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장 풍차 거인

내가 누구냐에 따라 다른 세계가 펼쳐진다

by life barista

알고리즘이 만든 ‘거인’


‘인간 지성의 종말’

‘AI 때문에 사라질 직업 TOP 10’


자극적인 제목의 영상들이 유튜브를 점령하고 있습니다. 영상 속 AI는 마치 의식을 가진 괴물처럼 묘사됩니다. 인간보다 수만 배 빠른 속도로 글을 쓰고, 정교한 영상을 뚝딱 만들어 내는 그 위력 앞에 우리는 압도당합니다.


이런 뉴스를 접할 때마다 우리는 불안에 사로잡힙니다. 저 무시무시한 기술이 머지않아 나의 쓸모를 비웃으며 나를 짓밟고 유유히 지나갈 것만 같은 기분이 들기 때문입니다. 잠시 생각을 멈추고 크게 숨을 들여 마신 후 천천히 내뱉어 보세요. 이제 다음 문장을 최대한 느리게 읽어 보세요.


AI는 정말 우리를 파멸시키러 온 ‘거인’일까요,

아니면 우리가 만든 ‘도구’일까요?



거인의 팔인가, 풍차의 날개인가


돈키호테와 산초의 눈앞에 서른 개가 넘는 풍차가 서서히 보이기 시작합니다. 돈키호테는 눈을 반짝이며 말합니다. “저기 팔이 끝없이 긴 거인들이 서 있다. 이제 내가 나서서 저 괴물들을 물리쳐야 한다.”


산초는 놀라서 말립니다. 자기 눈에는 그저 곡식을 빻는 풍차일 뿐이었습니다. 바람을 받아 돌아가는 날개는 거인의 팔이 아니라, 맷돌을 돌리는 구조물일 뿐입니다. 하지만 돈키호테에게 산초의 말은 겁쟁이의 변명에 불과합니다. 결국 그는 창을 높이 치켜들고 풍차를 향해 돌진합니다. 결과는 잘 알고 계실 겁니다. 세차게 돌아가는 풍차 날개에 부딪혀 창은 부러지고, 돈키호테는 말과 함께 멀리 나가 떨어집니다.


여기서 중요한 질문은 “왜 풍차를 거인으로 착각했을까?”가 아니라,“왜 돈키호테에게는 풍차가 거인으로 보였을까?”입니다.


돈키호테는 자신을 세상을 구해야 하는 기사로 믿었습니다. 그의 갑옷과 원정이 의미를 가지려면, 눈앞에 반드시 거대한 악이 있어야 했습니다. 그래서 평범한 풍차도 그의 눈에는 ‘무찔러야 할 괴물’로 나타난 것입니다. 평범한 현실 위에 자신의 역할과 욕망을 덧씌워, 나름의 진실을 만들어 낸 셈입니다.



AI라는 풍차, 내가 만든 거인


오늘날 우리 앞의 풍차는 인공지능입니다. 특히 생성형 AI는 우리가 쓰는 말투를 따라 하고, 멋진 그림을 만들고, 코드까지 짜 줍니다. 유튜브와 뉴스는 이 풍차를 ‘거인’으로 묘사하는 데 열심입니다.


‘AI가 자기들끼리 대화하고 자체 종교를 만든다.’, ‘초지능 AI가 인류를 지배할 것이다.’ 이런 이야기를 계속 듣다 보면, 우리가 AI를 바라보는 시선 자체가 바뀝니다. 그때부터 AI는 더 이상 텍스트와 이미지를 편리하게 만드는 도구가 아니라, 나의 일과 생계를 위협하는 거대한 적처럼 느껴집니다.


하지만 산초의 눈으로 보면, 풍차는 여전히 풍차일 뿐입니다. 바람의 힘을 이용해 곡식을 빻는 맷돌일 뿐입니다. 바람이 세게 불면 더 빨리 돌아가고, 바람이 멈추면 조용히 멈춥니다.


AI도 마찬가지입니다. 엄청난 양의 빅데이터를 학습해 다음에 올 글자나 픽셀을 계산하는 확률적 기계일 뿐입니다. 우리를 돕거나 해치겠다는 의도도, 스스로를 똑똑하다고 생각하는 마음도 없습니다. 문제는 기술보다, 우리가 붙이는 이름입니다. ‘AI가 내 마음을 이해한다.’, ‘AI가 스스로 생각한다.’는 표현은 풍차를 괴물의 팔이라는 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현상학은 돈키호테와 산초의 차이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줍니다. 현상학은 우리가 세상을 그냥 보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무엇-으로서”본다고 합니다. 베테랑 변호사에게 AI는 판례 검색을 돕는 도구-로서 보이지만, 신입 변호사에게는 자기 자리를 빼앗는 악당-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같은 대상이라도 내가 나를 어떤 사람으로 이해하느냐에 따라 다르게 보일 수 있습니다.



거인을 만들 것인가, 풍차를 돌릴 것인가


결국 핵심은 기술이 아니라 ‘나’입니다. 내가 나를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AI는 나의 자리를 뺏는 ‘거인’이 되기도 하고, 내 삶의 무게를 덜어주는 ‘풍차’가 되기도 합니다. 실업자가 될까 두려워하는 이에게 AI는 일자리를 집어삼키는 무시무시한 거인으로 보일 것입니다. 새로운 가능성을 실험하는 이에게 AI는 내 아이디어를 더 넓은 세상으로 실어 나르는 든든한 날개가 될 것입니다.


자동차의 속도가 빨라진다고 해서 자동차에 ‘열정’이 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자동차는 그저 잘 ‘작동’할 뿐이고, 어디로 갈지 ‘생각’하는 것은 운전석에 앉은 인간의 몫입니다. AI도 마찬가지입니다. 마법사 같은 광고 문구와 과장된 담론에 속아 기술에 인격이나 신격을 부여하며 스스로를 위축시킬 필요는 없습니다.


우리는 풍차 앞에서 창을 휘둘렀던 돈키호테의 실수를 되풀이하지 말아야 합니다. 중요한 것은 ‘AI가 무엇을 할 수 있는가’만이 아니라, ‘나는 AI 시대에 나를 무엇-으로서 지향하는가’입니다. 다만 이 질문이 단지 마음속 다짐으로만 끝나지 않으려면, 기술이 바꾸어 놓는 일자리와 제도, 이 변화가 어떤 역사적 흐름 속에서 일어나고 있는지도 함께 바라봐야 합니다.


나의 시선과 태도, 그리고 사회적 환경에 대한 현실 인식이 함께 갈 때, 우리는 거인으로만 보이던 풍차를 잘 써먹어야 할 강력한 도구로 볼 수 있게 됩니다. 당신이 스스로를 새로운 가치를 편집하고 창조하는 사람으로 규정하면서도, 동시에 사회적 구조와 제도적 합의에 대한 감각을 놓치지 않는다면, 당신 앞의 거인은 다시 평화롭게 돌아가는 유능한 풍차로 모습을 바꿀 것입니다.


당신은 지금, 어떤 세계를 지향하고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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