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장 공포의 굉음

두려움에서 경험으로

by life barista

그 뉴스 봤어? 이제 다 끝났대!


"카톡! 카톡!"


어느 평일 오후, 단체 채팅방이 요란하게 울립니다. 누군가 새로 발표된 동영상 생성 AI의 활약상을 올렸기 때문입니다.


“와, 이제 영화감독도 끝났네”

“가짜 뉴스하고 구별이나 할 수 있겠어? 세상 참 무섭다.”


채팅창은 순식간에 종말론적인 공포로 가득 찹니다. 정작 그 기술을 직접 써 본 사람은 아무도 없지만, 우리는 모두 쿵쿵대는 거인의 발걸음 소리에 가슴을 졸립니다. 모르는 것에 대한 소문은 언제나 실제보다 크게 들리는 법입니다. 누구나 어둠 속에서 들려오는 정체 모를 소리에 불안했던 경험을 한 번쯤 했을 겁니다. 실체를 확인하기 전까지 그 소리는 우리 상상 속에서 이런저런 모양으로 변신합니다. 괴물이 되기도 하고, 저승사자가 되기도 하죠.



밤엔 괴물, 아침엔 빨래방망이


돈키호테와 산초 역시 그런 밤을 보냈습니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들리는 건 폭포수 같은 물소리와 함께 들려오는 기괴한 굉음이었습니다.


“쿵! 쿵!! 쿵!!!”


일정한 간격으로 울리는 소름 끼치는 소리에 돈키호테는 괴물과의 전투를 각오합니다. 반면, 산초는 공포로 몸을 벌벌 떱니다. 두 사람은 밤새 각자의 상상을 근거로 옥신각신 싸웁니다. 하지만 다음 날 밝혀진 소리의 정체는 허무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밤새 두 사람을 공포로 떨게 했던 건, 다 쓰러져 가는 물레방앗간에서 빨래를 내리치던 방망이가 전부였습니다.


정체를 모를 때는 죽음의 전조였던 것이, 이름과 작동 원리를 알게 되자 평범한 도구가 된 것입니다. 이만한 마법이 또 있을까요. 이 장면은 실체를 잘 모르면서도 우리가 얼마나 쉽게 당황해 생각하기를 포기하는지 잘 보여 줍니다.



상식의 유통기한이 끝나는 소리


존 카스티(John Casti)는 생성형 AI처럼 기존 시스템을 한순간에 무너뜨리는 극단적 사건을 ‘X-이벤트(X-Event)’라고 부릅니다. 말은 거창하지만, 요약하면 “우리 상식의 유통기한이 한 번에 다 날아가는 날”쯤 됩니다.


이런 굉음 앞에서 사람들은 보통 두 부류로 갈라지는 것 같아요.


하나는 “AI가 다 가져가겠지, 난 그냥 구경이나…” 하고 누워버리는 쪽입니다. 회사에서 AI 교육 공지가 와도 “나 말고, AI가 들으면 안 되나?” 하는 마음으로 삭제 버튼을 누르는 타입이죠.


다른 하나는 이와는 반대편입니다. “AI가 뭐, 검색을 좀 더 잘하는 정도지” 하면서 제대로 써 보기도 전에 시큰둥해지는 쪽. 세상이 반쯤 바뀌고 있어도, 내 마음속은 아직 2000년에 살고 있는 느낌이라고 할까요.


둘 다 이해는 됩니다. 갑자기 등장한 새 기술 앞에서 사람은 보통 과하게 무서워하거나, 과하게 무시하거나 둘 중 하나를 택하니까요. 다만 이 두 태도 모두, 공통적으로 한 가지를 놓칩니다. 바로 “내가 여기에 어떻게 끼어들 수 있을까?”라는 질문입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어느 한쪽에 운명을 맡기는 것이 아니라, 공포와 현실을 최대한 겹쳐 생각하는 일입니다. 굉음 속에 떨기만 할 것이 아니라, 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다가가 그 구조와 원리를 확인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어느 날, 겁나면서도 일단 생성형 AI를 켜 봤습니다. 직접 써보니 AI가 쓴 문장은 가끔 앞뒤가 안 맞기도 하고, 손가락을 여섯 개로 그리기도 하더라고요. 그 엉뚱한 실수를 보니 ‘이 녀석도 완벽한 괴물은 아니구나’싶어 실소가 터졌습니다.


