱 그렇습니다. AI는 “사실을 안다”기보다 “그럴듯한 패턴을 잘 맞춘다”에 가깝습니다. 겉보기엔 황금 투구처럼 번쩍이지만 속을 열어보면 출처 모를 놋쇠 조각들이 이어 붙은 경우도 많습니다.


그런데 더 위험한 순간은 따로 있습니다. AI 말이 내 생각이랑 너무 잘 맞을 때, 그 순간 우리는 묻지 않습니다. “이게 사실이야?”대신 이렇게 되죠.


“역시! 내가 맞았네.”


황금빛이 눈부실수록 우리는 대야의 재질을 잘 안 만져보게 됩니다.



사회생활 만렙, 산초의 전략


이 난감한 상황에서 의외로 도움 되는 인물이 있습니다. 바로 산초 판사입니다. 주인은 투구라고 우기고 이발사는 대야라고 난리를 칠 때, 산초는 그 사이에서 ‘바시옐모(Baciyelmo)’라는 신박한 단어를 만들어 냅니다.

바시(Bacia, 세숫대야) + 옐모(Yelmo, 투구) = 바시옐모


산초가 이 말을 만든 건 진리를 찾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주인 기분도 맞춰주면서 이발사랑 싸우기도 싫었던, 소위 ‘사회생활’의 산물이죠. AI의 환상과 ‘빡센’ 현생 사이에서 아슬아슬하게 줄을 타는 우리 직장인들의 모습과 참 닮았습니다.


산초의 이 익살스러운 신조어 안에는, AI 시대를 건너는 세 가지 현실 감각이 담겨 있습니다.


[일단 멈춤]

진짜냐 가짜냐를 따지기 전에, “이 정보가 왜 지금 나에게 왔지?”를 먼저 생각해보는 겁니다. 가짜 뉴스가 내 분노를 자극할수록 “내 감정이 이용당하는 건 아닐까?” 하고 잠시 숨을 고르는 거죠.


[콩깍지 벗기]

남들이 황금 투구라고 치켜세워도, 속으로는 ‘이건 물 담는 대야야’라고 생각하는 냉철함입니다. AI가 써준 보고서가 화려할수록, 조용히 창을 닫고 “팩트 출처가 어디지?”를 확인해보는 침착함이 필요합니다.


[유연한 선긋기]

무조건 기술을 거부하거나 맹신하는 이분법에서 벗어나는 겁니다. "이게 100% 진실은 아니더라도, 여기서 얻을 수 있는 인사이트는 뭐지?"를 고민하는 실용적인 태도죠.


당신의 머리 위에 있는 건 투구인가요, 대야인가요?


돈키호테는 죽기 직전이 되어서야 환상에서 깨어납니다. 평생 황금 투구라 믿었던 게 사실은 평범한 대야였음을 깨닫고 본래의 이름 ‘알론소 키하노’로 돌아오죠. 하지만 우리는 죽기 직전까지 기다릴 여유가 없습니다. 알고리즘이 씌워준 매끄러운 필터들이 우리가 진짜 얼굴로 살아갈 시간을 자꾸 뺏어가니까요.


기술이 아무리 업데이트되어도 우리의 ‘눈’이 업데이트되지 않으면 아무 소용없습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가짜를 골라내는 ‘필터’가 아니라, 가짜를 가짜라고 말할 수 있는 인간다운 안목입니다. AI가 만든 결과물에 "이거 출처 어디야?"라고 묻는 건강한 까칠함이 필요하다는 뜻입니다.


임종 앞의 돈키호테가 무거운 투구를 벗었듯, 우리도 가끔은 AI가 씌워준 매끄러운 필터를 벗어야 합니다. 오늘 당신이 결재판에 올린 화려한 보고서, SNS에 공유한 완벽한 일상은 진짜 금인가요, 아니면 반짝이게 닦아놓은 놋쇠 대야인가요?


진짜와 가짜가 뒤섞인 ‘바시옐모’의 시대, 우리가 지켜야 할 마지막 보루는 기술의 완벽함이 아닙니다.


“내가 지금 보고 있는 게 대야일지도 몰라”라고 의심할 수 있는 당신의 쌩쌩한 정신줄 그 자체입니다.

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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