그때 조금 알겠더라고요. 내가 무서워하던 건 ‘AI 그 자체’라기보다, 정체 모를 굉음에 내 상상력이 덧씌운 괴물 얼굴이었다는 걸.



회복탄력성과 미래 상상력이라는 지렛대


그럼 공포를 잠깐 옆으로 밀어 놓고, 우리가 챙겨야 할 건 뭘까요. 저는 이 굉음의 시대에 특히 두 가지 근육이 필요하다고 느꼈습니다. 하나는 ‘다시 일어나는 힘’, 다른 하나는 ‘먼저 상상해 보는 힘입니다’.


먼저, 회복탄력성은 그냥 ‘멘탈이 강하다’랑은 조금 다릅니다. 단순하게 예전 상태로 돌아가는 스프링이 아니라, 상황에 맞게 모양과 자세를 새롭게 바꾸는 능력에 가깝기 때문입니다. 내 안의 자원을 살펴보고 재배치해서, ‘이제는 이렇게 살아볼까?’를 시도해 보는 힘이라고 할까요.


두 번째는 미래 상상력입니다. 멋진 영어 이름으로는 Futures Literacy라고 부르더군요. 이건 점쟁이처럼 미래를 맞추는 재주가 아니라, 미래를 ‘내가 실험해 보는 놀이터’정도로 취급하는 태도입니다. 같은 AI 뉴스를 봐도, ‘저거 때문에 내 자리 사라지면 어떡하지?’ 대신 ‘저걸 쓰면 내가 덜 야근할 수 있는 루트는 뭐지?’라고 물어보는 쪽으로 뇌 회로를 살짝 돌려보는 거죠.


여기서 포인트는 ‘야근 회피’만이 아니라, 내가 잘하는 일을 더 잘하게 만드는 쪽으로 AI를 끌어들이는 것입니다. 내 고유한 감각, 언어, 취향 위에 AI라는 도구를 슬쩍 얹어 보는 실험을 해 보는 거죠. 그렇게 되면 “AI vs 나”의 구도가 아니라, “AI + 나”라는 팀플레이 상상이 열립니다.



내가 결정한다


요즘도 우리 주변에는 초지능, 로봇 봉기, 일자리 증발 같은 굉음이 하루가 멀다 하고 울립니다. 어떤 날은 저도 그 소리만 듣고 이불을 뒤집어쓰고 싶습니다. “나만 뒤처지는 거 아니야?” 하는 생각이 머리맡에서 웅웅거릴 때도 있고요.


그런데 가끔은 마음을 다잡고, 그 굉음 쪽으로 한 걸음만 더 걸어가 봅니다. 막상 가까이 가 보면, 괴물이 아니라 허옇게 빛나는 기계와 숫자, 그리고 생각보다 투박한 알고리즘이 서 있을 뿐이더라고요. 그제야 “아, 이건 나를 잡아먹으러 온 존재라기보단, 아직 사용 설명서가 덜 적힌 최첨단 장난감에 가깝구나”라는 생각이 슬며시 생깁니다.


모르는 것을 무조건 두려워하는 대신, “일단 한 번 써 보고 싫어하자”라는 식의 태도로 바꿔 보는 것. 저는 이게 공포를 경험으로 바꾸는 가장 작은 연습이라고 느꼈습니다.


언젠가 당신도, 단톡방에 “이제 다 끝났대!”라는 기사가 올라온 날, 조용히 앱을 하나 켜 보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속으로 이렇게 말할지도요.


“진짜 끝났는지 아닌지는, 직접 써 보고 내가 결정하지 뭐.”

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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